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염치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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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저널리스트가 희망인 대학생 인턴기자와 함께 취재를 했던 적이 있다.
누구도 생의 마지막을 돌봐줄 수 없었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기사를 위해서였다.
블라인드 따위의 익명에 기댄 폭로는 의미 없는 잡음만 키울 뿐 생산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복원 시도는 필수적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때아닌 홍범도 장군의 빨갱이 논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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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저널리스트가 희망인 대학생 인턴기자와 함께 취재를 했던 적이 있다. 누구도 생의 마지막을 돌봐줄 수 없었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기사를 위해서였다. 돌도 되지 않았던 아기부터 고독했던 노년까지 여러 죽음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어렵게 찾은 유가족은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하거나, 먼발치에서 화장을 지켜본 뒤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이 취재가 끝난 후 인턴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꿈을 포기했다. “살면서 보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보고 다녀야 하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최근 기자를 하며 ‘살면서 꼭 보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배우고 가르쳤던 가치가 상당히 퇴색됐다고 느낀다. 상식, 소신, 염치, 체면, 명분, 관용, 배려 등에 대한 얘기다. 또 우리가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위선, 거짓, 이기심, 과시 같은 것의 위세를 체감하기도 한다.
한때 온라인의 재기 넘치는 글에 키득대는 게 유행이었다. 디시인사이드가 만들어지고 딴지일보 등 여러 커뮤니티에 해학과 자조로 무장한 글이 올라오던 때다. 경직된 기업·조직 문화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해방구 역할을 했다. 젊은이들은 이런 키치적인 문화에 열광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는 알 필요 없는 일, 보지 않아도 되는 일을 크게 키우는 확성기 역할을 한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일도 과장하고 허위 사실을 보태 공분을 일으키려 애쓴다. 남녀 갈등을 부추기고 세대 갈등을 조장하며 이웃을 혐오토록 하는 글도 부지기수다. SNS엔 위선과 과시가 대세이고, 성찰과 깊이 있는 게시물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블라인드 따위의 익명에 기댄 폭로는 의미 없는 잡음만 키울 뿐 생산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현실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정치는 염치를 잃은 지 오래다. 야당 대표는 여러 비리 의혹에도 대표직을 유지한 채 이젠 이유 모를 단식을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남북 공조가 파국으로 끝나면서 한·미·일 공조 복원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복원 시도는 필수적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때아닌 홍범도 장군의 빨갱이 논란이 인다. 뉴라이트의 뿌리 깊은 역사 콤플렉스에 탄식한다. 요새 정치는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단 한 글자의 소식도 듣고 싶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나라의 일꾼인 공무원은 저임금에 대한 냉소, 정권 교체 때마다 벌어지는 갈팡질팡 정책 탓에 이탈 폭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뿐 아니라 이젠 사명감, 소신보다 벌이를 중시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는 명예직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사느니 돈이라도 벌자는 얘기다. 코로나 자산 버블은 이런 고민의 폭을 더욱 키웠다. 공교육의 수호자인 교사는 헬리콥터 맘을 넘어선 진상 학부모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까지 왔다.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은 그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흉기 난동을 벌였다. 민간 기업도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서민 주택의 철근을 빼돌려 입주민을 위험에 노출시켰다. 계속 하락하는 출산율은 국가를 존망의 기로로 몰아넣고 있지만 젠더 갈등을 해소해보려는 정부의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지면을 장식하는 사회 곳곳의 불안함은 출범 2년도 안 된 윤석열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5년 만에 정권을 주고받은 여야의 합작품이며, 비전없고 오만한 정치가 만들어낸 서글픈 현실이다. 사회적 가치가 외면받는 풍토를 만들어낸 국가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이 역사 논쟁을 벌이고, 단식을 할 때인가 싶다. 참으로 염치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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