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 외교 끝났다"…文과 달랐던 尹 다자외교 세 장면
“외교 노선의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
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 중 일부다. 당시 윤 대통령은 “상대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지 못하는 외교는 신뢰도, 국익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정부의 미·중 줄다리기 외교에 대한 비판에 가까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순방(5일~11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성과로 ‘모호성 외교’의 종식을 들었다. 앞선 기념사에서 밝힌 외교 철학을 현장에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1일 통화에서 “지난 정부가 외교의 모호성을 중시했다면, 윤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며 “내치와 외치 모두 지향하는 가치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이번 순방 기간 ‘모호성 외교’의 종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세 가지 장면을 꼽는다.
첫 번째 장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국제적 책임을 요구한 대목이다. 지난 정부들은 북한에 대한 두 나라의 영향력을 고려해 다자회의에서 발언 수위를 조절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해 “북한은 유엔 안보리로부터 가장 엄격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며 “(제재) 결의안 채택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말했다. 중·러를 겨냥한 발언으로, 당시 회의엔 중국의 2인자인 리창 총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다자회의 뒤 이어진 리창 총리와의 양자 회담에서도 재차 “중국이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 북핵 문제가 한·중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전날(6일) 아세안 정상회의에선 북·러 정상회담을 겨냥해 “국제사회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 군사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론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리는 북한 인권에 대해 직설적 비판이다. 윤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계기 다자회의 등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는 곧, 북한 인권 문제”라며 “독재정권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동원되는 주민의 참혹한 인권 실상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7일 브리핑에서 “북한 주민을 쥐어 짜내 만드는 결과물이 핵과 미사일이라는 점에서 북한 핵ㆍ미사일과 북한 인권을 등치 처리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겨냥한다는 측면에서 북한이 가장 민감히 반응하는 부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북한 인권 언급을 피했다. 또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제안에도 참여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은 다자회의 기간에도 한·미·일 협력을 강조했다. 중국을 겨냥한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피했던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에 대한 강조와 국제 규범 중요성에 대한 언급도 회의 때마다 이어졌다. 과거와 달라진 세 번째 장면이다. 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각) 인도 G20 계기에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하며 “앞으로도 함께 더 많은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했고, 10일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예고에 없던 정상회담을 하며 “연내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11일 채널A에 출연해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가치와 원칙에 따른 외교를 주춧돌로 잘 놓는 것이 시작이며, 그것이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라며 “이를 기초로 상호존중에 입각한 국익 외교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중 관계에서 상호존중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에 대해선 “정보 당국이 오랜 시간을 두고 주시하며 모든 역량을 통해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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