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지분쪼개기'로 늘린 소유자 재개발조합 설립 투표 때 배제돼야"
재개발조합 설립에 찬성하는 토지소유자 수를 늘리기 위해 형식직인 증여나 매매를 통해 극히 적은 지분의 소유권을 넘기는 이른바 '지분쪼개기'가 이뤄진 경우 조합 설립 동의정족수를 따질 때 지분쪼개기를 통해 소유권을 취득한 토지소유자들을 전체 토지소유자나 동의자 수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토지면적을 기준으로 한 동의요건과 별도로 동의한 토지나 건축물 소유자 수를 기준으로 한 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면서 그 산정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한 도시정비법령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에 해당돼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 등 3명이 서울시 성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인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은 이유에 일부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조합설립인가처분의 위법성의 정도, 조합 설립을 위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정족수 및 동의자 수 산정 방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과소지분의 취득 경위에 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A씨 등은 서울시 성북구의 한 주택재개발 사업시행예정구역 주민이다.
이 구역에 토지와 건축물을 소유한 B 건설회사는 2008∼2018년 자사 임직원을 비롯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209명에게 토지나 건축물 지분을 매매·증여했다. 이 중 194명의 토지 지분은 0.0005%∼0.002%, 건축물은 0.003%~0.04%에 불과했다.
이후 성북구청은 2019년 5월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 512명 중 391명이 동의해 도시정비법상 동의정족수(4분의 3 이상)를 충족했다며 재개발조합 설립을 인가했다. 동의자 중 상당수는 지분쪼개기를 통해 B사에서 이른바 '조각 지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A씨 등은 B사가 소유자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조합 설립에 동의하게 했다며 재개발조합설립인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B사가 지분 쪼개기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B사는 토지나 건축물의 과소지분을 임직원, 지인 등에게 명의신탁하거나 통정해 형식적으로 매매·증여했고 이를 통해 소유자 수를 인위적으로 늘렸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도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에 적용된 개정 전(구) 도시정비법 및 시행령의 조합설립 인가 요건을 살폈다.
재판부는 "구 도시정비법 제35조 2항은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정관 등을 첨부해 시장·군수 등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며 "또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33조 1항 1호는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자 수 산정 방법에 관해 재개발사업의 경우 1필지의 토지 또는 하나의 건축물을 여럿이서 공유할 때에는 그 여럿을 대표하는 1인을 토지등소유자로 산정하고, 1인이 다수 필지의 토지 또는 다수의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필지나 건축물의 수에 관계없이 토지등소유자를 1인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정비법상 '토지등소유자'는 재개발사업의 경우 정비구역에 위치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그 지상권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재판부는 "이처럼 도시정비법령에서는 토지면적을 기준으로 한 동의요건과 별도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를 기준으로 한 동의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면서, 조합 설립과 관련한 토지등소유자의 전체 의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자 수 산정 방법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또 재판부는 "도시정비법령의 규정 내용과 취지, 체계 등을 종합하면, 오로지 재개발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정족수를 충족하게 하거나 재개발사업 진행 과정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식적인 증여, 매매 등을 원인으로 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 등의 명의로 과소지분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는 방식을 통해 인위적으로 토지등소유자 수를 늘리고 그들로 하여금 조합설립에 동의하는 의사표시를 하도록 하는 것은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정족수 및 동의자 수 산정 방법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도시정비법령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라며 "따라서 위와 같이 늘어난 토지등소유자들은 동의정족수를 산정함에 있어서 전체 토지등소유자 및 동의자 수에서 제외돼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탈법행위에 해당돼 무효로 봐야 하는 지분쪼개기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도시정비법령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위해서는, 토지 또는 건축물에서 과소지분이 차지하는 비율 및 면적, 과소지분을 취득한 명의자가 이를 취득하기 위해 실제로 지급한 가액, 과소지분을 취득한 경위와 목적 및 이전 시기, 과소지분을 취득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과소지분 취득자들이 토지등소유자의 수에 산입됨으로써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수에 미친 영향, 과소지분 취득자들이 조합설립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명한 정도 및 그 의사가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정족수에 미친 영향, 과소지분 취득자와 다수 지분권자의 관계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가 B사의 행위가 이 같은 지분쪼개기에 해당된다고 보고 설립인가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것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된 이후에도 토지 또는 건축물 중 일부 지분에 관한 양도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라면서도 "다만 이 판결은, 재개발조합설립을 위해 '지분쪼개기' 방식을 통해 인위적으로 토지등소유자 수를 늘리고 그들로 하여금 조합설립에 동의하는 의사표시를 하도록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봐, 동의정족수를 산정할 때 위와 같이 늘어난 토지등소유자들은 전체 토지등소유자 및 동의자 수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밝힌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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