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2차전지 안개 자욱…코스피 한 달째 2500대 게걸음
코스피가 2500의 덫에 갇혔다. 하반기 들어 반도체와 2차전지를 중심으로 랠리를 이어갔지만 지난달부터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박스권 탈출 기대감도 요원하다. 경기와 금리의 향방은 가늠키 어렵고, 상승을 이끌 동력도 찾기 힘들다. 외부 여건도 여의치 않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긴축 신호등이 다시 켜졌고, 중국발(發) 애플 리스크의 파장도 커질 조짐이다.
연초 이후 상승세를 탔던 코스피는 8월 1일 2667.07까지 상승했다. 연중 최고점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1.9% 급락한 뒤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어느새 2500대 중반까지 밀렸다. 지수 상승을 견인했던 SK하이닉스와 POSCO홀딩스 등 반도체·2차전지 관련주의 부진 때문이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최근 5% 이상 상승하며 시장에 잠시 볕이 들었을 뿐이다.
횡보하는 시장에 투자자의 관심도 식었다. 8월 중순부터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1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달 들어서는 7조원대에 머무는 일도 잦아졌다. 심지어 코스닥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이달 들어 코스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꾸준히 10조원을 넘으며, 최근 15거래일 연속 코스닥의 거래대금이 코스피보다 많았다.
빠른 반등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상반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수출 회복은 더디고, 기업 실적 개선 속도도 기대에 못 미친다. 상반기 시장을 이끌었던 2차전지처럼, 반등을 이끌 주도주도 보이지 않는다.
주도주의 부재 속에 개인투자자는 이달 들어 2차전지 관련주를 집중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무려 7개가 2차전지 관련주였다. ‘바닥론’에 근거한 판단이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시기마다 주도주는 다르지만 모두 이익 증가를 기반으로 주가가 상승했고, 이익의 ‘피크아웃’(정점 통과) 이후 주도주 지위를 상실했다”며 “2차전지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대외 변수도 투자자의 걱정거리다. 당장 국제 유가가 심상치 않다. 배럴당 60달러 중반에 머물던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 7월부터 가파르게 올라 어느새 배럴당 87.5달러까지 상승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을 연말까지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과 가계의 각종 비용이 뛰고, 이는 물가 지표와도 직결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시나리오도 바뀔 수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를 제외하면) 금리와 수요 등 거시 경제 여건에 큰 변화가 없지만 미국 빅테크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증시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 중 투자자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애플 리스크의 확산 여부다. 중국 중앙정부가 이달 초 공무원에게 아이폰의 업무용 사용을 금지하자 애플 주가는 이틀 동안 6% 이상 급락했다. 이 기간 증발한 시가총액만 약 1897억 달러(254조원)다. 여파는 이미 국내 증시에도 상륙했다. 애플에 아이폰용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의 주가는 아이폰 금지령이 전해진 뒤 10%가량 하락했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자동차 등 다른 업종에서도 중국 매출 비중이 큰 경우 (주가)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금리 상승으로 증시 체력이 약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제재가 없어도 주가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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