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고대 그리스·로마 넘나들며 즐기는 문화의 향기

김현정 2023. 9.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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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흔히 서양 문화의 뿌리라고 일컬어지죠. 그리스·로마 신화는 도서관부터 집 책장에 이르기까지 한자리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영화·드라마·연극·뮤지컬·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으로 제작돼 동아시아의 한국인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친숙한 편입니다. 줄여서 ‘그로신’이라고도 많이들 말하죠.
사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서양 문화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류 역사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일례로 지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에서 출발했다고 하며, 로마법은 중세 유럽으로 계승돼 근대 시민법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뿐만 아니라 철학·과학·예술·언어·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어요. 그리스·로마 신화의 문화적 영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관계에 주목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를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

그리스는 청동기인 기원전 3000년경 미노스·미케네 시대로부터 다양한 문명이 발달했으며, 로마는 기원전 753년 건설됐죠. 발칸반도 남쪽 끝에 자리한 그리스와 이탈리아반도에서 세계로 뻗어 나간 로마는 지리적·역사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어요. 평야보다 산이 많았던 그리스에서는 하나의 나라로 몸집을 불리기보다 여러 폴리스(도시국가)가 생겨났으며, 기원전 5세기경 크게 번성해 지중해 전역에 식민 도시를 건설했죠. 기원전 490~479년 페르시아 전쟁에서 폴리스 연합은 강대국 페르시아를 꺾었고, 문화적으로는 고전 시대(기원전 5~4세기)라 불리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나타난 것도 이때죠.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를 지나 차츰 쇠퇴한 그리스는 기원전 1세기경이 되면 대부분 로마에 복속됩니다.
한편 테베레강 하류 작은 도시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명을 이어받아 기원전 510년 공화정을 열며 성장가도를 달린 로마는 기원전 27년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제정 시대를 맞이하죠.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며 북아프리카·아시아까지 지배력을 확장한 로마제국은 5현제라 불리는 5명의 황제를 거치면서 200여 년간 평화와 번영의 시기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룩합니다. 강대한 제국은 4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정치적 문제가 계속 불거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죠. 로마는 동과 서로 분리됐고, 건국 이래 1163년 만에 처음으로 로마시가 외국인에게 점령당했으며, 476년 서로마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이해요. 고대 그리스·로마를 이어받은 동로마는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천 년간 비잔틴 문화를 꽃피운 뒤 1453년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유산 126점 한자리에


간략하게 역사를 훑어보니 전성기만 따져도 약 500~600년 차이가 나는 그리스와 로마인데요. 이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란 제목으로 그리스·로마 유물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소중 학생기자단이 출동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에 신설한 고대 그리스·로마실에서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유산 126점을 선보이죠. 2000년대부터 국내서 열린 그리스·로마 관련 전시는 대부분 둘 중 한쪽에 집중했는데, 이번 전시에선 둘 다 살펴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 1부 ‘신화의 세계’에선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양희정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 학예연구사는 “처음부터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두 나라의 신화와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는 점에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죠. 이번 전시는 1부 신화의 세계, 2부 인간의 세상, 3부 그림자의 제국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해 조각·묘비·도기 등 빈미술사박물관의 고대 그리스·로마 소장품을 4년간 장기 대여하는 방식으로 2027년 5월 30일까지 열려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왜 그리스나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과 협업했는지” 궁금해했죠. 양 학예사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평했어요. “물론 주요 유물은 그 두 나라에 많아요. 하지만 영국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죠.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했는데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15세기 이후 사실상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어요. 황제들이 수백 년간 꾸준히 취향에 맞는 물건을 모을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을 갖춘 거죠. 그중에는 그리스·로마 유물도 많은데,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에서 관리해요. 합스부르크 기획전 등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이번에 4년이란 긴 시간 유물을 빌려올 수 있었습니다.”
빈미술사박물관의 그리스·로마 유물은 페르디난트 2세가 시작해 합스부르크 왕가 대대로 수집한 거예요. 정아인 학생기자는 “작품 중 상당수는 빈미술사박물관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선별해서 전시하게 되었나요”라고 질문했죠. “보통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소장품이 1000개라면 50개, 100개 정도나 될까요. 상설 전시품은 조금씩 교체하고 기획전도 열지만, 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관람객이 못 보는 유물이 훨씬 많습니다. 빈미술사박물관의 고대 그리스·로마 컬렉션은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그중 한국 관객에게 보여줄 만한 유물을 고르고 골랐죠. 도기 같은 경우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어요. 이번 전시품의 절반 정도가 최초로 공개됐죠.”
