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중국의 몰락·미국의 부상 뒤에 ‘茶’가 있었다
“말이 되나?” 반문하고 싶겠지만 진짜 그렇다. 차는 진정 세계사를 바꾼 주역이다. 중국이 알고 보니 ‘종이 호랑이’였음을 만천하에 알려 서양과 동양의 무게추를 확실하게 돌려놨는가 하면, ‘잠자는 사자’ 미국을 분노하게 해 패권국가 미국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 데도 차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영국에 아편을 팔고 영국인을 부추겨 아편을 사서 피우게 한다면, 여왕께서도 크게 분노하시리라 믿습니다.”
청나라 관리 임칙서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청렴하고 강직해 ‘임청천(송나라 관리 ‘포청천’은 청백리의 대명사다)’이라 불렸던 임칙서는 관료로 봉직하면서 청나라가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당시 중국 내에 만연한 아편의 폐해를 절감하고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서라도 아편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칙서가 아편을 증오한 데는 개인적인 배경도 있는데, 수재였던 형이 아편에 중독되어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조정과 황제 도광제 역시 아편 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흠차대신이 된 임칙서는 광동성으로 향한다. 당시 광동성이 유일하게 외국과 무역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아편이 광동성으로 들어와 중국 전역으로 퍼지는 구조였다. 임칙서는 광동성에 도착하기 전 미리 공문을 보내 “아편 무역을 중단하라. 밀매를 할 경우 재산을 몰수하고 사형에 처하겠다”고 경고했다.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던 영국 상인들은 코웃음만 쳤다. 뇌물 좀 찔러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완전 오산. 임칙서는 거침이 없었다. 위기감을 느낀 중국 쪽 상인들이 아편 1000상자를 보냈다. 그러나 임칙서는 “숨긴 아편이 2만 상자가 넘는 것을 알고 있다”며 “모든 아편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압박에도 말을 듣지 않자 이번에는 영국인 거주 지역을 봉쇄하고 물자가 드나들지 못하게 감시한다. 결국 식량마저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영국인들은 아편 2만 1306상자(약 237만근)를 내놓는다.
임칙서는 1839년 6월 3일부터 25일까지 이 아편을 모두 소각한다. 이 장면을 일컫는 단어가 ‘호문소연(虎門銷烟)’이다. ‘호문’이라는 지역에서 ‘아편을 소각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불태운 것은 아니다. 아편 폐기 방법을 고민하던 임칙서는 아편을 불태워본 결과, 원래 양의 약 4분의 1 정도는 불타지 않고 녹는다는 것을 알았다. 녹아 나온 액체는 다시 아편으로 만들 수 있다. 아편을 완전 못쓰게 할 방법을 찾다 아편이 석회와 소금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칙서는 우선 해변을 막아 연못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바닷물이 담긴 연못에 잘게 자른 아편 덩어리와 석회를 같이 넣고 휘저어 녹인 후 연못 수문을 열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이 과정이 장장 23일 걸렸다. 석회가 물과 반응하면 열과 연기가 발생하는데, 그 연기가 나는 장면이 마치 아편을 태우는 것처럼 보여 ‘호문소연’이라는 문구가 생겨났다는 후문이다.
대신 중국에 아편 수출… ‘아편전쟁’ 발발 계기
중국에서 제작한 영화인 만큼 영화는 아편 소각을 잘해낸 임칙서가 “아편이 없는 ‘안강성세’를 만들어낼 거야” 다짐하고 그가 일궈낸 작은 성공이 어떻게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일깨웠는지를 자막에 표기하면서 끝이 난다. 물론 후세의 우리는 다 안다. 그 사건이 결국 ‘아편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쟁에 패한 청나라가 영국의 모든 요구조건을 다 받아들이며 항복했다는 것을. 심지어 청나라 최초의 불평등조약인 ‘남경조약’으로 인해 홍콩마저도 영국 조차지(일정 기간 독점적, 배타적 지배를 설정한 토지)로 내놓아야 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청나라가 ‘이빨도 발톱도 아무것도 없는 늙은 호랑이’였음이 만천하에 알려졌고, 이후 중국은 서양 열강의 먹이로 전락했다. 그뿐인가. ‘호문소연’의 영웅 임칙서는 영국과 아편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를 받고 해임당했다. 외피는 아편전쟁이지만, 그 뒤에는 차가 있다. 1662년 ‘캐서린 브라간자’라는 이름을 가진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 왕 찰스 2세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에 오면서 가지고 온 차 한 바구니가 영국을 ‘차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후 영국 귀족 사이에 차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중국은 광동성에서만 외국과의 교역을 할 수 있게 했다. 광동성에서 외국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13가문이 있었는데 이들을 ‘십삼행’이라 불렀다. 중국과 무역을 하려면 무조건 십삼행을 통해야만 했다. 영국인을 비롯한 서양인은 십삼행이라는 독점 세력을 통해야 무역을 할 수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뭐든 독점이면 가격도 비싸지니.) 또 중국은 모든 물건에 대한 대가를 은으로만 받았다. 차수입 물량이 어마어마해진 영국은 중국에 바치는 은이 너무 많아지자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고심했다. 중국에 영국 물건을 사가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오랑캐 물건 필요 없다”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은의 양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영국이 찾아낸 방법이 바로 아편 수출이다. 영국은 인도 벵갈 지방에서 재배한 양귀비로 만든 아편을 팔아 은을 다시 가져온다는 발상을 실행에 옮겼고 이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1780년 무렵 약 1000상자에 불과했던 아편의 수입량은 1830년에는 1만 상자, 아편전쟁 직전에는 4만 상자 정도로 늘어났다. 무게로 치면 거의 300만 톤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차로 인해 시작된 아편전쟁은 전 세계의 무게추를 동양에서 서양으로 확실하게 돌려놓는 기제가 됐다. 이후 서양열강 중에서도 미국이 최고 열강으로 떠오르는 디딤돌이된 ‘미국 독립전쟁’ 뒤안길에도 역시 차가 자리한다.
영국이 ‘영국차만 유통’ 강제하면서 미국인 분노 폭발해
미국인이 차를 많이 마시자 영국은 꾀를 냈다. 프랑스와의 전쟁 등 이런저런 전쟁으로 재정이 힘들었던 영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일부 제품과 차에 일종의 식민지세를 부과했다. 심지어 차는 관세가 100%나 됐다. 미국인들은 정상적으로 관세를 내고 구입하는 대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네덜란드 회사와의 밀수 거래를 선택했다. 차 수입과 수출을 독점하는 영국 동인도회사에는 차 재고가 나날이 쌓여갔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재고를 해결해야겠다 판단한 영국 정부는 차에 부과됐던 과도한 세금을 대폭 낮추는 대신, ‘영국에서 공급한 차만 미국에서 유통될 수 있다’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었다. ‘자유’라는 가치에목숨 걸었던 미국인은 엄청나게 분노했다.
지금 내가 마시는 것은 비록 ‘차 한 잔’이지만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차’라고 생각하면 허투루 여겨지지 않는다. 어디 차만 그러겠나. 어쩌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뿐, 수많은 식품과 상품과 아이템이 그럴 테다. 그게 어쩌면 역사,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고 공부하는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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