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평생 가전' 시대인데...걸맞지 않는 뽑기 운

박선미 2023. 9.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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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을 살 때 뽑기 운이 따라야 한다."

가전제품을 살 때 흔히 하는 말이다.

기자도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 그릴, 에어프라이어, 토스터 기능을 한 대로 통합해 만든 신개념 주방가전 비스포크 큐커를 살 때 '뽑기 운'을 가장 걱정했다.

하지만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가전을 어필하고 있는 가전업계 전략과는 달리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가전은 살 때 뽑기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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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을 살 때 뽑기 운이 따라야 한다."

가전제품을 살 때 흔히 하는 말이다. 기자도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 그릴, 에어프라이어, 토스터 기능을 한 대로 통합해 만든 신개념 주방가전 비스포크 큐커를 살 때 '뽑기 운'을 가장 걱정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품의 기능은 너무 좋지만 잘못 뽑으면 제품이 가동될 때 이상한 소음이 발생한다는 글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자의 뽑기 운은 좋았다. 1년째 제품을 이상 없이 사용하는 중이다.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제품 내구성이 좋아져 지금은 백색가전을 10년 이상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LG전자는 '업(UP) 가전'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제품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새 가전처럼 오랫동안 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삼성전자도 모듈형 제품을 추가로 설치하거나 필요에 따라 패널을 교체할 수 있게 해 제품이 고장 나지만 않으면 오랫동안 질리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가전을 어필하고 있는 가전업계 전략과는 달리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가전은 살 때 뽑기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전업계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편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제품에 대한 수율(양품 비율)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사용자의 고의적인 파손으로 인한 품질 이상이 아니라면 일정 기간 제품에 대한 AS를 책임져 주는 무상보증 정책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무상 보증기간은 일반제품 1년, 에어컨 같은 계절성 가전은 2년으로 대부분 1~2년이다. 삼성과 LG가 다이렉트 드라이브(DD) 모터, 디지털인버터기술(DIT)이 들어간 모터와 컴프레서 등 일부 자신 있는 핵심 부품에 대해 10년 이상의 보증기간을 두기도 하지만 이는 모든 부품이 이상 없이 맞물려야 제 기능을 하는 완제품에 대한 보증이 아니다.

'리콜'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가전업계 '리콜'은 특정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낙인과 같아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힌다. 자발적 리콜은 곧 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이는 1년에 수십건의 리콜을 결정하더라도 브랜드 신뢰도에 직격탄을 입지 않는 자동차업계와 조금 다른 점이다. 문제가 생긴 제품군에 대해 다시 점검을 받을 권리를 주는 자동차업계와는 달리 가전업계는 소비자가 제품을 사면 그 이후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몫이 된다. 제품을 사용하는 환경이 다른 만큼 문제가 생겼을 때 "제품엔 이상이 없다. 사용자가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하는 식이다. 가전 제품 가격이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닌데 소비자는 억울할 수 있다.

가전업계가 내구성 있는 제품들을 만들며 '평생가전' 시대를 연 만큼 이제는 무상보증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 유럽 브랜드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가전이 싸게 사서 몇 년 쓰다 버리는 중저가 제품이 아닌, 비싸지만 한번 사면 오랫동안 업데이트해서 쓸 수 있는 프리미엄 가전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려면 무상보증 기간을 늘릴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능적인 면에서 우리 기업이 만든 제품들과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산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 더군다나 폐가전을 줄여야 하는 친환경 시대다. 소비자가 제품을 더 오래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기업의 ESG 경영에도 좋다.

박선미 산업IT부 차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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