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이 책을 읽고 삶과 죽음에 의연해졌습니다

김현진 2023. 9. 10. 1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을 읽고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김현진 기자]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과학을 쉬운 말로 풀어주는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의 모습에 끌렸다. <떨림과 울림>(동아시아)을 읽고는 그의 팬이 되었다. "다정한 과학자"라 불리는 만큼 그는 난해한 과학을 대중에게 익숙한 언어와 문학적 비유로 설명한다. 덕분에 학창 시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물리(物理)와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바다출판사)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망설임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한 사람이 자신이 접한 지식을 하나로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김상욱 박사는 '물리'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물리만으로 만물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물리학 뿐만 아니라 화학과 생물,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한다.

'원자'에서 시작하여 '지구와 태양(별)', '생명'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정보'까지. 방대한 지식을 아우르며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을까?

만물의 근원은 원자, 원자는 똑같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했던 한 물리학자의 아름다운 노력
ⓒ 김현진
 
만물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책을 읽으면 만물이 좀 더 친근하게는 느껴질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사실 때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그 원자는 기본적으로 같다.

우주에 가장 많은 원자는 수소, 그중 우리에게 중요한 태양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이라는 별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살아가는 지구를 생각하면 수소는 지구상 모든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수소 이온을 얻고, 동물은 호흡을 통해 수소 이온을 모은다. 동물은 식물 또는 다른 동물을 섭취하여 그걸 연료로 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한다. 

수소는 양성자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로 탄소와 쉽게 결합한다. 수소와 탄소가 만나 다양한 형태의 분자를 형성하면서 생명의 토대는 만들어진다(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은 수소와 탄소가 결합한 분자 형태다). 공기 중에 많은 질소와 반응성이 뛰어난 산소까지, 수소, 탄소, 질소, 산소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99퍼센트를 이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내 몸을 이루는 탄소 원자는 책상, 자동차, 고양이, 흙을 이루는 탄소 원자와 완전히 똑같다.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원자는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똑같고, 단지 원자들이 만나 배열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저마다의 형태를 갖기 때문이다. 생명을 이루는 원자라고 특별하지 않다.

죽음에 대한 그의 설명 또한 인상적이다.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유지와 복제'를 위한 활동을 한다. 흙, 돌, 바다, 공기, 지구, 태양은 '유지와 복제'의 활동을 하지 않기에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지구를 포함해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살아있지 않은 상태, 즉 죽어 있는 상태다.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고 우주 전체를 바라보면 죽음이 더 자연스럽다. 물리학자의 시선에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에, 생명이라는 기이한 현상이 더욱 경이롭고 삶은 소중하다고 그는 말한다.
 
 "원자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이 똑같다는 사실이다. 공기 중의 탄소, 나무의 탄소, 내 몸의 탄소, 흙 속의 탄소는 모두 똑같다. 그래서 공기는 나무가 되고, 나무는 내 몸이 되고, 내 몸은 흙이 된다." (115쪽)

죽음 이후에도 원자는 소멸되지 않고 단지 재배열된다. 우리가 죽어도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문학적 은유라고만 생각했는데 이토록 과학적인 사실이었다니! 

만물의 근원과 원리를 조금 알고 나니 삶에 의연해지는 기분이다. 인간사의 고통과 괴로움을 한 발 물러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거리감 같은 게 생긴 달까. 죽음은 두려워할 상태가 아니라 마땅히 돌아가야 할 상태. 죽음 이후 내 몸의 원자가 흙이나 나무, 사과 한 알에 속하게 된다니 인간의 삶 자체가 문학이나 예술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에서부터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질이 동일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순환과 재구성을 통해 서로를 오간다니 인간의 관념을 지배하던 위계와 질서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외면의 다름만 보며 구분 짓고 그걸 차별과 혐오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태도가 얼마나 우매하고 근시안적인지 명료해진다.

과학적 사실을 배우면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편견과 인간 중심의 관념이 허술한 근거 위에 서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과학은 의심하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그의 말처럼, 과학의 태도를 익히면 사회를 가두는 부정적 믿음과 가치관을 의심과 질문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틀을 허물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며 '창발'하는 세계

책을 읽는 사이 저자가 제시하는 물리, 화학, 생물, 문학과 사회라는 조각들이 겹치고 이어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나와 내 삶을 이루는 물건들, 문을 열면 매일 마주할 수 있는 타인과 동식물, 하늘과 별, 태양까지 담긴 근사한 풍경이 돋아났다.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의미가 조각의 만남과 연결, 조화와 융합을 통해 드러나고 풍성해졌다. 한 권의 책 자체가 '창발'의 실험실같다. '창발'은 저자가 자주 언급한 단어로 사전적으로 "모르거나 하지 아니한 것을 처음으로 또는 새롭게 밝혀내거나 이루는 일", "각 단계마다 그 전 단계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면서도, 그 전 단계에 있었던 요인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이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며 발전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책을 읽었지만 만물의 이해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존재하는 것들은 결합과 혼융을 통해 인간이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창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는 원자로 동일하고 그 순환 속에 인간이라는 미미한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만은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나의 세상은 우주로 드넓어졌고 흙과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들은 내 머리와 몸 어딘가에 남아 매일의 삶에서 세상과 공명하며 '창발'을 향해 갈 것이다.

《 group 》 시민기자 북클럽 3기 : https://omn.kr/group/bookclub_0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