그리스로마 신화 주요 신
설명을 듣던 김서호 학생기자가 “그리스와 로마는 다른 나라인데 왜 항상 같이 취급하나요”라고 질문했죠. “그리스·로마 신화도 그렇고 다른 두 나라 중에선 특히 그리스와 로마를 묶어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느낄 거예요. 역사를 보면 그리스 번성기엔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쪽에 식민지를 두기도 했고, 로마가 커졌을 땐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로마에 복속됐죠. 그러면서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유사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죠. 학생기자가 말한 그런 질문을 전시 초반에 던집니다.”
양 학예사는 “전시 제목도 그 일환”이라고 덧붙였죠. 아인 학생기자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명을 듣는 순간 마치 부모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내가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라며 어떻게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됐는지 물었죠. “편지가 연상된다니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먼저 ‘고대 그리스·로마전’ 같은 보통의 제목보다 주목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할 수 있는 제목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또 로마가 그리스에게 ‘어떤 의미일까’ 묻는 겁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재미가 없어 생략했죠. 누군가 궁금해하길 바랐고, 이를 따라 전시를 보고 나면 아마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1부 신화의 세계로 입장하면 신들의 왕으로 불리는 유피테르(제우스)상이 반깁니다. 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치는 영상이 나오는 투명 스크린이 유피테르상과 어우러지게 배치됐죠. “날씨를 비롯한 ‘하늘의 힘을 통제하는 제우스’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꾸몄어요. 영상이 끝나면 제우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제우스 이전 태초의 카오스에서 나온 티탄 등 다른 신도 있지만 전시에선 권력 싸움에서 이들을 이기고 권좌를 차지한 제우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 옆에는 ‘만물의 시작과 끝과 중간을 손아귀에 쥔 신’이란 이름의 청동상이 있죠.
“오른손을 보면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걸 들었죠. 바로 번개 다발입니다. 천둥과 번개의 신 제우스의 힘을 상징하죠. 왼손은 현재 비어있지만 왕홀을 들었을 거라고 추정해요. 이런 작은 신상은 그리스의 제우스상을 모델로 로마 시대에 만든 것으로, 성소나 집에 있는 제단에 모셨습니다.” 그리스의 제우스는 로마에선 유피테르로 불렸죠. 그리스와 로마는 같은 신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어요. 전시에서는 그리스 유물의 경우 그리스 이름으로, 로마 유물은 로마식 이름으로 표기했습니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 주요 유물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래전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왜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바다에서 큰 파도가 생기며, 샘이 말라붙는지 등 자연현상부터 사랑·정의·지혜 등 추상적인 개념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거예요.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 제우스가 화가 났다고 여기는 식이죠. 또 각자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그리스와 로마는 모두 같은 종교였나요”라고 말한 박규리 학생기자가 “신화가 유명하고 신과 관련된 유물이 많은 건 종교의 힘이 강해서인가요”라고 질문했죠. “크게 봐서 같은 신화를 공유한 건 맞지만 종교를 하나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리스에는 여러 폴리스가 있었고, 아테나 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신 아테네처럼 폴리스마다 중시하는 신이 달랐어요.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이집트 신화나 페르시아의 태양신도 받아들였죠. 여러분이 아는 기독교도 로마에서는 여러 종교 중 하나였어요. 다만 그리스와 로마는 신화를 공유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세계관·가치관·사후관 등도 공유했습니다.”
중요한 신들의 권능과 관장 영역, 관련된 일화는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양 학예사는 먼저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를 그린 킬릭스를 소개했죠. 킬릭스는 짧은 손잡이가 두 개 달린 잔으로, 흰 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그리스 크레타 섬으로 납치하는 신화의 한 장면이 담겼죠.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 1부 ‘신화의 세계’에선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구전으로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다 기원전 8세기경 기록되기 시작했어요. 유명한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비롯해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등을 통해 우리는 신들의 출생과 성격,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등을 알 수 있죠. 기원전 7세기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본 펠리케에는 제우스의 무릎에 서 있는 모습으로 아테나의 탄생이 그려졌죠. 갓 태어났지만 투구를 쓰고 창을 든 프로마코스(선봉장) 유형으로 나타난 아테나의 앞에는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가 마주 서 그의 권능을 표현했어요.
