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의원님, 그때 박격포 안 쏜거 맞습니까
[김도균, 박현광 기자]
▲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3.9.6 |
ⓒ 연합뉴스 |
'1985년 10월 훈련 중이던 육군 병사가 잘못 발사된 박격포탄을 맞고 숨진 것을 불발탄을 밟아서 숨졌다고 조작·은폐해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이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했다'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진상규명위) 결정문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연일 반발하고 있다. 신 의원은 당시 사고로 숨진 병사의 소속 중대장이었다.
신 의원은 <오마이뉴스> 최초 보도([단독] 신원식 중대장 시절 '부대원 사망' 조작 결론 https://omn.kr/25dio)가 나간 지난 8월 27일 이후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난 5일 작성해 언론에 배포한 '군진상규명위 결정문의 오류와 허구성'이란 제목의 참고자료는 총 29페이지에 이른다.
신 의원은 해당 자료에서 "군진상규명위 진술 중엔 40mm 고폭탄 불발탄 사고라는 진술도 분명히 있음, 헌병의 수사결과보고서(중요사건보고), 군의관 사망진단서 등의 공식 자료도 불발탄 사고임을 명명백백하게 말해주고 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격포 사격은 보병이 기동하기 전에 공격 준비 단계에서 실시되었다. 보병이 기동하는 도중에 보병의 머리 위로 포사격 훈련을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피해자 A이병이 폭발로 쓰러질 당시 박격포 사격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신 의원은 당시 군 훈련 절차, 단계별 병력 편성과 무기 운용, 무기 제원 등을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군진상규명위가 '박격포 오폭 사고'로 꿰맞추기 위해서 온갖 무리와 억지를 동원했다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신 의원은 "군진상조사위는 훈련에 참가한 장교 23명, 사병 346명 중 장교 7명, 사병 8명을 조사하고 그중 주로 사병들의 진술을 근거로 판정했다"라면서 "사병들의 진술은 사건 발생 37년 만의 진술이고, 그 대부분이 추측성이거나 전해 들은 전언 형식의 진술이며, (중략) 현실과 괴리가 있는 과장된 진술들"이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10일 군진상규명위의 결정문을 토대로 신 의원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봤다.
'불발탄 폭발' 진술은 누가 했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군진상규명위 결정문을 보면, 신 의원 주장처럼 숨진 A이병이 불발탄을 밟았다는 진술이 두 군데 나온다. 진술자는 당시 대대장과 중대장 신원식 대위였다.
"나는 잘 모르지만 불발탄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돌격 앞으로'해서 불발탄을 건드리면 다칠까 봐서 상황을 끝낼까 하는 생각과 마지막 순간에 고지 탈취도 안 하고 상황 끝낸다고 욕할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다. '돌격 앞으로'라고 (고민)하는 와중에 전방에서 뻥 소리가 났다. (중략) 사고 상황을 보면 다친 병사가 유탄발사기 불발탄을 자기가 발로 찬 것 같다고 들었다." - 대대장
"헌병대 수사 결과를 확인하신 대대장님의 설명에 따라 인지하였다. 당시 대대장님이 '망인이 돌격 사격하던 중 M203(유탄발사기)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 중대장
그런데 대대장은 "군 생활하는 동안 포탄(여기서는 불발탄을 지칭한 것으로 보임)에 맞아 사고가 발생한 상황은 망인(A이병)의 사고가 처음이고, 곡사포든지 유발탄이든지 사고는 처음 봤다"면서, 불발탄 사고로 결론 내린 헌병대 조사와 관련해선 "헌병대에서 나에게 (사건에 대해) 물었겠지만 설명한 기억은 없고, 중대장이 했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중대장으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에 대해서 대대장은 "누군가에게 불발탄을 밟았다는 그 말을 믿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알아볼) 이유도 없었다. 추측이었다. 정황상 맞았다.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대대장은 중대장으로부터 A 이병이 불발탄을 밟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고, 중대장은 거꾸로 헌병대 수사 결과를 확인한 대대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부대원들의 진술 속에도 '불발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다.
