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따라 달리는 철도, 기관사 눈에 띈 이상한 광경
철도노조와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철도파업과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라는 기획연재(6회)를 시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철도가 왜 필요한지, 철도 민영화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9월 23일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진행될 기후정의행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기자말>
[최종철]
서울 도심에서 열차와 자동차는 제 갈 길을 가거나 방음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서로를 볼 수 없는 사이다. 열차와 자동차가 서로를 바라보며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 있기는 할까? 경의·중앙선 왕십리역~서빙고역 사이 구간이 바로 그런 구간이다. 여기서 철도는 한강을 끼고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 개나리가 만개한 서울 응봉산 앞을 통과하는 경의중앙선 열차. |
ⓒ 홍재표 |
내가 기관사 일을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짐작만 할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분이 대부분이다. 선로 위만 달리는 열차가 서고 달리기를 반복하니 기관사는 신호를 잘 보며 브레이크만 썼다 풀기를 반복하는 단순한 직업으로 아는 분도 많다.
선로를 옮겨(건너) 열차가 움직일 때 자동차 핸들 같은 게 열차에 달려 있어 이걸 좌우로 돌려서 방향을 바꾼다고 상상하시는 분들도 많다. 심지어 탈선 사고는 기관사가 핸들 방향을 잘못 돌리면 일어나는 일로 아는 분도 만나보았다.
나는 20여 년 전 입사했다. 2000년대 초반 철도청 말기의 철도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열악한 조건을 감내해야 하고 파업권조차 보장되지 않던 때였다. 운전 시간은 한 달에 3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업무 강도 또한 엄청났다.
그때는 달리는 열차 바로 옆에서 계속 시설유지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작업 때마다 평소와 다르게 운행해야 하고 무언가와 부딪힐 수 있으니 계속 긴장했다. 관제 지시는 어찌나 많던지... 근무를 마치고 나면 몸이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버릴 정도였다.
특히나 담장도 설치되지 않은 열악한 선로 주변 환경 때문에 멧돼지 일가족 몰살 사고도 가끔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안 될 사상 사고도 부지기수였다. 이로 인해 공황 장애를 겪는 동료 기관사들도 많았다. 기관사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런 동료들을 볼 때면 기관사란 스스로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러 철도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20여 년간 노동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24시간 쉼 없이 열차를 운행해야 하는 기관사 업무의 특징은 바뀌지 않았다. 업무 시간이 불규칙한 이상, 새벽 출근과 늦은 퇴근, 심지어 야간 출근과 새벽 퇴근도 계속된다. 새벽 열차를 몰 때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열차를 몰 때도 있다. 집으로 퇴근할 수 없는 객지에서 잠깐 잠을 청해야 하는 날들도 많다. 내 손으로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엄청난 긴장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 곳곳에 숨어 있는 고충은 사람을 녹초로 만든다. 하지만 경의·중앙선 기관차 운전실의 전면은 '한강뷰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상쾌하다. 아무리 업무 때문에 피곤해도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열차는 정해진 시간과 신호 시스템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선로 위를 달린다. 주변 풍경 역시 변화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게 눈에 익어 있다. 반쯤은 익숙하고, 반쯤은 신비로울 정도로 다채로운 파노라마 속을 누비며 한강을 따라 펼쳐진 경의·중앙선을 타고 서울을 관통하는 것이 내 일이다.
양평과 남양주를 지나 서울로 들어오는 열차. 그렇지만 왕십리를 지나면 이 파노라마 속에 옥에 티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풍경이 내 눈을 훅 치고 들어온다. 바로 왕십리-서빙고 간 강변북로.
여기서 나는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꽉 막혀 더디게 움직이는 자동차들의 행렬과 마주하게 된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불편함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는다. 정체에 갇혀 버렸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이들 차량이 내 시선에 들어올 때 꼭 드는 생각이 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늘 한결같이 막히는 저 강변북로로 꼭 자동차를, 그것도 자기 손으로 운전해 들어오는 걸까?'
막히는 길을 타는 것이니 시간 단축의 이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 앞에서 타고 내려 편해서 그런 걸까? 역까지 걷고, 노선과 노선을 갈아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중교통 이용의 번거로움 때문일까?
▲ 한남대교 위에서 찍은 경의·중앙선과 강변북로. |
ⓒ 전현우 |
나는 높은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의·중앙선 기관사로서, 매일 보는 저 도로의 정체를 보며 느끼는 답답함과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고 싶다.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면, 그래서 언제든 어디로든 지금보다 편하게 대중교통망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안락하지만 길이 막혀 멈춰버린 승용차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저렇게 도로를 메운 차들은 자동차 산업의 덩치를 키워온 긴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우리는 도로 중심의 교통망을 갖추고, 다양한 제도를 통해 자동차를 편하게 만들어 왔다.
▲ 강변북로와 경의·중앙선 전동차의 크기 비교 |
ⓒ 카카오맵 |
경의·중앙선 승객이 모두 자동차를 탄다면?
