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쟁 30대 부숴도 모자랐다" 국악에 빠진 작은 거인 김수철 [세컷칼럼]

이지영 2023. 9. 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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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5년 ‘작은 거인’ 김수철의 ‘큰 음악’

‘작은 거인’ 김수철(66)이 다음 달 11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1980년 국악 공부를 시작한 이래 40여년 간 꿈꿔온 무대다. 우리 전통음악을 현대화한 음악, 국악에 뿌리를 둔 동서양 소리의 음악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겠다는 게 그의 오랜 목표였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기대해도 좋다. 그동안 못 들어본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명감? 아니 좋아서 했을 뿐”

김수철은 1977년 데뷔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정신 차려’ 등 메가 히트곡을 잇달아 내며 1980년대 중반 한국 가요계의 정상에 섰다. 대중가수로 승승장구하던 바로 그때부터 그는 국악 현대화의 선구자를 자처했다. 손에 잡힌 부와 인기를 스스로 뿌리치고 가시밭길에 뛰어든 셈이다. 그동안 낸 국악음반 25개 중 돈을 번 음반은 1993년 영화 ‘서편제’ OST 딱 하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사명감·보람 운운하는 걸 불편해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 호기심이 생기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면서다.

「 내달 11일 세종문화회관 공연
소방대원·환경미화원 등 초청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무대

‘국악 현대화 40년’ 큰 꿈 이뤘다

청소년에 우리 음악 알리고파

듣고 또 들으면 좋아하게 될 것

지난해 국악계는 음악 교과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 교과서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서 국악이 빠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악계가 발칵 뒤집혔다. 원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들까지 나서 반대 운동을 펼친 끝에 이는 복원됐지만, ‘국악 홀대’ 논란의 여파는 컸다.

한편 지난 6월 국악인들의 숙원이던 ‘국악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 차원의 국악 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악 대중화에 음악 인생을 바친 그에게 우리 국악의 현주소를 물었다.

김수철은 “국악 현대화 음반 중에서 내 음악처럼 웅장한 건 없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만큼 돈을 쏟아붓는 사람이 없어서다”라며 열악한 국악계의 현실을 에둘러 꼬집었다.


양희은·성시경 등 무료 출연

Q : 그동안 인터뷰 때마다 희망사항으로 얘기했던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데뷔 45년에 마침내 실현됐다.

A : “15년 전부터 국악이 이끄는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준비했다. 영화 ‘서편제’ 음악, 1988 서울올림픽 전야제와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팔만대장경’과 기타산조 등 내가 만든 국악 창작 음악을 대중에게 공연으로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후원사가 안 생겼다. 후원해줄 재력가를 찾아다니다 다 거절당한 뒤 그냥 자비로 하자 생각했다. 이번 공연은 세종문화회관과 공동 기획으로 한다. 환경미화원·우편배달원·소방대원 등 어려운 곳에서 애써 주시는 분들은 무료로 초청할 예정이다.”

Q : 이번 공연 제작비는 얼마나 드나.

A : “한 10억 정도? 십시일반 후원을 받고 나머지는 자비로 충당한다. 모자라면 일단 돈 빌려서 하고 벌어서 갚을 생각이다. 게스트로 양희은·김덕수 선배, 성시경·백지영·이적·화사 등이 오는데 모두 개런티 없이 우정 출연한다. 출연료가 있었으면 몇억 더 들지 않았을까.”

Q : 돈 빌릴 각오까지 하고 공연을 추진하는 이유는 뭔가.

A : “우리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작곡한 국악 음악을 매니어들만 듣고 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청년들에게 긍지를 가질 만한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소규모 공연, MZ 세대를 위한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할 생각이다.”


“국악듣기 3년, 그때야 재밌어졌다”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소신은 역사가 길다.

그는 1980년 광운대 통신공학과 4학년 때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과 ‘뉴버드’라는 모임을 꾸려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음악 작곡을 맡았던 그는 한국 젊은이들의 단면을 그린 영화 ‘탈’을 만들면서 우리 음악을 넣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국악 공부를 시작했다.

“막연하게 중학교 음악 교과서부터 뒤졌다. 근데 교과서가 서양음악 위주로 돼 있고 국악을 너무 조금밖에 다루지 않아 놀랐다. 일단 수박 겉핥기식으로 국악을 공부해 기타를 가야금처럼 쳐서 ‘탈’ 음악을 만들었다. 그게 기타산조의 효시다. 그러곤 내가 우리 음악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국악 공부에 들어갔다.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 국악 음반을 찾아듣는 게 공부였다.”

Q : 국악의 매력을 알 수 있었나.

A : “3년 동안 계속 졸았다. 이렇게 재미없는 게 왜 훌륭한 소리란 거지? 멜로디도 잘 안 변하고 막 소리만 지르고 이게 뭐지? 계속 그랬다. 재미도 없는데 무슨 매력이 있었겠나. 계속 자면서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들었다.”

Q : 전환점은 어떻게 찾아왔나.

