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과 달리 푸틴 아쉬운 입장...김정은, 하노이노딜 만회 노려"

김형구 2023. 9.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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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ㆍ러 정상회담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리셉션 행사에서 건배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미국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지금 이 시점에 양국 정상은 모두 서로를 정말로 필요로 한다는 점, 그리고 두 사람 다 얻을 게 많다”고 봤다.

중앙일보는 북ㆍ중 정상회담설과 관련해 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와 전화 인터뷰하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엘런 김 선임연구원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앤드류 여 석좌와 엘런 김 연구원은 모두 동아시아 전문가다.


“북, 탄약 내주고 미사일 기술 챙길 것”


앤드류 여 석좌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소모적 장기전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그리고 경제가 암울한 북한은 이 시기에 서로를 정말로 필요로 한다. 한쪽이 부족한 부분을 상대편으로부터 채울 수 있는 관계”라고 진단했다. ‘거래의 조건’과 관련해 그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는 핵탄두 소형화를 통해 미국 등 장거리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전달 체계를 갖추는 것”이라며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개발 기술을 전수받아 미사일 능력 고도화 효과를 거두려 할 것”이라고 했다.
앤드류 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중앙포토

일각에서 제기된 러시아 핵추진잠수함 기술의 북한 전수설에 대해선 “핵잠수함 운용 작전 능력을 갖추는 건 단순 보유와는 별개의 문제로 재료ㆍ기술ㆍ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양국 관계가 그 단계까지 강화된다면 핵잠수함 제공까지 가능하겠지만 여기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 문제를 감안하면 그것은 꽤 먼 미래의 일”이라고 전망했다.

엘런 김 연구원은 “2019년 4월에 있었던 북ㆍ러 정상회담 때는 푸틴이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아 김정은에게 상당히 실망스러운 회담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며 “탄약과 무기를 얻기 위해 입장이 아쉬운 쪽은 러시아”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은 이 상황을 이용해 이번 기회에 최대한의 이익을 노릴 것”이라며 “김정은은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국제 무대에도 활용해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실패로 끝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베트남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로 손상된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런 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SCIS) 선임연구원. 사진 CSIS 홈페이지 캡처

또 “러시아는 과거 북한에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강요했고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을 두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어 핵 개발기술을 공유할지는 회의적”이라며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과 탄약을 넘겨 받으면 그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인공위성 및 탄도미사일 발사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북ㆍ러 정상회담은 제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김 위원장의 첫 외교 행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정상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은 채 뚜렷한 소득 없이 끝났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추후 일정을 이유로 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북한도 러시아 극동 지역 산업시찰 일정을 대폭 줄인 후 서둘러 귀국했다. 하지만 지금은 4년 전과 달리 서로가 절실히 원하는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기거래 성사 땐 우크라전 장기화”


2019년 4월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ㆍ러 무기 거래가 성사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큰 영향을 줄 거라는 데 두 전문가 분석이 일치했다. 앤드류 여 석좌는 “러시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미사일인데 북한은 옛 소련제 무기와 호환되는 미사일을 대량 비축하고 있어 상당한 양의 공급이 가능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힘의 균형을 일거에 바꿀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전쟁을 장기화하는 측면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우크라이나 국민의 피로도가 커질 수 있으며 올겨울을 넘겨 전쟁 3년 차로 접어들고도 별 성과가 없다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약화되기 시작할 수 있다.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국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엘런 김 연구원도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 변화까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전쟁을 더 오래 끌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라며 “한국 정부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라는 미국과 유럽의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ㆍ러 무기 거래가 우크라전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ㆍ중ㆍ러, 해군 합동훈련 가능성 커”


앤드류 여 석좌는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 틀의 획기적 강화에 맞서 북ㆍ중ㆍ러가 3국 연합훈련으로 맞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봤다. 그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동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했다는 소식도 있다. 북ㆍ중ㆍ러 3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만큼 얼마든지 합동훈련으로 군사적 영향력 과시를 할 수 있다”며 “지상전 합동훈련 방식보다는 해군 합동훈련 가능성이 더 크고, 중국이나 북한 영공에 미국 전투기가 진입하는 것을 막거나 요격하기 위한 공중 합동훈련을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앤드류 여 석좌는 “적어도 중국은 지역 협력 틀의 확장을 굉장히 강하게 원하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단 “북ㆍ중ㆍ러 3국 밀착이 강화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동북아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며 역내 힘의 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또 북ㆍ러 정상회담을 통해 무기 거래가 실제 이뤄지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반드시 유엔 안보리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을 통한 대북 제제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낮더라도 국제 기구 공론화 절차를 거쳐 위반 사실을 반드시 문서화해 놓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라고 했다.

뉴욕 출신의 앤드류 여 석좌는 코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 가톨릭대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엘런 김 연구원은 USC에서 정치학ㆍ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ㆍ미 관계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ㆍ중 전략 경쟁 등을 연구해 왔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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