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폐막…러시아 규탄 빠진 공동선언 채택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진통’ 끝에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약화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폐막했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회원국들의 우려는 담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직접 규탄하는 내용은 담지 못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G20 의장국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정상회의 첫날인 지난 9일 G20 정상회의 실무협상을 통해 ‘G20 뉴델리 리더 선언’이란 이름으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공동선언문에는 우크라전쟁에 대해 유엔 헌장에 따른 결의안을 인용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내 전쟁으로 인한 인간적 고통과 부정적 영향을 강조한다”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aggression)”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대부분의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년 가까이 지나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선 ‘침공’이란 단어가 빠지고, 전쟁을 규정하는 단어도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쟁(the war against Ukraine)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 전쟁(the war in Ukraine)”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표현이 완화된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이 컸다. AP통신은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표현에도 반대했다”고 전했다. FT는 “바뀐 표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누가 전쟁에 책임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양측이 같은 비중으로 연루된 것처럼 암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동선언문에는 또 우크라이나가 곡물 및 비료 수출을 할 수 있게 하라고 러시아에 촉구하며 “포괄적이고,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러시아의 이탈로 중단된 흑해곡물협정을 재개하라는 요구다. “핵무기 위협 및 사용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동선언문에 포함됐다.
이로써 공동선언문이 ‘타협의 산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 규탄을 빼는 대신 흑해곡물협정 복귀를 촉구하거나 핵무기 사용 불가 방침을 재확인하는 등 실용적 성과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을 절충한 결과로 양쪽 모두 외교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다만 정상들은 유엔 헌장을 인용해 “모든 국가는 어떠한 국가의 영토 보전과 주권,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영토 획득을 위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내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국제 식량, 에너지 안보, 공급망, 금융 안정성 등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크게 반발했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 외무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G20은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러시아는 “회의 참석자 절반이 서방의 서술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공동선언엔 ‘합의된 언어’가 사용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특히 아프리카국가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이 회원국으로 합류한 소식도 주목을 받았다. 모디 총리는 9일 “AU에 영구적인 정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회원국들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AU가 기존의 ‘초대된 국제기구’에서 G20 정회원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지역연합의 G20 회원국 합류는 유럽연합(EU)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덕분에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국가들과 중·러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앞으로 인도가 제3세계 국가들의 목소리를 모아 식량과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등과 관련해 부유한 국가들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도록 압박해나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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