한쪽에는 작고 둥글납작한 주전자처럼 생긴 유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사용한 점토 등잔이에요. 윗면의 구멍으로 기름을 넣고, 주전자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부분에 심지를 넣어 불을 붙여 썼습니다. 윗면에는 여러 신을 비롯해 동식물과 일상 모습 등을 그려 꾸몄고, 바닥에는 상표를 찍어 어느 공방에서 만든 건지 표시했어요. 수행동물인 독수리를 탄 유피테르, ‘아프로디테 에피트라기아(염소 위의 아프로디테)’란 별칭에 근거한 염소를 탄 베누스(아프로디테)를 비롯해 유노(헤라)의 공작새만 그린 등잔까지 하나하나 찾아보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었죠.
그 옆으로는 주요 신들이 노니는 만신전이 자리했습니다. 뒤편의 신전에서 두셋씩 앞쪽 스크린으로 소환해 그 신의 이미지·이름·특징 등 정보를 살펴볼 수 있게 했죠.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워낙 신이 많다 보니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 신만의 특징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아르테미스의 경우, 사냥과 달의 여신이라 활·화살·화살통 등을 들고 초승달 장식을 하거나 사슴과 함께 있는 식이죠. 덕분에 조각 등이 일부만 남아있어도 누구인지 알기 쉬운 편이에요.
신전 옆에는 그리핀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켄타우로스 같은 혼종생물과 헤라클레스(헤르쿨레스)를 비롯한 영웅의 모험담을 전시했어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일반인은 옷을 입은 모습이지만 신과 영웅은 나체로 표현하는 게 대부분인데요. 네메아의 사자 물리치기 등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내린 12과업을 불굴의 의지로 달성한 헤라클레스 역시 나체로 묘사됐습니다.
규리 학생기자가 “그리스·로마 사람들도 우리가 그리스·로마 신화 책을 보듯 신화를 다 배웠는지” 교육체계를 궁금해했죠. “아쉽게도 그런 부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물은 남아있지 않아요. 다만 신들의 이야기는 일상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었으므로 학교 교육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이를 정리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같은 걸 읽고, 우리들이 지금 조각상을 보듯 그들도 조각상이나 부조 장식, 도기 등을 보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지 않았을까요.”
2부 ‘인간의 세상’에는 로마인들이 교외 저택을 꾸밀 때 선호한 흉상·헤르마(사각기둥 위에 두상을 올린 것) 등이 전시됐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이 인간처럼 고뇌·슬픔·분노·사랑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곤 하는 게 특징인데요. 인간과 달리 가장 아름답고 젊고 건강하며 단련된 이상적인 모습으로 불멸의 시간을 누렸기에 신상 역시 수려하게 표현했죠. 튀르키예에 있는 고대 도시 에페소스에서 오스트리아가 유적 발굴 작업 중에 찾은 베누스상에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아름답다(kalos)’와 ‘선하다(agathos)’의 합성어로 선함과 아름다움의 결합 안에서 완성된 인간의 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의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언급한 바 있죠.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책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대체로 신들이 왜 그렇게 쪼잔하고 잘 삐지고 변덕스러운지, 제우스는 왜 그렇게 결혼을 많이 하는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누가 오빠 혹은 누나인지 궁금해요.” 서호 학생기자의 질문에 양 학예사는 “먼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의 경우 쌍둥이로 나오는 책도 있고, 아르테미스가 아폴론을 낳는 엄마를 도왔다는 책도 있고 명확히 얘기하지 않기도 하는 등 다양하다”며 “그리스 신화는 구전으로 이어져 이를 옛 시인들이 정리했는데, 누가 기록했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했어요.
“제우스는 결혼을 많이 한 건 아니고, 헤라와 결혼한 뒤 바람을 많이 피웠어요. 이에 관해 여러 견해가 있는데, 내 편을 만들어 세상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려고 한 것이라는 설이 있죠. 고대에는 세상을 신의 활동으로 이해했어요. 예를 들어 법의 여신을 찾아가 자녀를 낳으면 그와 협력자가 되는 거고, 그럼 세상의 법체계가 단단해진다는 식이죠. 또 폴리스마다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해 신을 도시의 역사로 끌어들였는데요. 수호신과 도시를 동일시한 만큼 그 지위가 너무 차이 나면 안 되겠죠. 그러니까 같은 위치인 제우스의 자식이 늘어났다는 해석도 있어요. 그리고 신들이 변덕스러운 건, 아무래도 인간을 닮아서이지 않을까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를 기획한 양희정(뒤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로마 황제들의 초상 이미지에 대해 설명했다.
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때로 제물을 바치며 신의 도움을 청했고, 신이 호의를 베풀면 또다시 제물을 바치며 이에 감사했죠. 이는 결혼 같은 개인적인 일부터 전쟁 등 국가적 문제까지 다양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술을 붓고 작은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그린 암포라 등 다양한 도기들을 살펴봤습니다.
