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종합 공간

문운주 2023. 9. 11. 11: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임금도 양반이 멘 가마는 못 오르셨을 터이니 나는 복인일세."

송강 정철의 제안으로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등 제자들이 멘 가마를 타고 면앙정에서 내려왔다.

면앙정 회방연 때 제자들이 송순을 가마에 태워 집까지 모셔다 드린 일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문제였다.

 산속 깊은 곳이나 언덕배기 느티나무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정자는 오다가다 들르는 쉬어가는 장소 거나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순이 후학을 가르치고 여생을 보낸 면앙정

[문운주 기자]

▲ 면앙정 송순이 관직을 그만두고 후학을 가르치고 노년을 보낸 곳
ⓒ 문운주
"임금도 양반이 멘 가마는 못 오르셨을 터이니 나는 복인일세."

제자들이 멘 가마를 탄 기쁨의 소회다. 송순은 87세 때 회갑, 회근에 이어 회방의 기쁨을 맞았다. 이곳 면앙정에서 회방연이 열렸다. 송강 정철의 제안으로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등 제자들이 멘 가마를 타고 면앙정에서 내려왔다.

조선시대에는 장수한 관원에게 잔치를 열어주는 회갑, 회근, 회방의 3대 경사가 있었다. 회갑은 출생 60년, 회근은 혼인 60년, 회방은 과거 급제 60년이 되는 해를 말한다. 회방연의 영광을 누린 사람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단 4명뿐이었다고 한다.
 
▲ 어제 1798년(정조 22년)에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 '하여연앙정'
ⓒ 문운주
 
면앙정의 회방 잔치는 220여 년 후인 1798년(정조 22년)에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정조는 향시인 도과를 광주에서 치르게 했다. 이때 직접 출제한 시제가 '하여면앙정'이었다. 면앙정 회방연 때 제자들이 송순을 가마에 태워 집까지 모셔다 드린 일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문제였다.
현재 건물은 몇 차례 보수를 했다. 다만 구조나 형태 등으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는 있다. 정면 3칸·측면 2칸 정자다. 전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을 배치했다. 골기와의 팔작지붕 형태다. 송순은 이곳에서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고봉 임제등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정자 속에는 크고 넓은 흥이 있네
풍월을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은 끌어당겨
명아주 지팡이 짚고 가며 한평생을 보내리라

송순이 쓴 면앙정 삼선가다. 면앙은 아래로는 땅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의미다. 관직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싶은 심정이 엿보인다. '초려 삼 칸 지어서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9월 7일 무등산 산장길을 거쳐 담양으로 향했다. 쌍교 삼거리에서 면앙로를 따라 4km쯤 가다 보면 작은 산 제월봉을 만난다. 오른쪽 비탈길로 이어지는 돌계단 길을 따라 걸어 오르니, 숲 속에 한 정자가 묻혀 있다. 면앙정이다.

인근 절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 염불 소리, 유지매미의 찌르르 우는 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자연 오케스트라다. 정자 맞은편은 대나무로 둘러 쌓여 있고, 주변은 참나무 등 낙엽교목이 숲을 이룬다. 
   
▲ 면앙정기 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 새겨놓은 비
ⓒ 문운주
   
면앙정은 담양부의 서쪽 기곡마을에 있으니, 지금 사재로 있는 송공이 경영한 것이다. 내 일찍이 송공을 따라 면앙정 위에서 놀았는데, 공은 나에게 정자의 유래를 말하고 기문을 지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내가 정자의 경치를 보니 탁 트인 것이 가장 좋고 또 아늑하여 좋았으니, 유자 유종원이 말한  '놀기에 적당한 것이 대개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면앙정을 겸하여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중략)

가을이 코 앞에 다가왔지만 달궈진 땅덩어리가 식을 줄 모른다. 혼자서 나선 나들이다.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여유롭다. 기대승이 쓴 <면앙정기>를 들여다본다. 450여 년 전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옹암산, 금성산, 용천산, 추월산 등이 구름과 함께 아득히 끼어 있어 놀랍기도 하고...'

정자는 나에게 피서처의 한 곳에 불과했다. 산속 깊은 곳이나 언덕배기 느티나무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정자는 오다가다 들르는 쉬어가는 장소 거나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오래전 젊은 시절 누정을 잘 모를 때다.

조용하고 아늑한 앞마당과 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산과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너무 아름답다. 정자는 그냥 더위만 식히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는 곳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종합 공간이었다.
 
▲ 면앙정 회방연도  금봉 박행보 화백의 ‘면앙정 회방연도’. <한국가사문학관 >
ⓒ 문운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