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계열 VC, 돈가뭄 해결사일까 블랙홀일까
자금난 겪고 있는 초기 기업의 돈줄 역할
지주사·은행 등 자금 계열 VC로 몰릴 우려
“공적 기능 취지 어긋나고 VC업계 건강한 성장 해칠 우려”
최근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을 설립·인수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금융지주사들이 비은행 부문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포석에서 벤처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KB·신한·하나·우리·NH 등이 이미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VC 계열사를 확보한 가운데, IBK도 연내 VC 설립을 준비 중이다.
VC가 초기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은행이 여기에 대출을 연계하면 수직계열화를 꾀할 수 있다. 거대한 자산을 보유한 초대형 은행들이 VC 산업에 진입하는 것은 양면적 효과가 있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다만 다양한 VC로 흘러야 할 은행 자금이 자신들의 계열사로만 몰리면 자칫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지는 부정적인 면이 부각될 수도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에 뛰어든 금융지주사들
1990년 KB금융이 자본금 100억원으로 창업투자회사(KB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이후 약 30년간 금융지주 산하 VC는 KB인베스트먼트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5년 새 금융지주 산하 VC가 줄줄이 생겨났다. 2018년 하나벤처스(하나금융)를 시작으로, 2019년 NH벤처투자(NH금융)·BNK벤처투자(BNK금융), 2020년 신한벤처투자(신한금융), 2021년 하이투자파트너스(DGB금융), 2022년 JB인베스트먼트(JB금융), 2023년 우리벤처파트너스(우리금융) 등이다.
금융지주사가 VC업계에 뛰어드는 이유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한 수익성 강화다. 예대 마진을 통한 '이자장사'를 넘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VC업계의 과실을 계열사를 통해 적극 거둔다는 취지다. 그간 은행들은 초기 기업 투자를 위해 외부 VC들에 자금을 출자해 왔는데, 직접 운용하면서 은행 대출까지 연계해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VC 분야의 노하우를 쌓아 투자은행(IB)으로서의 역량을 다진다는 목적도 있다.
성과는 나쁘지 않다. KB인베스트먼트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155억92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7% 늘었다. 운용자산만 2조원이 넘는다. 우리금융지주가 지난 3월에 인수한 우리벤처파트너스(옛 다올인베스트먼트)의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49% 늘어난 61억5500만원으로 집계됐다. 신한벤처투자와 하나벤처스는 올 상반기 각각 22억6100만원, 22억92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VC업계선 '기울어진 운동장' 우려
금융지주 계열 VC의 잇단 등장을 두고 VC업계에선 그간 여러 VC로 골고루 흘렀던 은행 자금이 금융지주 계열 VC로만 흘러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기업이 계열사를 일방적으로 돕는 '일감몰아주기'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금융지주사 계열 VC가 운영 중인 펀드를 살펴보면 대다수 지분이 모회사인 지주·은행·캐피탈사 자금으로 이뤄져 있다. 신한·KB·하나금융 등 3곳의 올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계열 VC에 총 5000억원 규모의 출자를 진행했다.
신한벤처투자는 9개 펀드를 통해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으로부터 2022억7700만원가량의 출자를 받았다. 신한-네오 Market-Frontier 투자조합 2호 365억(42.7%), 신한벤처투모로우투자조합 1호 354억(39.62%), 신한-네오플럭스 에너지 신산업 투자조합 215억(31.66%), 뉴웨이브 제6호 투자조합 135억(30%)등이다.
KB인베스트먼트는 13개 펀드를 통해 KB금융지주·국민은행·KB캐피탈 등 계열사로부터 총 2187억원의 출자를 받았다. KB글로벌플랫폼펀드 508억(22.73%), KB디지털이노베이션벤처투자조합 342억(25.74%), KB스마트스케일업펀드 410억(25%), KB파운더스클럽 2022펀드 195억(66.67%), KB뉴딜혁신펀드 171억(20%), KB지식재산투자조합 2호 163억(37.5%) 등이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벤처스가 보유한 3개 펀드에 총 668억1900만원을 출자했다. 하나혁신벤처스스케일업펀드에 약 254억원(46.2%), 하나비대면디지털이노베이션펀드 254억원(57.4%), 경기하나버팀목재기지원펀드2호 162억원(44.5%) 등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VC가 조성하는 블라인드 펀드의 경우 모태펀드 자금을 받아서 민간 자금을 합쳐야 결성이 가능한데 금융지주 아래에 있으면 아무래도 펀드 만들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VC업계에선 금융지주사 계열 VC들의 공격적인 확장에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금융지주사 계열 VC들의 시장 진입은 전체 VC 시장 규모가 커지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칫 은행 자금이 자신들의 계열 VC에만 몰릴 경우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은 정부의 규제산업이고 공적인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금융지주사 계열 VC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규모 자본을 가진 은행이 자칫 자회사에만 모험자본을 몰아주면, 공적인 기능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VC업계의 건강한 성장을 해칠 수 있다. 윤건수 회장은 "투자 측면에서만 보면 사실 은행들은 모험 투자를 할 때 여러 VC에 돈을 나눠주는 게 가장 유리하고, 그동안은 그렇게 해왔다"며 "운용사(GP)로부터 좋은 딜(deal) 정보를 다양하게 받을 수 있고 또 업계 전반에 자금을 돌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금융회사들이 자회사에만 돈을 몰아주는 행위는 공적인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고, 정보 취득 경쟁력도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VC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자회사 VC에만 돈을 몰아주는 은행이 몇 개 있다"며 "고객들의 돈으로 자기 자회사만 밀어준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일이고 ESG투자 차원에서도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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