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샌드백 힘차게 쳐놓고…탁신, 에어컨 딸린 곳서 '황제 수감'

김선미 2023. 9. 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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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15년 만에 태국으로 돌아온 탁신 친나왓(74) 전 총리. AFP=연합뉴스


15년간 해외 도피 끝에 측근의 집권에 맞춰 귀국했던 탁신 친나왓(74) 전 태국 총리가 '황제 수감'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가디언은 11일(현지시간) "탁신 전 총리가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태국 교정 당국의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탁신은 지난달 22일 태국에 돌아온 직후 대법원에서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8년형을 확정받고 방콕 끌롱쁘렘 중앙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런데 탁신은 이후 교도소 내 병원 개인실에 입원했다가 다시 경찰병원으로 이송됐다. 교정당국이 고령과 심장·폐 등 기저 질환을 이유로 탁신을 교도소 내 병원으로 옮겼는데, 탁신이 다시 고혈압·불면증·저산소증 등을 호소해 아예 교도소 바깥 경찰병원으로 재이송한 것이다. 가디언은 "그가 교도소에 머문 시간은 약 12시간에 불과했다"며 특혜 논란을 전했다.

탁신 전 태국 총리를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차가 방콕 끌롱쁘렘 중앙교도소에 도착하는 모습. 그는 수감 약 12시간 만에 경찰병원으로 이송됐다. AFP=연합뉴스


가디언은 현지 매체 등을 인용해 "탁신이 에어컨·TV·냉장고·소파가 있는 (경찰병원의) 병실에서 24시간 간호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병원 측은 "혈압 수치가 170으로 매우 높고 해외 의료기록상 여러 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온 것을 확인했다"며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상태"라는 설명만 내놨다.

황제 수감 논란에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해시태그 '#VVIP'가 유행했고, 지난해 그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저택에서 샌드백을 두드리는 등 운동하는 장면이 밈(meme)으로 퍼졌다. 현지 방송도 탁신이 운동하는 영상을 반복해서 방영했다. 태국 정치활동가 시수완 자냐는 "국민은 탁신이 정말 아픈 건지, 정치병에 걸린 것인지 의구심을 품는다"고 지적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 AFP=연합뉴스


가디언에 따르면 태국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태국 인권변호사단체(TLHR)는 "14일간 단식 투쟁을 해 체중이 37㎏에서 33㎏으로 줄거나, 47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한 이들만 병원에 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연맹(FIDH)의 안드레아 조르게타는 "탁신 사건의 긍정적인 측면은 그동안 간과됐던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 문제를 조명하게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총리가 된 탁신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해외로 도피했다. 2008년 2월 잠시 귀국했지만, 재판을 앞두고 다시 출국했고 이후 망명을 선언했다. UAE 두바이,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에서 생활하던 그는, 지난 5월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이 이끄는 친(親)탁신계 정당 프아타이당이 제2당으로 떠오르자 귀국 의사를 밝혔다. 탁신이 태국 땅을 밟은 날 프아타이당이 추대한 세타 타위신(60)이 총리로 선출됐다.

태국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왼쪽)은 지난 2일 탁신 전 총리의 형량을 징역 8년에서 1년으로 감형했다. AP=연합뉴스


전격 귀국의 배경엔 프아타이당과 군부 세력 간 타협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태국의 왕당파와 군부 세력은 큰 인기를 끄는 탁신을 견제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탁신계는 왕당파 및 군부와 앙숙으로 지냈지만, 지난 총선에서 집권을 위해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꾸렸다.

탁신 전 총리에 대한 감형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지난 2일 태국 국왕은 탁신의 형량을 8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4개월만 복역하면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는 데다, 오는 12월 5일 아버지의 날을 맞아 완전히 사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정치인이 순조롭게 복귀한 이면엔, 측근과 적 사이에 조기 석방에 대한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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