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뒤 2년 연기 공백…고해라가 나였다

어환희 2023. 9. 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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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인턴’에서 고해라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 과장이었지만 밑바닥 인턴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 40대 경력단절 여성을 연기했다. [사진 티빙]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다 보니 7년이 지났다. 재취업 도전 계기를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제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씩씩하게 말하지만, 면접관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독종처럼 일하며 성과를 냈던,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을 말해도 반응은 비슷하다. “그건 7년 전이잖아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잔혹한 인턴’(12부작)의 한 장면이다. 연극 무대를 포함해 30년 가까이 연기한 배우 라미란(48)에게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40대 경력단절 여성 고해라를 연기한 그는 “출산 당시 2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며 “죽을 때까지 할 일이라 여겼던 연기를 더는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시기였다”고 했다.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해라를 표현하는 데 당시 느꼈던 초조함과 절실함을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 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라미란은 “내 나이에 가까운 데다 내가 겪어온 과정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됐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해라는 출산 후에도 상품기획자(MD)로 승승장구하지만, 육아를 돕던 친정어머니가 쓰러지면서 7년간 일터를 떠난다. 이후 재취업에 실패하다가 입사 동기이자 지금은 실장인 최지원(엄지원)의 권유로 인턴으로 입사한다.

라미란은 “(출산 후) 아이 돌 무렵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오디션을 보고 다시 연기하게 됐다”며 “(첫 영화였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날아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 생각했고, 이후에는 대사나 분량에 상관없이 가리지 않고 작품을 맡았다”고 말했다. 19년간 90편 넘는 영화·드라마에 출연했다.

고해라는 최지원으로부터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을 쓰려는 직원 두 명의 퇴직을 유도하면 과장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흔들리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퇴직을 막으려는 모습을 라미란은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그는 “실제라면 당연히 거절했겠지만, 끊긴 경력을 다시 잇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정말 고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오디션 도중 출산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을 실제로 받기도 했다. 그는 “(오디션) 1차를 붙은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돼 2차 때 말했더니 ‘낳으실 거예요’ 하더라”라며 “기분 나빴지만 ‘네, 낳을 겁니다’ 하고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임신과 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지만, 한참 나아가야 할 단계”라고 덧붙였다.

‘잔혹한 인턴’은 사회와 환경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한계를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임신 중 힘쓰는 일을 하지 못해 동료에게 민폐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대리, 3개 언어 능력자지만 육아 휴직을 고민하는 과장 등이다. 고해라의 남편 공수표(이종혁)도 정리해고 후에야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색한다. 라미란은 “‘드라마에 공감한다’는 댓글을 볼 때면 슬프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영화 ‘정직한 후보’ 시리즈, 드라마 ‘나쁜엄마’(2023) 등 다수의 흥행작을 내놓은 그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배우의 일이고 잊히는 것도 한순간이다. 늘 불안하다”고 했다. “다작을 하지만, (대중이) 지겨움을 느낄 수도 있고, 피로도가 쌓일 수 있어 경계한다”며 “불안감은 늘 있지만,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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