"시신 냄새 진동, 물도 음식도 없다"…늑장대응 분노한 모로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남서부를 강타한 강진(규모 6.8)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여진이 최대 몇 달 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매몰자 구조와 생존자 구호가 시급한 상황이나 모로코 정부는 국제 사회에 지원 요청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여진 공포 속에 사흘째 노숙을 이어가고 있는 생존자들은 “물도 음식도 없다”며 정부의 늑장 대처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지난 8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모로코 하이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에 10일 오전 규모 3.9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유럽·지중해 지진센터(EMSC)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11시 11분 본진이 발생한 19분 뒤 규모 4.9의 여진이 처음 발생했고 이후 25번의 여진이 이어졌다. EMSC는 여진이 최대 몇달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틀라스 산맥에 피해 집중, 구조대 접근 어려워
지진 피해는 외지고 험준한 산맥인 하이아틀라스에 집중됐다. 모로코 내무부는 이번 지진으로 최소 2122명이 사망하고 2421명이 다쳤다고 밝히면서 "사망자 중 1351명이 하이아틀라스의 알 하우즈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BBC는 진앙과 약 50㎞ 떨어진 타페가그테 마을의 전체 주민 200명 중 9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실종자도 다수라면서 “이같은 비극이 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마다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구호도 늦어지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구조대와 식량·의약품을 실은 구호 차량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으나, 지진 피해로 인한 건물 잔해와 낙석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막아 해당 지역까지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태다. 당국은 군 헬기 등을 동원해 구호품을 투하하고 있지만, 생존자들은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하이아틀라스의 계곡 쪽 마을인 아미즈미즈는 이번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진 상태"라고 BBC는 전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사흘째 광장 바닥에서 노숙 중이다. 텐트가 있는 주민은 극소수에 그치고, 대다수는 땅바닥에 깐 양탄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압델카림 브로리(63)는 “밤이면 너무 춥지만 (여진의 두려움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다”면서 “외부에서 오는 도움은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다. AP통신은 지진 사흘 뒤에야 군인들이 도로의 잔해를 치우고 이곳에 구호 차량을 몰고왔다고 전했다. 생존자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등 환호했지만, 구호 물품 등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구조대 투입이 지체되면서 일부 마을에선 생존자들이 직접 매몰자 구조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하이아틀라스 인근 마을 물라히 브라임에서 생존자들이 시신을 꺼내기 위해 잔해를 맨손으로 치우고 있다고 전했다. 스카이뉴스는 “구조대가 들어선 일부 마을엔 이미 시신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며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진 발생 후 골든타임은 통상 72시간 이내로, 모로코의 경우 현재 만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모로코, 국제사회 지원 요청에 소극적
이처럼 피해 규모가 큰 데도 모로코 정부가 아직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구호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지난 2월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 정부가 지진 발생 수시간 만에 전 세계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유엔(UN)의 국경없는 구조대는 3500명의 구조대원으로 구성된 100여개 팀을 모로코로 파견하기 위한 준비를 완료했지만 모로코 정부의 요청이 없어 발이 묶였다. 독일도 쾰른본 공항 근처에 50명 이상의 구조팀을 대기시켰다가 파견 요청을 받지 못해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dpa 통신은 보도했다.
이를 두고 조 잉글리시 유니세프 대변인은 “모로코 지진 피해 지역은 도심과 떨어져 있어 접근하기 어렵고,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국제적 지원과 연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모로코 정부는 “스페인·영국·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4개국에서만 도움을 받았다”며 “조율이 부족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왕정인 모로코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하루가 지난 9일 오후에야 비상 회의를 열고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프랑스에 머물던 국왕 무함마드 6세의 귀국을 기다리느라 황금 같은 시간이 허비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미아 에라주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왕궁의 승인 없이 아무 일도 이뤄지지 않는 모로코에서, 재난 상황에 타국에 머물고 있던 국왕 때문에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면서 “권위주의적 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통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지진 복구 안됐는데 관광 재개"
지진 피해 지역인 마라케시의 관광가 재개된 데에서도 외신들은 의문을 나타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라케시에서 가이드 관광이 재개됐고 바히야 궁전 등 유명 관광지에 관광객들이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모로코에서 40년 이상 거주해온 박준수(52)씨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진 피해 지역인 마라케시에서도 인구가 밀집된 도심은 피해가 전혀 없다”면서 “카페마다 사람이 그득하고 일상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모로코 정부가 다음달 9~15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WB) 연차 총회를 앞두고, 지진 피해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보유한 모로코 내 호텔이 지진 피해자를 위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호텔 측은 언론에 “호텔이 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사람들을 수용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지진 이후 투숙객이 늘어났지만 이재민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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