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호 참사 3년, 누가 무리한 작업으로 내몰았나
[이준목 기자]
▲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 SBS |
2020년 8월 6일, 춘천에 있는 의암댐 인근에서 인공 수초섬을 결박하기 위해 작업하던 선박들이 단체로 전복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8명이 물에 빠졌고 2명이 구조되었으나 나머지 6명은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사고 당일 현장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고 댐에서는 물이 방류되고 있던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대체 희생자들은 왜 하필 그날, 무리한 작업을 진행해야 했으며, 그 책임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9월 9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밧줄과 명령, 의암호 선박 침몰 미스터리' 편을 통하여 2020년 춘천 의암호 선박 침몰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3년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은 진상규명
사건은 3년 전인 지난 2020년 여름으로 거슬러올간다. 8월 6일 당시 강원도 춘천 일대는 며칠째 폭우가 쏟아져 호우경보와 강풍주의보까지 빌령된 기록적인 날이었다. 상류에 있는 춘천댐과 소양강댐이 모두 수문을 열어 의암호의 유속은 어느때보다 빨라진 상태였다.
당시 목격자들은 의암호에서 축구장만한 크기의 의문의 물체가 사람을 태운 채 떠내려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급하게 경찰청과 시청 환경감시선, 고무보트 등 이 투입되어 가로막으려고 했지만, 유속이 너무 가팔라서 인공물체는 수상통제선을 넘어 수문쪽으로 빠르게 근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전 11시 29분, 댐 수문을 약 500미터 남겨두고 인공물체 옆에 있던 경찰정이 돌연 옆으로 뒤집혔다. 그리고 뒤따라가던 환경감시선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복됐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급류에 휘말려 댐 수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희생자들은 춘천시 공무원과 경찰, 하청업체 관계자와 기간제 근로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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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는 예상치 못한 강한 폭우와 댐 방류 때문에 벌어진 자연재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족들은 악천후와 댐 방류라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수초 하나 건지자고 희생자들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작업지시가 내려졌다며 분노했다. 군경과 당국은 44일에 걸쳐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실종자 중 5명이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1명은 끝내 시신도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춘천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정확한 사실과 정황을 밝히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의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3년이 다 되도록 정확한 사고의 원인과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사건 발생 1년 9개월이 지나서야 춘천시청 공무원 7명과 수초섬 업체직원 1명이 기소됐다. 지난 8월에는 3년 만에 재판부의 현장 검증이 진행됐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피의자로 입건된 시청 직원들이 변호사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검사를 조롱하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혀 사고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춘천시는 당시 관계자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이 났다고 해명했다.
제작진은 당시 시청 측 담당자들을 찾았다. 수초섬 관련 시청 주무부처는 환경정책과였다. 현재는 다른 부서에서 근무중인 계장 서아무개씨는 '수초섬을 잡아오라는 작업지시 자체를 한 일이 없다'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당시 수상 안전담당주무관이었던 김아무개씨는 "분명히 철수방송을 내렸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서 사고가 나기 전 안전예방조치를 다했다고 해명했다. 죽음의 피해자들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정작 책임자는 없다는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좁혀지지 않은 양측의 입장 차이
▲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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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수초섬 업체 직원들은, 김 부장은 악천후 때문에 작업을 하기 위험한 날씨라고 판단했음에도 현장에 나와 "쓰레기 청소를 하라"는 공무원들의 요구로 무리해서 작업을 하던 중, 수초섬이 떠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던 수초섬을 저지하기 위하여 경찰정과 행정감시선이 연락을 받고 출동했다. 선박들은 뱃머리로 수초섬을 육지로 밀어내면서 고정작업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댐에 가까워지면서 경찰정이 먼저 균형을 잃고 전복되자, 가까이 있던 감시선에서 이를 목격하고 물에 빠진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접근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 있던 수상통제선에 엔진이 걸려 감시선마저 전복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
수초섬 업체 직원 최씨는 그날 김 부장을 찾아와 작업지시를 내린 환경정책과 공무원들이 있었다며 이들의 비극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아니면 거기 가서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확한 인상착의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작진이 취재한 결과, 당시 현장에 방문했던 공무원 중 한 명은 제작진이 만났던 계장 서아무개씨임을 확인했다. 서씨는 현장을 찾아 김 부장을 만난 사실은 인정했지만, 훼손된 수초섬의 상태만 확인하고 "찌그러진 수초섬을 어떻게 하냐" 한마디만 했을 뿐, 작업지시는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서씨는 상급자에게 '부유물 제거작업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서씨는 업체 스스로 판단하여 먼저 작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초섬 업체 대표는 "비가 오면 위험해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시청 측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무리한 작업을 시킨 것"이라고 반박하며 양측의 입장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 시청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김 부장이 모터보트를 수초섬을 수상통제선에 묶으려는 무리한 시도를 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을 촬영한 CCTV에서도 수초섬과 선박들이 지나치던 상황에서 수상통제선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모습이 식별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영상과 상황을 분석한 결과, "(김 부장이)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 같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정황상 빠른 물살이 흐르는 곳에서, 김 부장이 혼자 고무보트를 몰면서 동시에 거대한 길이의 밧줄을 수상통제선에 묶으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전문가들은 영상 분석을 통해 경찰정이 모종의 이유로 후진해 오다가 통제선에 부딪혀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빠른 물살 속에 경찰정에 1차로 부딪히며 팽팽하게 늘어난 통제선이 다시 튕겨 오르며 경찰정을 2차로 타격하여 배가 그대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사고 동영상에는 경찰정이 무언가에 충돌하여 휘청이는 듯한 모습이 담겼고, 생존자들도 마치 번개가 치듯 큰 타격음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해당 지역이 위험지역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희생자들은, 왜 굳이 무모하게 수상통제선까지 내려갔을까. 