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인도 주도 G20 정상선언…'장난하나' 日 당황했다"

이영희 2023. 9. 11. 15: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첫날인 9일 인도 주도로 갑작스럽게 공동선언문이 채택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참가국 관계자들이 당황해 대응을 서둘러야 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이번 공동선언문 채택으로 의장국 인도의 능숙한 외교전략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를 중심으로 하는 신흥도상국) 국가들의 높아진 위상이 확인됐다고 일본 언론들은 해석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의장국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G20 정상회의 첫날인 현지 시간 9일 오후 3시 반쯤 공동선언이 채택됐다고 전격 발표했다. 보통 공동선언문은 회의 막바지에 확정되는 경우가 많고, 이번 회의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를 공동선언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례적으로 빠른 공동선언문 채택에 미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일본 외무성 직원들 사이에선 "깜짝 놀랐다. '장난하나' 하는 느낌이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G20 뉴델리 리더 선언'이란 이름으로 공개된 공동성명의 내용도 예상과는 달랐다. 정상들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내 전쟁(War in Ukraine)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국제 식량, 에너지 안보, 공급망, 금융 안정성 등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한다"고 적었다. 유엔헌장의 원칙에 따라 "모든 나라는 영토 획득을 위해 무력에 의한 위협 및 행사를 삼가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문구는 담기지 않았다.


"글로벌 사우스 목소리 대변"


공동성명 내용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의장국 인도는 당초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담긴 "러시아 연방의 우크라이나 침략(Aggression by the Russian Federation against Ukraine)"이라는 표현과 "대부분의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다"는 내용을 기준으로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요 7개국(G7) 국가들은 대부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이 지난해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결국 인도는 G7과 중·러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직면한 상황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따라서 식량과 에너지 안보 등의 문제가 선언에 담겼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8일 회견에서 이번 공동선언문에 대해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이렇게 강하게 대변하는 문서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도는 회의 개막일인 9일 아침 최종 원안을 각국에 제시했고 동의를 받아 9일 오후 회의에서 채택을 선언했다.

이번 공동선언에는 각국의 복잡한 계산이 있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G7 국가들의 경우 끝까지 공동선언문 채택을 거부할 경우 'G7이 협상을 깨뜨렸다'는 비난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모디 인도 총리의 체면을 생각해 유엔헌장의 원칙을 명기하는 '최저 라인'까지 양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BBC는 이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논쟁에서 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러시아는 즉각 환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는 '무조건적인 성공'이라며 "우리는 정상회의 의제를 우크라이나화하려는 서방의 시도를 막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반면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는 이 문서에 강한 문구를 넣으려 시도한 협력국들에 감사하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G20은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