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그릴 여유 없다…사우디전, 클린스만 '단두대 매치'로 바뀌나
(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단순 평가전이 감독의 거취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른바 '단두대 매치'로 바뀌는 분위기다.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와 친선 경기를 앞둔 클린스만호를 가리키는 말이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13일 오전 1시 30분(한국시간) 영국 뉴캐슬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와 9월 A매치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
대표팀은 런던 브렌트퍼드 구단 훈련장에서 캠프를 차리고 훈련을 진행 중이다. 오는 11일 상대국 사우디아라비아 측이 제공하는 전세기를 타고 경기가 열리는 뉴캐슬로 이동해 막바지 준비를 한다.
클린스만이 감독으로 취임한 뒤 기대 속에 진행된 첫 유럽 원정이지만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클린스만호는 앞서 지난 8일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웨일스 대표팀과 9월 A매치 첫 경기를 치렀으나 상대 슈팅이 골대를 맞히는 등 졸전 끝에 0-0으로 간신히 비겼다. 클린스만 부임 후 첫 무실점 경기였지만, 그 만큼 빈약한 공격력으로 무득점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프턴 원더러스), 황의조(노리치 시티), 조규성(미트윌란) 등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멤버들이 고스란히 존재했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주도권을 잡고 펼치던 태극전사 특유의 공격력은 바뀐 감독 밑에서 볼 수 없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우리나라(28위)보다 낮은 웨일스(35위)가 1.5군을 들고 나왔음에도 클린스만호는 슈팅 수에서 4-10으로 밀리고, 유효 슈팅에서도 1-4에 그쳤다. "골대 덕에 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클린스만호는 웨일스의 두꺼운 수비와 전방 압박에 곤혹스러워하며 빌드업(공격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좌우 풀백의 오버래핑과 중앙 미드필더의 킬러 패스가 실종되면서 '무엇을 위한 축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오게 했다.
클린스만 홀로 "상당히 어려운 경기였다. 양 팀 모두 준비한 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고, 골 찬스도 많이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대등한 경기였다"라고 긍정 분위기를 풍겼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느 덧 5경기째 승리가 없다.
지난 3월 부임한 클린스만은 콜롬비아와 첫 경기에서 손흥민을 공격 지역 프리롤로 두면서 전반에만 두 골을 폭발시키며 기분 좋은 45분을 보냈다. 하지만 즐거운 순간은 그 때까지였고 이후부턴 적어도 어떤 축구를 하는지 알기 힘든 전술과 선수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펼치는 용병술, 거기에 결과마저 내지 못하는 축구로 일찌감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마치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프리랜서 입장에서 여러 일 중 하나로 여기는 듯한 직업 윤리는 국내 팬들과 축구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클린스만은 여러 차례 미디어의 지적에도 미국 스포츠채널 ESPN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상주 약속은 이미 헌신짝이 됐고 대신 가족들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젠 클린스만의 입에서 K리그 선수들 이름 대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의 이름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승·무·패를 점찍는 일까지 한다. "직장에서 유튜브를 해도 회사 허락이나 엄격한 제한을 받기 마련인데 클린스만이 다른 일을 서슴 없이 강행하는 것을 보니 프리랜서에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클린스만은 영국에 와서도 처신이 깔끔하지 않다. 승부에 집중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 매치에 A매치 기간 중 참석하려다가 막판에 포기했다. 웨일스전 이후 자신의 아들 선물을 챙기기 위해 웨일스 간판 선수 애런 램지(카디프시티)의 유니폼을 챙긴 점도 팬들의 웃음 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 대표팀 승리보다 아들 선물을 먼저 챙겼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클린스만은 지난 6월 부임 4번째 A매치에서 일본에 0-6으로 대패한 엘살바도르와 만나 후반 막판 세트피스로 실점을 얻어 맞고 1-1로 비기면서 역대 외국인 사령탑 데뷔 후 무승 신기록을 세웠다. 이어 웨일스전 무승부로 1992년 전임 감독제 시행 이후 데뷔 최다 무승 신기록까지 깨트렸다.
그러다보니 내년 아시안컵에서 그가 지휘봉을 잡는 게 합당하느냐는 의문까지 불거진 상태다.
클린스만의 이력과 겹쳐 그에 대한 물음표는 더욱 커진 상태다. 그는 미국 대표팀 감독이던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지역에선 참혹하게 탈락, 미국이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중심에 섰다.
이어 독일 구단 헤르타 베를린에선 막대한 지원에도 성적 부진으로 위기에 몰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으로 돌연 사퇴하는 상식밖의 일도 저질렀다. 어느 덧 축구 감독으로서 성적을 낸지가 10년 가까이 된 상태인데, 한국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돌출 행동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 때 자국 대표팀을 맡았으나 미국 자택에서 원격 지휘를 해 이미 독일에선 조롱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 독일전에서 거둔 대승도 클린스만의 거취를 더욱 압박하는 돌출 변수가 되고 있다. 일본은 우루과이, 콜롬비아와 치른 3월 A매치에서 1무1패로 한국과 똑같은 성적을 냈으나 6월 엘살바도르전, 페루전을 각각 6-0, 4-1로 크게 이기더니 10일 독일과 원정 평가전에서 4-1 대승을 거둬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은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도 독일에 2-1 역전승을 거뒀지만, 당시와는 다른 경기력이었다. 월드컵 당시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취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고유의 패스 축구를 접목하며 더욱 단단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이는 한국과 뚜렷한 비교가 되고 있다.
친선 경기에서 결과와 내용이 모두 미진한 지도자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항상 논란이다. 다만 지난 5경기에서의 대표팀 퇴화 과정 및 그의 준비 결여를 살펴보면 클린스만이 외치는 아시안컵 우승 발언이 양치기 소년의 비명처럼 허황되게 들리는 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클린스만 부임 뒤 가장 명예롭고 존중받아야 할 국가대표팀이 조롱과 외면의 상징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승리 없는 감독에게 위닝 멘털리티를 기대할 수 없다. 당초 사우디전은 아시아 정상권 팀들끼리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각자 대표팀의 장단점을 탐색하는 장이었으나 이제는 클린스만 스스로 자초한 문제점으로 인해 단두대 매치에 가까운 경기가 되는 중이다.
사진=Reuters, AP, EPA, AFP/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DB, 대한축구협회,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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