전문가들은 희생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급격한 방류와 부유물 등으로 인하여 선박이 정지되거나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또한 경찰정이 침몰한 직후, 고무보트를 타고 있던 김 부장은 경찰정에서 떨어진 주무관 이씨를 구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때 현장을 바로 벗어났더라면 두 사람 모두 생존할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김 부장과 이 주무관은 떠나지 않고 침몰한 경찰정 안에 남아 있을 또다른 이를 끝까지 구조하려고 하다가 끝내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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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청 공무원들은 이미 현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정작 현장에서는 이행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사망한 이 주무관은 환경 정책과의 2년 차 8급 막내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사고 전날에는 출산 휴가를 낸 상태였다.
이 주무관의 유가족은, 시측의 변명대로라면 힘없는 막내공무원이 자신의 의지로 휴가기간 중에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나, 상부의 지시까지 어겨가며 독단으로 일을 강행하다가 화를 입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분노했다. 그럼에도 당시 상급자인 공무원들은 이 주무관에게 출산휴가 중에 출근하거나 기간제 근로자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전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
또한 당시 생존자인 기간제 근로자와 업체 직원 중에서 철수 방송을 들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가는 "철수지시의 유무도 입증이 어렵지만, 사전에 내려진 철수지시가 아니었다. 설사 주장대로 철수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시간상으로 보면 이미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수초섬의 관리 책임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시청과 업체 측은 서로의 책임이 더 크다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법조 전문가는 "공개된 공유 수면 위에서 섬을 만든 것이기에 춘천시가 행정적으로 관리감독할 책임이 존재한다. 춘천시 측의 지시 감독하에 업체가 관리하고 있던 상태라고 본다면 형사상 관리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진술조서에서 시청과 업체 측의 수초섬 작업관련 대화 내용에서 드러난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공무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업체 측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표면적으로 업체에 지시, 요청을 내리는 담당자는 사망한 이 주무관이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실제로 이 주무관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는 것은 최소한 계장급이나 그 이상의 상급자가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또한 계장 서씨가 경찰조사 결과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문자들을 삭제한 정황을 지적하며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라고 평가했다.
사고 발생 3일 전부터 춘천시는 집중호우와 댐방류로 모든 수상레저업체에 배를 띄우지 못하도록 영업일시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시청관계자와 수초섬 업체 측은 그럼에도 수초섬 보수 작업을 계속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자체에서 운항중지명령이 떨어졌음에도 현장에서 작업하는 배가 있었고 공무원들은 이를 보고도 묵인했다. 이것만으로도 공무원들은 지자체의 공식적인 '명령 위반'이라는 중대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청측 재난안전 담당자는 "그 당시의 어떤 사건이고 대비가 있는 게 아니다. 이게 <그알>의 취재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시에서는 컨트롤 타워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시적인 사건으로 서로 다투고 있는 것뿐"이라며 시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안이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에 표창원은 "인명 사고가 발생한 참사에 대응하는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 이후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느냐 재발하느냐 예측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전체를 보지 않고 개별로 떼어내어 '이 사람의 행위가 참사의 원인이니까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해'라는 건 왜곡된 투영이다. 전체를 보지 않고 한 곳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과장해 내는 오류"라며 사망한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공무원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어 표창원은 "만약 김 부장의 실수라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김 부장 개인의 과오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잘못된 것은 안전 불감증에 빠져있었던 끝까지 안전 수칙, 규칙, 교육 이런 것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사람의 몸값으로, 생명 값으로 치른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춘천시 공무원들와 수초섬 관리업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만 급급할 동안 다섯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실종된 의암호 참사의 비극은 여전히 미궁 속에 가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이미 떠나간 희생자는 말이 없다. 소중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남은 유족들이 이제라도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를 통한 '진실 규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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