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생각이 귀해진 시대
생각이 귀해진 시대에 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깊은 고민이 담긴 말이 아닌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라며 단순히 대세를 좇거나, 혹은 자신이 따르는 ‘누군가’의 주장을 인용하며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던데”라는 말로 ‘나의 생각’을 외주하는 이들도 늘어난 것 같다.
그 ‘누군가’가 통상의 전문가가 아닌 특정 정치 진영의 수장이거나 유튜버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요즘엔 주변 지인들을 만나 대화해도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보다, 서로가 이곳저곳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주워 담아 풀어놓으며 인상 비평을 하고 있단 느낌을 받는다. 아마 나를 만났던 상대방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생각이 귀해진 건 도처에 자극이 널려있기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스마트폰을 열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웹툰, 게임, 쇼핑 등 수많은 자극과 손쉽게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 생각을 마비시킬 만큼 지독히 중독적이다.
스탠퍼드 의대에서 중독 의학을 가르치는 애나 렘키 교수는 『도파민네이션』에서 이 같은 세상을 풍요가 넘쳐나는 ‘탐닉의 시대’라 정의하며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고 말했다. 독서는 생각의 연결고리라는데, “절반이 넘는(52.5%) 성인이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2021년 국민독서실태)”고 하니 자극의 유혹은 실제로도 상당한듯하다.
‘생각의 실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펼쳐지는 일련의 이념 논쟁은 그래서 생경하다. 이념은 생각의 최상위 단계에 속해 철학에선 순수한 이성에 의해 얻어지는 ‘이데아’라고까지 불린다. 생각하는 이들은 줄어드는 것 같은데, 이념을 둘러싼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생각의 부딪침’보단 진영을 둘러싼 적의만이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육군사관학교에 놓인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보며, 홍범도가 살아왔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실제 삶의 행보를 면밀히 고민하고 따져보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그보다는 구독하는 유튜버가 정리해 준 ‘홍범도 논란’과 정치인의 발언을 보며 서둘러 결론을 내린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이 흉상 이전에 반발하자 홍범도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더 맹렬해진 건, 진영이 이념을 압도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한번 국무위원도 생각해 보자, 무엇이 옳은 것이냐”며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답을 내리지 않았다지만, 이틀 뒤 육사는 홍범도 흉상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국무위원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생각’을 해봤을까.
박태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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