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산업장관과 ‘에너지 믹스’
장관 후보자 숙제가 바로 ‘균형 있는 복원’
카메라 삼각대의 핵심은 ‘균형’이다. 최소 3개 이상의 다리로 균형을 맞춰야만 기울어지지 않은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삼각대를 거치하는 지형에 맞춰 다리 길이를 정확히 조절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이 과정 없이 나오는 결과물의 품질은 기대하기 힘들다.
에너지 정책도 카메라 삼각대 거치 작업과 닮았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오롯이 감당해내려면 삼각대 다리 격인 에너지원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이를 토대로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마냥 다양한 전력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생산 능력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가는 이 작업을 ‘에너지 믹스(Energy mix)’라고 부른다. 보통 일이 아니지만 한국은 이를 가장 잘 해왔던 국가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탄화력발전과 석유화력발전, 수력발전을 넘어 원자력발전까지 도입했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쓰는 복합화력발전을 비롯해 태양광·풍력, 수소연료전지발전과 같은 새로운 삼각대 다리 마련 작업도 진행해 왔다.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지형 변화에 맞춘 다리 길이 조절도 평균점 이상은 된다.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작업이 그 사례다. 수소를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 노력 역시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평가된다. 정부의 에너지 믹스에 대한 평가는 이해관계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2011년 9월 ‘대정전’을 제외한다면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은 정전 경험이 없다시피 하다. 수시로 정전을 겪는 타 국가들과 대비된다.
그런데 수십년간 잘 유지해 왔던 이 에너지 믹스 균형이 최근 들어서는 수년째 삐걱거리고 있다. 2017년이 변곡점이 됐다고 봐야 할 듯하다. 당시 정부는 탈원전을 선포하고 원전 역할의 축소를 천명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판단에 삼각대 다리를 교체하겠다고 나섰다. 대체재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콕 집었다. 석탄화력발전과 원전을 다 대체해야 하다 보니 대체 속도를 급격히 늘린 게 특징이다.
결과는 어떤가. 과속이 돼 버린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 계통 불안을 야기했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지점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 계통 체계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급이 늘어난 탓이다. 한국을 지탱해 왔던 에너지 믹스에 균열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번 정부도 현재까지 성적표는 별반 다르지 않다. 탈원전을 폐기하고 원전 복원에 뛰어든 점은 불안정한 국제 상황을 고려할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멈추다시피 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향후 풀어야 할 숙제다. 방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사전 답변을 통해 말한 “에너지·자원 불확실성을 적극 해소하겠다”는 말이 공언이 돼서는 안 된다. 생태계 복원이 이미 진행 중인 원전 이외 사안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가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을 정비해 튼튼한 삼각대 다리로 쓸 수 있도록 기초를 더 다져야 한다. 각국별로 자원민족주의 색채가 짙어지는 상황이다. LNG 등 전통적인 자원 수입이 안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신재생에너지를 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체 에너지원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한다. 미래 에너지이자 한국이 강점을 지닌 수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무역협회는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수소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연구 보고서를 냈다. 미국·일본·중국·호주 등 주요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소 투자를 강화하는데 한국에는 걸림돌이 많다는 게 주요 골자다. 수소와 관련된 국내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연구개발 예산도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녹색 사다리’란 표현을 쓰며 원전과 수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생에너지가 빠진 점은 아쉽지만 에너지 믹스의 방향성 자체는 주어진 셈이다. 이를 토대로 에너지 믹스를 균형 있게 복원하는 일은 이제 방 후보자의 몫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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