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0원 얼굴 바뀔라" 이순신 영정 40년 저작권료 분쟁 '촉각'
한국은행 "화폐영정 저작권 갖고 있어"
판결 결과 따라 전면 교체 가능성까지
100원권 화폐용 이순신 영정을 그린 동양화가 월전 고(故)장우성 유족 측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분쟁 소송이 3년여간의 법정 분쟁을 거쳐 내달 종지부를 찍는다. 유족 측은 40년간의 저작권료와 함께 이순신 영정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재판결과에 따라 동전의 영정을 전면 교체하는 것은 물론 다른 지폐에 사용된 영정에 대한 저작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11일 한은과 법조계에 따르면 월전의 아들이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장인 장학구씨가 서울중앙지법에 한은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1심 판결 선고가 내달 13일 이뤄진다. 이번 판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원권 화폐용 이순신 영정을 그린 장 화백의 유족인 장씨는 2021년 10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973년부터 1993년까지 사용된 500원권과 1983년부터 현재까지 사용되는 100원 동전에 장 화백의 충무공 영정이 사용됐는데 저작권이 침해됐다며 배상을 적극 요구한 것이다. 장 화백이 그린 충무공 영정은 박정희 정권이던 1973년 국내 첫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이후 한은의 요청으로 화폐 도안용 영정으로 새롭게 제작, 1983년부터 100원 주화 앞면에 사용되고 있다.
앞서 진행된 변론 기일에서도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다. 한은은 당시 저작자의 양도·이용 허락을 받은 공정 이용이라는 확고한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1975년 이순신 화폐 영정을 제작하며 적정금액인 15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는 당시 물가를 고려했을 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며 "한은은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화폐영정을 제작하고 이것을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화폐영정의 저작권은 한은이 갖고 있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유족 측은 지난 40년간의 저작권료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고 여기에 일부 단체가 장 화백의 친일 행적을 비판, 친일화가로 매도됐다며 해당 영정의 반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측은 지난 8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저작권 소송은 장 화백 아들이 설립한 재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진행하는 사안"이라면서도 "내달 법원의 판결을 신중히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손해배상액 산정과 규모는 재판 결과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저작권 관련 줄소송 위기…수천억원 교체 비용 우려
문제는 이번 판결이 단순 저작권 문제뿐만 아니라 장 화백의 친일 행적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사회 갈등 요소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 화백은 친일 논란이 일면서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이로 인해 표준영정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에 대한 심의만 4년째 진행 중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작가 친일행적, 복식 고증 오류가 제기되면서 표준영정 지정 해제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돼 2020년 하반기부터 해제 여부를 놓고 심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사안이 복잡하고 영향력이 큰 만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표준영정 지정 해제 시 동전을 바꾸겠다는 입장이지만 각종 찬반 논란으로 인해 표준영정 지정이 유지되면서 아직은 동전교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특히 이번 논란이 100원 동전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키우고 있다. 100원 동전의 이순신 영정뿐만 아니라 5000원권(율곡 이이), 1만원권(세종대왕), 5만원권(신사임당) 화폐영정의 근거자료가 된 표준영정을 그린 화백들은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면서 교체 논란이 불거졌는데 당시 한은은 3종의 지폐를 바꾸는 데 약 47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내달 이뤄질 판결에서 유족 측이 승소할 경우 현재 화폐용 도안에 사용되고 있는 영정 그림들이 줄줄이 저작권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며 "현재 화폐용 도안은 대부분 화가가 그린 영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일 행적 논란 등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극단적으로는 동전과 지폐 전면 교체 이슈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화폐 속 영정이 저작권 분쟁에 휩싸인 가운데 최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지폐 초상화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에 나서면서 인물 대신 3·1 운동처럼 상징적 장면을 지폐의 삽화로 선정하는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지난 7일 발간한 연차보고서에 '지폐 초상화부터 조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자'는 글을 게재하고, 현재 한국 지폐의 초상화 선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지폐 인물 전원이 15~16세기 조선 전기 인물들로 근대는 고사하고 조선 후기 인물도 없는 데다 성리학 인사들이 대거 현대 지폐 초상화를 채우면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이념이 성리학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국가가 쓰는 지폐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나라의 지향점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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