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다이아 묻힌 7개국 연쇄 쿠데타... 프랑스 왜 떨고 있나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2019년 이후 쿠데타 발생 아프리카 국가들 |
ⓒ 임백철 |
하나의 행위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두 가지, 즉 의지와 실현 가능성이 요구된다. 이 내재적, 외재적 요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때 더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할 때 의지가 불을 지피기도 하고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면 의지를 더 자극한다. 이러한 연쇄적 현상은 선한 행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에도 일어난다.
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현재의 아프리카 대륙이다. 아프리카에서 특히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는 곳이 사헬지역(사하라 사막과 사바나 지역이 만나는 곳) 국가들이다. 이곳에서 2019년 4월 이후 4년 동안 수단, 말리, 차드, 기니, 부르키나파소, 니제르가 차례로 군사 봉기에 의해 전복됐다.
홍해에서 대서양까지 아프리카를 정확히 가르는 이곳 국가들아 약속이라도 한 듯 쿠데타 도미노 현상을 보이면서 국제정치학에서 '쿠데타 벨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30년 독재 끝에 2019년 4월 쿠데타로 축출된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사헬지역 연쇄 쿠데타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
사헬지역 국가들은 치안과 국방력이 매우 취약하다. 종족 간 갈등은 물론이고 이슬람 극단 세력의 테러 행위가 빈번하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 지역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프랑스는 치안 유지 명목으로 군사력을 파견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연쇄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달 30일 적도 지역의 가봉 정부마저 군부에 의해 전복되면서 아프리카 안보 위기는 대륙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쿠데타 벨트'로 지정학적 위기 상황을 제한하려는 일각의 분석이 무색하게 이제는 아프리카 대륙의 안정적 국제관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아프리카의 위기는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륙의 지하에는 가늠할 수 없는 양의 지하자원이 묻혀 있다. 석유,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오래전부터 '돈 되는' 광물들뿐 아니라 첨단 디지털 산업에 필요한 희토류 등의 잠재성까지 부각되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다. 하지만 그들 정부는 막대한 지하자원에 대해 개발은커녕, 유지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영향력을 유지해 온 프랑스는 프랑코폰(francophone 프랑스어권)을 넘어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 프랑스+아프리카)의 이름을 달고 이 지역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의 과거 프랑스 식민지가 20세기 초 독립했지만 프랑스는 그 후에도 다양한 지원과 협력으로 특수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알리 봉고 가봉 대통령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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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상당수 '프랑코폰' 독재자들은 프랑스 권력 핵심부의 비호하에 부동산을 비롯한 수많은 프랑스 영토 내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가봉의 봉고 대통령이 대표적 예다. 2대에 걸쳐 56년 간 대통령직을 유지해 온 봉고 가문은 파리에만 30채의 호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콩고, 적도기니, 가봉의 대통령이 프랑스에 가진 동산과 부동산 총액이 1억 6000만 유로(2293억 원)에 달한다. 물론 아프리카의 프랑코폰 국가가 이들 세 나라만은 아니다. 그리고 최근 쿠데타가 발생한 7개국 가운데 수단을 제외한 6개국이 프랑코폰 국가에 해당한다.
이처럼 프랑스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권력 핵심층이 긴밀한 관계(부당한 거래 포함)를 이어가면서 이 지역에서 에너지 산업을 포함한 프랑스 기업의 독점적 지위 또한 공고해져 왔다. 드골 정부 이후 아프리카를 향한 프랑스의 외교, 군사, 문화 등 전방위적 지원은 계속됐고 그렇게 불어권(Francophonie)은 영연방(Commonwealth) 이상으로 국제무대에서 특수 관계 국가 간의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 간의 특수관계에 따른 열매가 프랑코폰 국가 국민들에게도 돌아갔을까? 호화로운 권력 핵심부와 달리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프랑스 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성장과 성과와 달리 아프리카의 자원산업은 여전히 초보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서아시아에서 밀려난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또는 자생적 지하드 세력인 보코하람 등이 사헬지역에서 끝없는 테러와 국가 전복을 기도해 왔다는 점이다. 수십 년의 정체와 혼란, 무기력 끝에 이 지역의 국민들은 프랑스의 의미 없는 영향력에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헬지역의 연쇄 쿠데타 현상은 바로 프랑스에 대한 해당 지역 국민들의 실망과 연계해 생각해야 한다. 물론 쿠데타 세력이 반드시 반프랑스 세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군부 세력이 친프랑스 성향 정부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의 동요를 틈타 군사정변을 일으킨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친프랑스 정부를 전복시키는 군부에 대해 국민들의 암묵적 또는 적극적 지지는 자명한 일이다. 지난 7월 쿠데타가 있었던 니제르의 경우가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니제르 국민들은 친쿠데타, 반쿠데타 세력으로 나뉘어 시위에 나섰고 이런 중에 친쿠데타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을 공격한 일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 지난 4일(현지시간) 아프리카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군부 쿠데타를 이끈 브리스 올리귀 응구마 장군의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후 사람들이 군인과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달 30일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을 축출한 응구마 장군은 닷새만인 이날 과도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자유롭고 투명한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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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소위 민주주의 인권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아주 단순하면서 즉효의 방법으로 해당 지역 국민의 마음을 얻어 갔다. 지하드를 비롯해 시민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권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이권도 착실히 챙겼다.
이렇게 얻은 비공식적인 천문학적 부(富)가 러시아로 흘러갔다. 마치 자유당 시절 '상인조합 이사회'와 같은 초법적 질서유지가 그들에 의해 자행돼 온 것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폭력적, 야만적 질서유지, 그리고 이를 통한 자원 채굴 등 부의 획득, 그것이 바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아프리카 지역 임무였다.
이것이 또한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죽음으로 바그너 그룹이 해체되거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과 같은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도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리더의 이름은 바뀌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유지 되리라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바그너 그룹의 이 '신박한' 비즈니스 모델은 수십 년 이어져 온 부도덕한 프랑스의 기득권 유지 덕분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는 프랑스의 기득권을 무력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봉 정부까지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프랑스는 아프리카 사헬지역과 그 외 프랑코폰 지역에서 프랑스 혐오주의가 번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 우려가 단지 프랑스의 국제적 영향력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취약한 민주주의 자생력과 높은 쿠데타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불행히도 이것은 아프리카 다른 국가 군부에 불필요한 의지와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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