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무당파를 위한 정치

2023. 9. 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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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시대정신이란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태도·이념·가치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뿌리 내린 것은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을 통해서였다. 민주화 시대의 정체성이 선명히 드러난 것은 정부 명칭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문민정부’, 김대중 정부의 ‘국민의정부’,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부’에서의 ‘문민·국민·참여’가 보여주듯 민주화는 도도히 흐르는 시대정신이었다.

「 87년 6월 이후 열린 민주화 시대
양극화와 초정치화 갈수록 뚜렷
반작용으로 탈정치화 부상 주목
진영정치 넘어 미래과제 다뤄야

이후에도 시대정신으로서의 민주화는 부정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선진일류국가’의 선진화는 박세일 교수에 의해 주조됐다. 박 교수에 따르면 선진화는 건국과 민주화를 계승하는 시대 가치였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과정에서 앞세운 국가적 의제는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였다. 절차적 민주화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 우리 민주주의가 심화해야 한다는 것은 그 시절 사회적 합의였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국가 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다. 정치의 주인이 국민임을, 정의가 새로운 시대 가치임을 선언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삼았다. 새로운 도약이 국가의 사명임을, 공동 번영의 주체가 국민임을 표방한 것이다. 정치와 번영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은 민주화 시대의 마스터 프레임이다.

이런 민주화 시대를 내가 돌아보는 까닭은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적 풍경에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기둥은 국민주권, 다원주의, 대화를 통한 타협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주권 정신의 기반 위에 서로 다른 견해를 수용하고 토론하여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화 시대가 30여 년이 흐른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마주한 현실은 다원주의의 빈곤과 정치적 타협의 부재다. 반다원주의와 반타협주의로 무장한 정치의 양극화다.

이런 정치 양극화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 제도이기에 집권세력과 반대세력의 적대를 강화한다. 대통령 선거는 거대한 이익을 놓고 진행되는 정치적 체스판으로 변모한다. 정치 양극화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대통령제 국가임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갈라치기 전략’이다. 선거는 결국 지지자들을 더 많이 동원하는 정당이 이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 중도 통합보다는 지지층의 요구에 호응하는 갈라치기가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선호된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써 이념전쟁과 혐오정치가 우리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 양극화는 변화할 수 있는가. 현재 그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분명하다. 국정의 양대 축인 경제와 대외정책에서 보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한미동맹 중심의 대북 강압정책을, 진보는 케인스주의 경제정책과 균형외교 중심의 대북 포용정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21세기적 의제인 젠더와 환경정책에서도 이념적 거리는 선명하다.

둘째, ‘초정치화’ 경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사회관계에서 ‘초연결’이 등장했듯, 정치과정에서 대중적 참여와 동원이 더욱 중요해지는 초정치화가 나타났다. 초정치화란 지지 그룹의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관여가 증가하는 것을 지칭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만개는 정치 리더와 지지자들 사이에 공고해지는 직거래주의와 변화를 주도한다는 적극적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강화한다. 강성 지지층의 팬덤 정치와 기성 정당의 갈라치기 전략은 이렇게 긴밀히 결합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초정치화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는 ‘탈정치화’다. 탈정치화란 양극화한 정치 질서에 실망하여 기성 정치에 거리 두려는 것을 말한다. 최근 30% 내외를 기록하는 무당층의 규모는 탈정치화를 입증한다. 이 탈정치화 경향은 2030세대에게 두드러진다. 지난 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층의 경우 18~29세는 44%, 30대는 35%에 달하고 있다.

탈정치적 무당층이라 해서 정치에 냉소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성 정당과 정부의 이념 및 행태를 거부하는 것이지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은 적잖이 높다. 짙어가는 경제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 가속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창출, 세습자본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계급 불평등의 완화, 국가 소멸을 우려하게 하는 저출생의 대처, 가시화된 신냉전 질서에서의 국익 우선 외교 추진은 그 관심의 구체적인 목록이다.

초정치화와 탈정치화가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민주화 시대 후반기의 정치적 풍경이 내게는 낯설다. 우리 정치는 진영정치를 넘어 미래로 직진할 순 없는 걸까. 이제는 그러해야 하지 않는가. 새 학기를 맞아 캠퍼스에서 청년세대를 지켜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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