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모로코 덮친 강진…사망자 2000명 넘겨

최은희 2023. 9. 1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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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모로코 물레이 브라힘에서 지진이 발생해 파손되거나 파괴된 주택 뒤에 모스크의 첨탑이 서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1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집계 하루 만에 200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도 수천 명에 달해 인명 피해는 계속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모로코 내무부는 전날 오후 10시 기준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012명, 부상자가 2059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중태에 빠진 이들도 1400명이 넘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진의 진원지는 모로코의 중세 천년 고도(古都)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71㎞ 떨어진 알하우즈 주의 이길 마을 인근이다. 본진 발생 19분 후 규모 4.9의 여진도 관측됐다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전했다. USGS는 해당 지진이 120여년 만에 모로코를 강타한 최고 규모라고 분석했다. 

이번 지진으로 진앙에서 360㎞ 떨어진 수도 라바트를 포함해 5개 주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사망자 대다수는 진원지인 알하우즈와 인근 타루단트 등 산악 마을에서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 인원이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난 9일 모로코 왕립군이 마라케시 남서쪽 타페가그테 산간 마을의 지진으로 파괴된 집에서 시신을 찾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참혹한 피해 현장의 순간들도 속속 전해졌다. 건물이 붕괴되는 장면, 사람들이 놀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했다. 갈 곳을 잃은 이재민과 들것에 옮겨지는 부상자 등이 섞인 혼란한 상황도 영상에 담겼다.

진앙에서 가까운 남부 산악 마을인 아미즈미즈에 사는 주민 모하메드 아자우는 로이터 통신에 “발 아래 땅이 흔들리고 집이 기울어지자 재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지만, 옆집 사람들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앙에서 72㎞ 떨어진 유적 도시 마라케시에 사는 주민 아브델하크 엘암라니(33)는 AFP 통신에 “거친 진동이 느껴지자 곧바로 지진인 것을 깨달았다”며 “건물들이 흔들리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고, 밖으로 나가니 거리로 나온 주민들이 모두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9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한 주민이 잔해 속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유서 깊은 문화유산도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라케시의 옛 시가지 메디나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12세기에 지어진 쿠투비아 모스크(이슬람 사원) 첨탑도 일부 파괴됐다. 69m 높이의 이 건물은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린다. 

이번 지진은 진원과 발생 시간, 지진에 취약한 건물 구조 등의 요인이 겹쳐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진원이 얕아 파괴력이 커졌다. 또 시민들이 잠들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대에 지진이 발생해 사상자가 늘었다.

인근 지역 건물들이 지진에 취약한 붉은 진흙 벽돌로 지어진 점도 피해 규모가 커진 원인 중 하나다. 주요 피해지역인 산악지대로 접근하는 도로가 파손돼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0일 펴낸 보고서에서 이번 모로코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규모가 최대 1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로코 당국은 군대까지 동원해 실종·매몰자 구조와 수색 작업에 나섰지만,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지진으로 피해를 본 지역 중 상당수는 외딴 산간 마을인 탓이다. 이곳으로 진입하는 도로들이 낙석으로 막히면서 초기 구조 활동이 지연됐다. 또 마을의 좁은 골목들은 양쪽에서 무너진 건물 잔해가 쌓여 구조 장비 등의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9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한 여성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집 앞에 서 울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는 모로코 강진 피해에 대한 애도와 지원 의사 표명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도 나란히 모로코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했다. 약 7개월 전 5만 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도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와 이란 정부도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모로코 정부는 모하메드 6세 주재로 재난 대책 회의를 연 뒤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아울러 성명에서 “국왕은 이 비상한 상황에 애도와 연대, 지원 의사를 표명한 모든 형제·우호 국가들에 사의를 전했다”고 부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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