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 다른 특징은…" [헬스조선 명의]

오상훈 기자 2023. 9.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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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청소년 우울증 명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사진=서울대병원 제공
청소년 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교육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11세 우울증 진료 인원은 2018년 1849명에서 2022년 3541명으로 91.5%나 늘었다. 같은 기간 15~17세는 1만5605명에서 2만4588명으로 57.6%, 12~14세는 5893명에서 9257명으로 57.1%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의 비율도 높아졌다. 

청소년 우울증은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를 제외해도 여러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학업 부진, 등교 거부, 게임 중독, 식사 및 수면 장애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부모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데 청소년 우울증의 초기 증상은 사춘기와 비슷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청소년 우울증의 증상, 원인, 치료에 대해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재원 교수에게 물었다. 

-성인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청소년 우울증의 특징은 무엇인가?
청소년 우울증은 우울감보다 짜증, 예민함 등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또 성인 우울증이 식욕 감퇴로 인한 체중 감소가 생길 수 있다면 신체적으로 성장중인 청소년은 적정 체중에 미치지 못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우울증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불안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서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중요하다.

-학령기 이전 어린이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나? 
초등학교 입학 전 우울증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만 4~5세 때 우울증이 진단된 사례도 있다. 다만 발병 가능한 최소 연령대가 정해진 건 아니고 보통 만 9~10세 정도부터 발병한다. 소아 보다는 청소년 우울증이 훨씬 많다.

-청소년 우울증의 초기 징후는 무엇인가?
우울증 진단 기준에 나와 있는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짜증이나 예민함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지만 우울감, 무기력감, 흥미 및 의욕 저하, 식욕 감퇴, 수면 장애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아이들이 많이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가 집중력 저하다. 책이 안 읽힌다거나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그 전 문장을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이다 보니 집중력 저하가 초기에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사춘기 증상이랑 헷갈릴 것 같은데?
우울증 초기 증상이 사춘기 반항 행동과 겹치면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아이의 변화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 집중력 저하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질환은 ADHD다. ADHD는 비교적 어린 시기에 시작되는데 초등학생 때 갑자기 나타나진 않는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었고 성적도 좋다가 중학교 입학 후 갑자기 아이가 기운 없어하고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고 성적이 떨어진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 우울증의 주요 요인은 무엇인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ADHD나 자폐증과 같은 신경발달장애는 유전적인 요인이, 우울증은 환경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특정 질환이 발생하는 데 있어서 유전적인 요인이 기여하는 분율을 ‘유전율’이라고 하는데 자폐증 같은 경우 약 90%, ADHD는 80%, 우울증은 40%라고 얘기한다.

환경적인 요인에는 학업, 또래 및 가족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아동 학대나 방임과 같은 ‘아동기 부정 경험’도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고 보고된다. 어느 하나의 단일 요인이 우울증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진 않나?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우울증이나 조울병 같은 기분장애들은 증상이 나타났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하는 삽화를 가지고 있다. 치료하지 않는 우울증의 경우 평균 삽화는 9개월 정도로 보고된다. 별 문제 없이 지나가면 다행인데 문제는 이 기간 동안 파생되는 학업 부진, 등교 거부, 게임 중독, 식사 및 수면 장애 등의 문제가 아이나 부모의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서 우울증을 앓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게 중요하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사진=서울대병원 제공
-게임 중독으로도 이어질 수 있나?
흥미와 의욕이 저하되면 웬만한 자극에는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극적인 게임에 몰입하기 쉬워지고 나중에는 게임만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등교 거부가 대인관계 기피로 이어지면 방 안에서만 지내면서 게임 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게임이지만 곧 마약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에선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이 음주, 흡연, 마약 등 물질 남용 문제가 있는지 평가한다. 한국은 그동안 마약이 잘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우울증 클리닉을 기준으로 초진 시 메이(Mood and Anxiety clinic of Youth, MAY) 평가를 시행한다. 우울 증상과 우울증에 동반될 수 있는 불안장애, ADHD, 품행문제 등 전반적인 행동과 정서 문제를 점수화하는 게 목적이다. 특히 우울 증상은 CDRS-R(Children’s Depression Rating Scale-Revised)이라는 평가 도구로 측정하는데 부모와 청소년의 보고에 더해 평가자가 관찰하는 항목까지 포함돼 있어 객관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빈혈이나 갑상선 기능 저하와 같은 질환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두통이나 복통이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므로 혈액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 등 기본검사가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K-SADS라는 면담 도구를 사용해 면접 평가를 진행한다. 2~3시간가량 소요되는데 미국정신의학협회(APA)의 분류 및 진단 기준인 DSM-5에 따라 우울증을 비롯해 다른 질환을 갖고 있는지 평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이의 증상이 단순 사춘기인지, 우울증인지, 항우울제 복용까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청소년 혼자 방문해도 괜찮은가?
실제 그런 사례도 있다. 부모 동의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과 동반하는 자해나 자살 위험이 같이 있는 경우라면 청소년의 상태를 부모에게 알려야 하므로 동반하는 게 좋다. 그러나 부모의 개입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에는 청소년 혼자 병원에 오게 하기도 한다. 사례에 따라 다르다.