A : “어느 날 갑자기 거문고 소리가 확 귀에 들어왔다. 깊은 울림과 잔향, 색다른 소리 색깔, 그리고 그 어떤 신선한 느낌…. 너무 좋았다. 정신이 맑아졌다. 아 이것 때문에 훌륭하다고 그랬구나, 이러면서 그때 깨달았다. 누가 나처럼 3년을 기다리겠냐는 것이다. 교과서에도 없지, 공연도 접할 수 없지, 국악을 대중화·생활화하기 너무 힘들겠다는 걸 느꼈다. 내가 국악을 현대화한 음악을 작곡해 대중이 익숙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악과 서양음악 부단한 접목


2002년 뉴욕 유엔본부 유엔의날 기념 공연에서 기타산조를 연주하는 모습. [사진 남궁돈]

그는 “음악은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겐 국악이 수면제 구실을 했던 3년이 길들여지는 과정이었다. 그는 “피아노·바이올린 소리는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접하면서 국악기 소리는 들어보기 힘든 현실이 국악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초·중·고 교과서에서 기본적인 국악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악을 현대인이 듣기 편한 악기들과 협연시켜 대중화하겠다는 그의 결심은 이후 그의 작업에서 빠짐없이 실행됐다. 국악에 애정을 갖고 있다 해서 서양악기가 국악기를 돕는 방식을 쓰지는 않았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충돌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게 작업 방향이었다.

1983년 영화 ‘고래사냥’의 메인 테마음악에선 플루트와 국악기 피리를 조화시켰고, 1986년 영화 ‘허튼소리’에선 아쟁을 서양악기 보코더와 협연하는 시도를 했다. 1988년 올림픽 전야제 음악 작업을 할 때는 태평소와 어울리는 신시사이저의 소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하이라이트는 1986년 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린 기타산조다. 국악 기악 독주곡 형식 중 하나인 산조를 서양악기인 기타로 연주하는 음악으로, 그가 개발한 새로운 장르다.

“기타는 세계인이 다 알고 익숙하게 생각하는 악기다. 우리 소리를 기타로 연주하니 전 세계 사람들이 낯설어하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느낀다. 2002년 뉴욕 유엔본부 유엔의날 기념공연 등 해외에서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다.”


국악녹음·국악기 계속 개량해야

Q : 올 6월 국악진흥법이 공표됐다. 국악 진흥을 위한 정부 지원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A : “예산 10억을 20명한테 5000만원씩 나눠주는 방식의 지원은 안 했으면 좋겠다. 대중이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뭔가를 시도하려면 그 이상의 예산을 들여 집중해야 할 일이 있다.”
그는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분야로 국악 녹음 방식 개발과 국악기 개량을 꼽았다. 그 스스로 자비를 들여 시도해보았지만, 개인으로선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이다.

“국악기는 고정된 음이 오래가지 않아 연주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음을 다시 맞춰야 한다. 공연장 온도·습도에 따라서도 음이 달라진다. 서양 악기들과 장시간 협연하려면 개량이 필요하다. 1986년 아쟁을 개량하려다 포기한 기억이 있다. 당시 아쟁을 30대 정도 분해했는데, 제대로 하려면 100대는 부숴야겠더라. 조상님 악기를 왜 부수냐는 욕까지 먹어가며 몇몇 실험을 해봤는데 결국엔 예산 문제로 중단했다.”

그는 현재 개량돼 사용 중인 국악기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특히 개량 가야금에 대해 “줄 개수를 늘리면서 농현(弄絃·줄을 흔들어 떠는 소리를 내는 것)이 없어졌다. 우리 소리의 특징·색깔이 없어졌으니, 하프보다 나을 게 뭐냐. 뿌리를 통째로 뽑아버리는 개량은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춤과 의상으로 승부하지 말아야

Q : 국악을 현장에서 들을 땐 분명 좋았는데 음반이나 방송 중계에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잦다.

A : “서양음악 기준의 녹음 방식 때문이다. 악기에 따라, 녹음실 모양에 따라, 마이크의 위치와 방향부터 연구해야 한다. 1993년 대전엑스포 개막 축제 음악을 작곡하면서 국악 타악기 녹음 방식을 개발한 적이 있다. 장고 한 대에 왼쪽과 오른쪽, 가운데와 위쪽 등 네 곳에 마이크를 설치해 녹음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연구해야 하니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든다.”

Q : 방탄소년단 등 국악을 대중음악에 접목하려는 가수가 늘고 있다.

A : “어떤 형태로든 국악의 소리를 자주 들려준다는 게 의미가 크다. 후배들에게 자신이 가진 정서와 감각으로 자꾸 실험적인 시도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단, 국악이란 음악에 대한 연구 없이 단순하게 춤이나 의상 등 아이디어로 승부하려고 하면 안 된다.”
◆김수철=1957년 서울 출생. 중학교 2학년 때 기타를 접한 이후 가수·작곡가·음악감독 등 전방위 음악인으로 살았다. ‘못다 핀 꽃 한송이’ 등 히트곡뿐 아니라 영화 ‘고래사냥’ ‘서편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1988 올림픽 전야제, 2002 월드컵 개막식 등 대규모 국가행사의 음악감독도 맡았다. 그를 상징하는 ‘작은 거인’은 1978년 결성한 밴드 이름이기도 하다.

글=이지영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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