신화의 세계는 헤카테의 경고로 마무리되는데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이 대리석 부조는 이승과 저승의 교차로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그리스 여신 헤카테를 묘사했죠. 저승으로 가는 길목의 수호자로서 헤카테상은 보통 세 명이 한 몸이 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 부조 역시 3개의 얼굴과 뱀·칼 등을 든 6개의 팔이 보이죠. 그 밑에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졌는데요. 내용을 간추리면 오늘날의 노상방뇨 금지, 무단 쓰레기 투기 금지와 같은 뜻입니다. 다만 그 벌을 헤카테가 내릴 거라는 저주가 곁들여졌죠. 소소한 일상에도 신들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1부에서 본 미네르바상은 기원전 430년 그리스 원작을 로마 제정시대에 복제한 작품입니다. 이처럼 지금 볼 수 있는 그리스 작품은 사실 로마의 복제품이 다수예요. 로마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그리스와 전쟁하며 여러 폴리스를 무너뜨렸고, 그리스 미술품은 로마의 위상을 과시하는 전리품으로 로마에 유입됐죠. 수요가 늘며 그리스 원작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자 로마인은 복제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전 시대 작품을 따라 만들었는데, 이를 보면 원작의 양식·유파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솜씨였어요. 복제는 로마인이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양 해설사는 ‘이상적 신체 비례의 탐구’란 이름의 청년 토르소상을 소개했어요. 1세기 로마에서 만들어진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원작의 복제작이죠. 그리스 고전기 유명한 조각가의 제자가 만든 청동상이 원작일 거라고 추정하는데, 로마제국에서는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그리스 청동상의 대리석 복제작을 진열하는 게 유행해 하나의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공장소뿐 아니라 개인 저택에도 세워두고 본인의 경제적 위상, 문화적 소양을 뽐냈죠. 이 같은 로마의 그리스 애호 덕분에 그리스의 문화 요소가 로마제국 곳곳에 전파될 수 있었고, 그리스의 원본 걸작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에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됐어요.
로마 초상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한 그리스와 달리 점차 개인의 성격을 부각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로마가 그리스의 문화적 혜택을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로마에서 그리스 걸작들을 모방하지 않았다면 고대 그리스 문화는 잊혔을 수도 있어요. 덕분에 지금 우리가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해 보고 배울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로마는 이를 로마의 문화로 승화합니다. 그중 하나는 사실적인 초상 미술이 발달한 거예요.”
토가를 입은 남성을 만난 뒤 소중 학생기자단은 귀부인의 초상 앞에 섰습니다. 앞서 봤던 신상들과 달리 미간·입가 등에 주름이 표현돼 있었죠. “몇 살처럼 보이나요. 제가 보기엔 최소 50대 같아요. 그리스인들은 할아버지의 묘비도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각했는데요. 로마인들은 노화를 칭송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봐서 사실적으로 나이를 표현했죠. 이 귀부인상은 머리카락을 땋아 터번처럼 둘렀는데, 이런 머리 모양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시작됐어요. 시기별 트렌드도 있어 머리 스타일 등을 보면 어느 황제 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있어 초상의 연대를 확인할 때 기준으로 삼죠.”
그 맞은편에는 로마 저택처럼 꾸며진 공간에 조각상들이 놓였어요. 아인 학생기자가 “책이나 TV에서 본 신전처럼 조각상들이 배치돼 아름다워요. 이렇게 구성하신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었죠. “로마인들이 저택·별장에 그리스 조각상을 전시할 때 기둥 사이사이에 배치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2부 공간은 로마 분위기를 내고 싶었거든요. 로마제국의 모든 도시엔 황제들의 전신상·흉상 등이 세워졌습니다. 황제들은 정치적 의도를 담아 초상을 제작했고, 공식 초상이 나오면 주화의 도안이나 대리석상으로 복제해 배포했죠. 초상의 머리카락·수염·표정 등에는 자신의 개성을 담았어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의 경우 그가 죽은 뒤 만들어져 개인의 특징은 거의 보이지 않고 ‘디부스 율리우스(율리우스 신)’으로 신격화한 모습인데요. 그 옆으로 드루수스·하드리아누스 황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초상은 각자의 개성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시대부터 수염이 표현되는데, 그의 초상 역시 수염과 머리카락이 섬세하게 표현됐죠. 『명상록』을 펴내 철인(哲人) 황제라 불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굵고 곱슬곱슬한 머리와 수염, 튀어나온 큰 눈과 처진 눈꺼풀이 특징이에요. “철학자였지만 황제로서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아 전쟁을 많이 치러야 했던 딜레마가 느껴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고대 로마인의 저택에 놀러온 것처럼 포즈를 취한 김서호·박규리·정아인(왼쪽부터) 학생기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초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반대편의 카라칼라 황제 스타일로 묘사된 남성의 초상은 이마와 미간을 잔뜩 찌푸린 모습이죠. 양 학예사는 “개인의 생각·성격 등을 조각에 담아낸 것도 로마 미술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초상들의 옆으로는 디지털 미디어로 로마 저택 영상이 비치고, 그 앞에 연회에 사용된 주전자·크라테르·암포라·술잔·접시·그릇·등잔 등을 배치해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멧돼지 머리 모양의 술잔, 고슴도치 모양 병, 주둥이가 다섯인 등잔 등을 보며 재밌어했죠.