박격포를 사격한 화기소대 포반 박격포 사수 박OO, 사고 당시 A이병과 같은 분대로 지근거리에 있었던 정OO, 사고 직후 A이병의 상태를 목격한 2소대장 강OO은 사고 직후 A 이병이 "불발탄을 밟았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지만, 정황상 불발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이외에 신 의원이 불발탄 폭발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8사단 헌병대의 중요 사건보고, 군의관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도 불발탄 언급이 있지만 이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사고 직전 박격포 실사격 정말 없었나?
신 의원은 1985년 10월 24일 8사단 21연대 2대대 공지합동훈련에서 실제 박격포 사격을 한 것은 공격 준비 사격 단계에서 당일 오후 1시 이전에 있었을 뿐, A 이병이 폭발로 쓰러진 오후 3시 35분에는 박격포 사격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보병 공격진이 공격 개시선을 출발한 후엔 실제 사격이 아닌 사격 절차만 연습했다는 설명인데, 박격포 사격 유무는 A이병 사망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신 의원 주장(오후 1시 이전)과 박격포탄 폭발을 목격했다는 부대원 증언(오후 3시 35분께) 사이에는 적어도 2시간 30분의 시차가 존재한다. 군진상규명위 조사에 응했던 부대원 중 4명은 사고 당시 A 이병 근처로 떨어지는 박격포탄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1명은 "무엇인가 날아와 터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중대장의 사격 명령 후 박격포의 포탄이 쏟아진 뒤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고, 포탄이 공격진이 대기하고 있는 위치에 날아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 화기소대 M60사수 조OO, 부사수 김OO
"소대장의 은폐 명령이 있고, 첫 번째 박격포에서 포탄을 사격하였으나, 우리가 대기하고 있던 능선의 타격지점을 맞추지 못하고 능선 뒤쪽으로 넘어갔다. 이어 두 번째 포탄을 사격하였고, 곧 '꽝' 소리와 동시에 포탄이 망인의 발 옆으로 떨어진 것을 보았다." - 1소대 공격진 이OO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이OO 상병은 왼쪽에 망인(A이병)은 오른쪽에 서 있었다. 누군가 '피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앞에 작은 바위가 있었는데 이OO 상병이 재빠르게 엎드려서 피했다. 하지만 망인은 초병이다 보니 순간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고 움찍거릴 뿐 어쩔 도리 없이 바로 망인에게 근접해서 떨어진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 1소대 화기분대 임OO
▲ 60mm 박격포 |
ⓒ 위키피디아 커먼스 |
특히 훈련 당시 중대장 지휘 아래 박격포를 운용했던 화기 소대장과 실제 포탄을 발사했던 박격포 사수는 A이병 사고 당시 분명히 박격포 사격이 있었음을 증언했다.
