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비행기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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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은 피로하다.
이코노미 좌석은 한 사람이 열두 시간 이상 틀어박혀 있기에 너무 좁은 공간이다.
밀폐된 공간, 너무 많은 사람들, 조절할 수 없는 옆자리 소음 등 기내라는 공간의 속성은 먹고 자는 것 이외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비행은 하늘을 겪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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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은 피로하다. 이코노미 좌석은 한 사람이 열두 시간 이상 틀어박혀 있기에 너무 좁은 공간이다. 한 번도 비즈니스석을 타본 적은 없지만 조금 낫더라도 피로하긴 마찬가지일 것 같다. 밀폐된 공간, 너무 많은 사람들, 조절할 수 없는 옆자리 소음 등 기내라는 공간의 속성은 먹고 자는 것 이외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곳은 매력적이다. 낮의 창문은 무수한 형태의 구름이 새파란 하늘에 떠 있는 풍경을 상영한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아무리 창밖을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둥근 지평선을 바라보며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들은 너무 작아서 나의 존재 역시 얼마나 소소하고 찰나의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칼 세이건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고 말했듯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사의 모든 희로애락이 이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구보다도 한없이 작은 내가 여기에 있다.
또한 상공은 지구의 모든 구분과 구별로부터 자유로운 허공이다. 물론 하늘에도 국적이 있지만 그 국적을 지정하는 주체인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인간이 정해놓은 모든 규범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가 지상에서는 불안함과 쓸쓸함을 유발하지만 상공에선 자유로운 감각을 준다. 밤하늘을 나는 야간 비행은 특히 좋다. 불빛이 무수하게 들어차 있는 발밑의 도시는 별이 가득 들어찬 밤하늘만큼이나 아름답다.
뭉친 허리와 퉁퉁 부은 다리를 견디며 도착한 곳에는 낯선 풍경과 얼굴들이 있다. 그러나 지구 어디라도 내가 있던 곳과 같은 하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딘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비행은 하늘을 겪을 수 있게 한다.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하늘에는 역사가 없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역사로부터 이탈하는 기쁨을 누린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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