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과거가 미래를 잠식하는 시대
보이는 청년들… 세대 갈등이
지역·이념·계층 갈등을 압도
20년 묵힌 연금개혁, 청년들
불신·좌절 키워… 지금 바로
오랜 부채 청산할 마지막 시간
개혁 밀어붙일 각오·결기 안
보이는 현실…대통령·여당은
'다수 야당 반대' 탓하고
야당은 '결사항전'만 외치며
숙제 외면한다면 그 대가는
미래세대가 치를 수밖에
‘꿀 빤 세대’.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대학만 나오면 평생직장도 노후도 보장됐던 부모들과 달리 자신들에겐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를 가르는 거대한 갈등 구조가 지역과 이념, 계층이었다면 지금의 세대 갈등은 그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연금 문제는 그 간극을 상징한다.
최근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연금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안을 내놓았다. 보험료율을 12∼18%까지 올리고 기금 수익률도 높이면 70년 후인 2093년까지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데 불안정한 취업 현실에서 언제까지 연금을 낼 수 있을지 모르는 청년층의 불신을 잠재울 수 있을까. 최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은 평균 49.4세에 퇴직했다. 60세 법정 정년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정년 연장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그 안이 관철된다고 해도 그건 그들만의 세상일 뿐, 대다수는 조기 퇴직과 ‘소득 절벽’을 피하지 못한다.
대학만 나오면 취업이 되던 시대와 그렇지 못한 현재, 그 사이에는 세대를 가르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최악의 저출산 국가다. 합계출산율 0.778명. 올 6월 출생아 수는 198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정부도 내년 예산안에 저출산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25.3% 늘린 17조5900억원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그조차 답이 되지 못할 것임은 정책 당국자들도 모르지 않을 터. 저출산 시대의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령화의 짐을 지우는 것, 그것이 다가올 재앙이다. 청년들이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교육, 노동, 연금을 포괄하는 전면적 개혁안이 필요한 이유다.
20여년 전 독일은 노동, 연금 등에 관한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안이 집권당 내부 반발에 부딪히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조기 총선을 실시해 보수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함으로써 가까스로 개혁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령화에 맞춰 연금을 자동 조정하는 지속가능계수 제도가 도입됐고 연금 개시연령이 65세에서 67세로 늦춰졌다. 요즘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나마 독일이 20년 전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더 깊은 추락의 늪에 빠졌을지 모른다. 연금 개혁과 관련해서 많은 나라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현실에 맞는 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프랑스는 지난 1일 연금개혁안 시행에 들어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과 격렬한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각오와 결기가 있는가. 10월에는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다. 내년 선거까지 7개월 남았지만 12월이면 사실상 이번 국회는 끝이다. 해가 바뀌면 다들 선거판으로 달려간다. 지난 20여년간 묵혀온 연금개혁의 잔혹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998년 김대중정부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55%로 낮추고 연금 수령 시기도 2013년 이후 5년마다 한 살씩 높여가는 연금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선 소득대체율을 60%로 조정한 수정안이 통과됐다. 2003년 노무현정부는 보험료율을 2030년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4년 뒤 다시 개정안을 국회로 보냈지만 야당은 정부안을 부결시켰다. 대신 보험료율은 높이지 않고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수정안이 통과돼 현재에 이른다. 그 뒤 세 번 정부가 바뀌는 동안 연금개혁 논의는 멈춰 있었다. 20년간 숙제를 묵히고 청년들을 불신에 빠트린 정치,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이 바로 오래된 부채를 청산할 시간이다.
한데 대통령과 여당은 ‘다수 야당이 반대해서 어쩔 수 없다’고 미리 변명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야당은 ‘결사항전’만 외치며 해묵은 숙제는 아예 외면할 참인가. 지지층만 바라보는, 이념에 사로잡힌 사생결단의 정치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잠식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자식, 손주들이 치를 수밖에 없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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