고대에는 삶이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그리스인은 죽으면 스틱스강을 건너 하데스가 관장하는 죽음의 세계로 간다고 믿었죠. 저승, 즉 ‘그림자의 제국’의 입구를 상징하는 문 형태의 묘비는 실제 건축 기법으로 문과 기둥을 표현했죠. 대들보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행인에게 건네는 인사 등이 쓰였어요. “당시에는 누군가가 죽은 이를 기억하고 중요시하면 그는 영원히 산다고 여겼죠. 무덤은 도시 밖에 구역을 정해 만들었는데. 외곽으로 나가는 길가에도 안치했어요. 도시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조의를 표하게 하려는 거였죠. 시선을 끌기 위해 조각상·묘비 등 표지물도 잘 꾸몄어요.”
작은 신전 형태를 한 유골함에는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이 조각됐는데요. 망자가 보드게임 실력이 좋았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죠. 날개 달린 사랑의 신 아모르가 새겨진 석관에는 앞면 양쪽 끝에 프시케가 함께 나타나는데, 아모르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신에게 사랑받아 불멸을 얻는 내용이라 행복한 사후 세계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였죠.
고대 그리스·로마의 사후세계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3부 ‘그림자의 제국’에서 묘비를 비롯한 무덤 표지물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고대 그리스·로마에선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한 신화를 그리스와 로마가 공유한 것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과 다름없죠. 전시를 통해 그리스와 로마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또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느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마지막으로 관람 팁을 청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서양 문화가 많이 퍼져있고, 그 뿌리가 그리스·로마인만큼 이들에 대해 아는 건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거예요. 소년중앙 독자 또래 어린이·청소년들은 어른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죠. 전시를 준비하며 익히 아는 것도 새로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여러분도 전시를 보면서 알았던 것을 확인하고, 또 새로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신에 대해 잘 모르는 건 1부의 만신전 영상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장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311호

기간 2027년 5월 30일까지
관람시간 월·화·목·금·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30분 전 입장 마감), 하루 3회(오전 11시, 오후 1·3시) 설명 진행
관람료 무료

■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평소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책 읽기를 좋아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이야기와는 달라서 이해되지 않는 것,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죠.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재를 가서 관련 전시를 보고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학예사님은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고 알지 못했던 것들도 자세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죠. 책을 읽을 때 종종 ‘그리스·로마 신화가 그렇게 대단해?’ 생각도 했었는데, 관련 유물을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니 ‘아, 정말 그럴 만하구나’ 감탄했습니다. 학교에도 그리스·로마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책에서 그림과 사진으로 보던 멋진 유물들을 직접 한번 보기를 권장합니다.
-김서호(서울 자곡초 4) 학생기자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 취재를 통해 만화책이나 기타 자료를 통해 얻었던 애매한 지식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크게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후세계로 공간을 구성했죠. 섬세하게 그려진 신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 좋았기에 1부에 전시된 도자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여러 신들이 동등한 계급으로 나타나 여러 그리스 도시들이 각각 신을 모시는 데 무리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상상한 사후세계도 엿볼 수 있었고요. 얄팍했던 신들에 대한 지식을 두껍게 메꾸어 준 특별한 취재였어요.
-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 학생기자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였죠. 전시는 총 3부로 1부 신화의 세계, 2부 인간의 세상, 3부 그림자의 제국으로 구성됐어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시지만 이번엔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 무료로 볼 수 있죠. 한번쯤 아니 백번쯤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전시될 예정이니 소년중앙 친구 여러분도 꼭 관람하며 그리스·로마 신화와 문화의 흥미로움을 느껴보세요.
-정아인(서울 영훈초 6) 학생기자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서호(서울 자곡초 4)·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정아인(서울 영훈초 6) 학생기자, 사진·자료=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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