전동차와 승용차의 크기를 놓고 계산해 보자. 경의·중앙선 8량 한 편성 길이는 약 156m다. 전동차 정원은 한 량에 160명이다. 8량이니 편성 전체 정원은 1280명. 저 인원이 나 홀로 승용차를 타고 도로에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쏘나타 길이가 4900mm이니 한 줄로 늘어선 차량 길이만 6300m다.
강변북로는 차로가 편도로만 4개 아니냐고? 차량이 다니려면 차량 사이에 안전거리가 있어야 한다. 앞 차와 딱 붙어서 달릴 수야 없지 않나? 차량의 속도(km/h)와 차량 사이의 거리(m) 수치는 단위는 달라도 비슷하다. 이 1280명이 막히는 도로에서 앞 차와 20m씩 간격을 두고 달린다고 해 보자. 이들이 4개 차로를 함께 이용한다면 대충 8km짜리 행렬을 이루게 될 것이다. 길이는 50배, 폭은 4배이니 200배쯤 넓은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와~ 바로 이게 내가 늘 감탄하는 파노라마 풍경 속에서 옥에 티라고 생각했던 딱 그 장면!
저기 강변북로를 점유하고 있는 운전자, 동승자를 싹 다 전동차에 태운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한강 주변에 펼쳐질 테다. 8km면 서빙고~왕십리 사이보다 더 먼 거리다. 물론 항상그 정도 길이로 늘어서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교통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사이일 것이다.
철도의 장점은 이런 장면에서 돋보이는 것 아닐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도시 공간을 훨씬 덜 차지하면서도, 대기오염과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덜고, 안전을 유지하면서도 정체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런 꿈을 실현하려면 도로를 줄이고 좀 더 세밀한 도시철도망 그리고 연계 대중교통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철도가 어디라도 닿을 수 있고 운임도 저렴하다면, 누가 저 막히는 도로 위 '안락함'을 선택할까?
지금은 기후 위기 시대라고 한다. 폭염, 폭우, 한파 등 그동안 우리가 알던 계절과 맞지 않는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을 더 이상 후순위로 미뤄서는 안 될 지경이란다. 내가 늘 목격하는 경의·중앙선 '파노라마 풍경 속 옥에 티'가 단순히 보기 불편한 일일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류에 해가 되는 요인일 수도 있다면 이제는 뭔가 변화와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 철도노조는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불법성 시비로 늘 힘들어하면서도 철도노조는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KTX와 SRT로 쪼개져 있는 고속철도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의미 있는 대중교통으로 철도를 꼽는다. 그러나 공공성이 사라진 철도,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영화된 철도, 갈라지고 쪼개져 각자도생하는 철도가 지구적 문제를 고민하며 의미있는 기후 위기 대응을 할 수 있을까?
▲ 역 구내의 정지 신호. 이를 무시하고 넘어가면 추돌하거나 탈선한다. |
ⓒ 박세증 |
철도 노동자가 보내는 빨간색 정지 신호
열차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붉은색, 푸른색 신호등을 보면서 운행한다. 차이라면? 자동차는 신호를 잘못 보거나 실수해도 꼭 사고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열차는 붉은색 신호를 어기고 발차하는 순간 반드시 사고가 난다는 사실이다. 예외가 없다.
나는 기후 위기 때문에 우리를 덮치는 수많은 기상이변이 붉은색 신호등이라고 생각한다. 신호기를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는 사고가 난다고 경고하는 정지 신호처럼, 지구는 우리에게 폭주를 멈추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열차는 푸른색 신호가 있어야만 달릴 수 있다. 지구를 푸르게 바꾸고 싶다면 먼저 지구의 정지 신호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또한 공공철도가 전국 곳곳에 막힘없이 닿는 미래를 바란다면, 먼저 철도 노동자들이 보내는 정지 신호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로로 내팽개치는 지금의 철도 쪼개기 정책이 중단되기를 그리고 공공철도가 이 도시의 교통을 이끄는 미래를 바란다. 철도노동자는 이렇게 사회에 붉은 정지 신호를 보내면서, 동시에 언젠가 나타날 푸른 미래를 그리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최종철 기자는 청량리고속기관차 기관사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휴대폰 속 보고 '덜덜'... 대통령님, 이거 정상 아닙니다
- "노후 준비 왜 안했냐고요? 나도 이럴 줄 몰랐습니다"
- "방통위 주장 소명되지 않는다" 권태선 손 들어준 법원
- 신원식 의원님, 그때 박격포 안 쏜거 맞습니까
- 미국 보스턴의 놀라운 혼인신고서... 우리는 왜 못하나
- 언론인들 피해 호텔 옆문으로 간 이동관, 언론노조 "참담하다"
- 해 지면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젊어서 못배운 거 다 할래요"
- "난 가짜뉴스 피해자"란 김기현 "유사 언론, 마약 제조해 유통"
-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 공주보 앞 천막농성 돌입
- 성교육책 열람 제한한 충남도... 김태흠 "인권위 판단 따르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