-우울증과 자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우울증은 자해 확률을 높인다. 그러나 우울증이 없는데도 같이 노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자해하는 아이들도 있다. 반면, 자해가 반복되면 자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자해하는 친구가 있거나 자해 관련 콘텐츠를 직접 업로드 하는 경우에 그렇다. 전세계적으로 자해 청소년의 비율이 늘고 있다.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소년기의 특성과 SNS의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누가 우울한지, 어떻게 자해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치료 옵션에는 무엇이 있나?
CDRS-R 점수가 40점 이상이라면 항우울제 단독 치료를 적용한다. 그런 다음 8~12주 후에 치료 효과가 있는지 평가한다. 목표는 CDRS-R 점수를 50% 이상 감소시키는 것이다. 처음 점수가 80점이었다면 8~12주 후 40점 이하로 떨어져야 치료 반응이 있다고 판단한다. 첫 번째 항우울제에 반응하는 비율은 60% 정도다.

CDRS-R 점수가 50% 이상 감소하지 않았다면 치료 저항성이라 판단한다. 이런 경우 항우울제를 바꾸고 인지행동치료를 병합한다.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했을 때 치료 반응률이 15%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상담소 등에서 상담만 받아도 되나? 
CDRS-R 점수가 40점 미만이라면 항우울제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인지행동치료나 대인관계 정신 치료 같은 비약물 심리치료를 먼저 시행한다. 즉 우울증이 경미한 경우라면 전문적인 상담이나 심리 치료만으로 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우울증의 증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경미한지 아닌지 임의로 판단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항우울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많은 것 같은데…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잘 쓰면 된다. 검색 엔진이나 커뮤니티 등을 보면 효과보다는 부작용에 대한 얘기만 있어 안타깝다. 항우울제의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에 자마 네트워크 오픈(미국의학협회 저널)에 항우울제 치료에 반응하는 우울증 청소년은 뇌의 배외측 전전두피질의 부피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으로 인해 위축됐던 신경세포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항우울제는 우울증 청소년 뇌의 배외측 전전두피질과 상전두이랑 및 복내측 전전두피질 사이의 휴지기 연결성을 감소시키기기도 한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우울증 청소년이 치료 후 보다 편안 뇌 연결성을 가진다는 걸 시사한다. 이런 긍정적인 치료 효과와 관련된 연구들이 더 많이 나오면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먼저 정기적으로 우울증 청소년을 선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미국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만 12~18세 청소년은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장한다. 우리나라는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중학교 1학년 때 한 번,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번 하는데 부족하다. 자해나 자살은 우울증과 가장 관련이 깊으므로 정기적인 우울증 선별과 그에 따른 개입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보고듣고말하기’와 같은 자해 및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 보급돼야 한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은데?
부모-자녀 관계는 우울증의 치료 저항성 요인이다. 우울증 치료에 대해 부모가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지지해야 치료 효과가 커진다. 특히 우울증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잘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만큼 반응한다.

부모가 충분한 기간 관찰한 다음 ‘내가 한두 달 정도 너에 대해 관찰을 했는데 네가 이러이러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서 좀 걱정이 된다’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는 대부분 마음을 연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얘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신뢰감이 생긴다.

학업 스트레스, 경쟁 등 교육과 관련된 체계는 바꾸기 어렵다. 부모-자녀 관계는 노력하면 개선이 가능하다. 환경이 아무리 나빠도 부모-자녀 관계에 집중하면 우울증을 예방 할 수도, 미리 발견할 수도, 더 잘 치료할 수도 있다.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과 부모에게 한 마디 한다면… 
우울증은 뇌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청소년, 부모 모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한테 무슨 잘못을 해서 병이 생긴 건지 물어보는 부모가 많다. 이러면 원인을 찾는 데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끼쳤던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찾아서 정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에 매몰되기 보다는 현재나 미래를 위해 우울증 치료에 전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재원 교수./사진=서울대병원 제공
김재원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위원,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학술위원을 거쳐 아시아인으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AACAP(미국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위원으로 위촉됐다. 전문 분야는 소아청소년의 우울증, 자해·자살 위험, 불안증 등이다.

그는 청소년 우울증 명의다. 미국 피츠버그대의 STAR와 CABS와 연계해 청소년 우울증을 체계적으로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또 국내 최초로 소아청소년 우울증 전문 클리닉 개설을 이끌기도 했다. 청소년 자해 요인, 항우울제의 효과 등 청소년 우울증 치료를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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