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안 표결, 9월 못하면 12월"...이재명 이래서 '날인' 거부했나
지난 4차례 검찰 조사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수원지검 조사에선 새로운 대응 전략을 선보였다. 검사의 질문에는 혐의를 직접 부인하는 등의 대답을 한 뒤 조사 후 검찰 신문조서에 서명·날인을 거부하는 방식이다.
10일 검찰 및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제3자뇌물제공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는 일부 질문은 “진술서로 갈음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선 지난 4차례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비교적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서에 서명·날인을 거부해 조사는 사실상 무효가 됐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사는 피의자의 서명·날인이 없으면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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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증거 제시하자…이재명 “밑에서 한 일이라 모른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이 대표가 쌍방울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지원비 500만 달러와 경기지사 방북 비용 3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캐물을 예정이었다. 사전에 150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단식 10일차인 이 대표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핵심 질문만 추렸다고 한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 전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8쪽 분량의 서면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가 끝난 뒤 “예상했던 대로 (검찰이)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말이나 아무런 근거가 되지 않는 정황들, 도정 관련 이야기로 긴 시간을 보냈다”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런 내용으로 범죄를 조작해보겠다는 정치 검찰에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날 “피의자(이 대표)는 조서 열람 도중 자신의 진술이 누락되었다고 억지를 부리고, 정작 어느 부분이 누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도 않은 채 조서에 서명날인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퇴실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
李 “말한 대로 조서 기재” 요구…檢 영상 녹화 제안은 거절
검찰 측이 복기하는 조사 상황은 이 대표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이 대표는 입을 열긴 했지만 검사의 질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질문과 무관한 내용을 반복하는 긴 설명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불리한 질문에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검찰이 경기도 대북사업 공문 등을 증거로 내밀며 추궁하자 구속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신모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등을 언급하며 “밑에서 한 일이라 나는 모른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조사 전 검찰에 “내가 말한 대로 조서에 기재하지 않으면 조서 열람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조사 과정을 모두 카메라로 찍는 영상녹화를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가 거부했다. 이에 검찰은 조사를 진행하기로 한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 소속 송민경(43·사법연수원 37기) 부부장검사와 박상용(42·38기) 검사 외에도 추가로 검사 1명을 더 배정해 조사에 객관성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썼다.
예측보다 이른 오후 6시40분 조사가 끝난 것도 이 대표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중단을 요구한 결과다. 그런 뒤 이 대표는 신문조서 열람하고는 돌연 “진술 내용이 누락됐다”고 항의하며 날인을 거부했다. 이 대표 조사에 동석한 박균택 변호사는 “(이 대표의) 진술 취지가 분명하게 반영되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고, 보완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 (이 대표가) 더이상 조서 열람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그냥 나온 것 같다”며 “향후 대응은 변호인 자격으로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 출석” 검찰 요구 거절한 이 대표…조사 지연 전략?
이 대표의 날인 거부로 9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묶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검찰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 대표의 조사 중단 요구로 대북송금 관련 조사는 본체인 경기지사 방북비용 대납까지 가지 못한 채 스마트팜 비용 대납 관련에서 끝났지만 이 마저도 무효가 됐다. 이 전 부지사 재판 과정에서 불거진 ‘사법 방해 의혹’, 김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주장한 ‘쪼개기 후원 의혹’에 대한 조사는 시작도 못 한 상태다.
이 대표는 현역 국회의원이라 정기국회가 개회된 이상 검찰이 영장을 청구해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가 지난 6월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만큼 9월 안에 체포동의안이 접수되면 가결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비명계 인사는 “이 대표가 오는 21일과 25일 본회의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선택을 한 거 같다”고 말했다. 9월만 넘기면 10월은 국감 등으로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그 사이 체포동의안이 접수돼고 12월에나 표결이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계산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이 대표가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단식을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영장 청구를 막겠다는 심산 아니냐”고 지적했다. 검찰은 “12일까지 출석해 나머지 피의자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거부할 경우 추가 조사 없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모란ㆍ박현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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