"당시 훈련 상황에서 중대장으로부터 박격포 사격명령이 하달됐고, 포반장인 임OO에게 박격포 한 발을 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쏘라고 지시했다. 사격 후 1소대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들어왔고, 박격포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것을 직감했다." - 화기소대장 김OO
"화기소대장과 포반장이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포격하라는 지시가 무전기로 와서 그런지, 빨리 쏘라고 지시했다. 직감적으로 (사거리가) 너무 짧다고 얘기했지만, 무전기를 통해서 빨리 쏘라는 명령이 있다 보니 사격했다. (중략) 우리 포진지는 공격진의 후방에 배치되어 사고 발생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직감적으로 '우리 포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을 했고, 지금도 역시 망인의 사망원인에 같은 생각이다." - 박격포 사수 박OO
이러한 진술들을 종합하면 사고 직전 박격포탄을 1발 쏘았는지, 2발 쏘았는지 사람마다 기억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복수의 부대원들이 박격포 사격은 분명히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A 이병이 속해있던 1소대장은 "박격포 사격 시 소대원들에게 엄폐와 은폐 명령을 내렸고, 자신 또한 엎드린 채 대기하고 있어 사고 발생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군진상규명위에 진술했다. 이 역시 사고 당시 박격포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 A 이병이 폭발로 쓰러지고 훈련이 중단된 직후 신원식 중대장이 박격포 운용을 책임졌던 화기소대장과 포반장을 질책했다는 아래의 증언 역시 사고 당시 박격포 사격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박격포 사격 자체가 없었다면 신원식 중대장이 부하들을 질책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직후 개활지인지 포진지인지 장소는 정확하지 않은데 병사들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중대장이 (화기)소대장에게 '너 사거리 얼마 줬어'라고 묻고, 소대장이 얼마 줬다고 대답하자 조인트를 깠다." - 박격포 사수 박OO
"망인의 발 옆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훈련이 중지되었으며, 소대장을 비롯하여 몇몇 소대원이 망인 곁으로 달려갔다. 곧 중대장과 포반장 등도 현장에 도착하였고, 그 자리에서 중대장이 포반장에게 고함을 지르며 질책했다." - 2소대 공격진 지OO
이러한 진술에 대해 신 의원은 "둘 다 거짓말"이라면서 "당시 중대장(본인)은 사고 후 사고자를 본 적이 없음. 사고 현장에서 1.5km 후방의 중대지휘소에 위치해 있었고 거기서 사고후속 조치를 한 후 병력을 인솔해서 부대 복귀하라는 대대장님 지시를 이행함"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 같은 신 의원의 주장은 대대장의 진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대장은 사고 직후 상황에 대해 "내가 사고 현장에 갔더니 병사들이 모여 있고 군의관이 지혈하고 있었다. 신원식(중대장)도 있고 나도 옆에 있었다"라고 군진상규명위에 진술한 것이다. 신 의원은 참고자료에서 자신의 주장과 180도 다른 대대장 진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요사건보고'·'사망진단서', 결정적 물증일까
신 의원은 "사고 원인을 말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자료는 군의관의 사망진단서"라며 "당시 군의관은 헌병과 독립적으로 사체 검안을 통해 사망 원인을 규명한 후,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서 날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측흉부, 우측액와부, 우측대퇴부 및 족부 등에 다발성 파편상'을 사망 원인으로, 흉부관통상 및 대퇴부 관통상을 중간선행사인으로 명기했다"면서 "이는 사고자가 적어도 박격포에, 그것도 피폭되어 사망한 것은 아님을 결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신 의원의 이런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사망진단서와 검안서는 사망 사실만 확인할 뿐 법의학 전문성이 결여된 문서라는 게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병사(病死)가 아니라면 법의학적으로 사인은 반드시 부검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군의관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상기 사병은 1985. 10. 24 15:30경 발생된 불발탄 폭발(추정)로 인하여..."로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A 이병의 시신은 부검 없이 사고 다음날 바로 화장됐다.
▲ 대북전단 살포 대응에 대해 답변하는 신원식 합참 작전본부장 2014년 10월 1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따른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에 신원식 합참 작전본부장(사진 왼쪽)이 말하고 있다. |
ⓒ 유성호 |
8사단 헌병대가 성명불상 '목격자'와 사고 당시 A 이병의 곁에 있었던 2명의 진술을 불발탄 폭발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헌병에 진술했던 병장 정OO는 군진상규명위 조사에서 "그때 누군가 와서 불발탄을 밟았다고 말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날아와 터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아마도 정씨는 자신이 경험했던 내용을 그대로 진술했을 텐데, 37년 전 헌병은 정반대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한 셈이다.
분명한 것은 A 이병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이 60mm 박격포탄 때문이었는지, 40mm 불발 유탄 때문이었는지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는 폭발물 감정이 당시에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 의원은 사고가 불발탄에 의해 발생했던 게 너무 명백했기 때문에 자신은 헌병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이 말은 동시에 헌병 조사가 졸속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신 부검이나 폭발물 감정 등 법의학·법과학에 기초한 수사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 군 당국이 A 이병 사망 사건을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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