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임대계약서에 속은 뒤 "보증 취소"...세입자만 울린 HUG
A씨는 지난 6월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한 오피스텔을 전세로 계약했다. 보증금 1억5000만원을 내고 2년간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은행 대출로 보증금의 80%를 마련했다. 계약 당시 임대인 B씨(40대)가 직접 나왔는데, 오피스텔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이하 허그)의 ‘임대보증금보증’에 가입돼 있다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입주 후 날아온 HUG 보증 취소 안내문
그런데 지난달 말 A씨는 돌연 허그로부터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취소 안내문’을 받았다. 안내문엔 A씨가 계약한 오피스텔 호실에 대한 허그 보증이 취소되며, 자세한 내용은 임대인 B씨에게 문의하라는 내용이 적혔다. 가입 취소 사유는 한 줄도 없었다. 하지만 A씨는 B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B씨 소유 오피스텔 등 부동산 물건에서 비슷한 문제가 잇따라 터졌다. A씨는 “임차인 30여명이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며 “모두 B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일단) 지난 7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남부서엔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다른 임차인 3명(보증금 4억5000만원)의 고소장이 6일에도 제출됐다. B씨 소유 부동산 물건은 180채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피해자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출국 금지한 B씨 행방을 쫓고 있다.
가짜 서류로 보증까지...어떻게 가능했나
10일 허그에 따르면 B씨는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허그에 허위 서류를 냈다. 해당 보증제도는 임차인이 임대인의 부도 등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허그가 보증금 지급을 책임지려 도입했다. 임대인 가입은 의무화다. 허그에선 가입조건으로 임대물건의 부채 비율 등을 따진다. 일정 비율을 넘는 ‘위험한’ 물건을 거르기 위해서다. B씨는 부채 비율을 낮추려 일부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현재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허그는 처음엔 B씨가 낸 서류가 잘못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지난 7월 세입자 중 한 명이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안내서에 적힌 계약 금액과 실제 계약 금액이 다르다”고 알리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증심사 때 서류상 계약 금액을 낮추면, 임대인 입장에선 그만큼 줄 돈이 줄게 돼 부채비율이 개선된다.
허그는 문제가 불거지자 그때서야 전수조사를 벌여 임대보증금보증에 든 B씨 소유 물건 100여채에 대한 보증을 취소ㆍ거절했다. 허그 보증을 믿고 B씨와 계약했던 임차인들은 사후 취소에 따라 미반환 등 ‘사고’가 생기더라도 보증금을 보전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허그 관계자는 “B씨가 계약서 금액을 낮춘 뒤 날인을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문서여서 (위조해도) 곧장 알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 없으니 신고 않는다”는 허그?
허그는 B씨에 대한 수사의뢰 등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단 입장이다. 허그 관계자는 “보증 신뢰에 대한 타격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보증이 취소돼 허그가 직접 (금전 등) 피해를 본 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보증금보증이 의무화된 것만 해도 임대인들 반발이 크다”며 “법안 개정 등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자체적으로 (서류심사) 요건을 강화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A씨 사례에 대해선 “임대보증금보증 서류는 계약체결 이후 가입이 이뤄진다”며 “계약당시 B씨가 보여줬단 보증서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대처라고 지적한다. 강정규 동의대 부동산대학원장은 “허위 서류로 공공 보증기관을 속이고, 이를 내세워 임차인을 기만한 사건”이라며 “(허그가 직접)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범죄가 잇따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임대인이 제출한 계약 내용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관련법 개정 전이라도 허그 내부 규정에 따라 충분히 가능한 조치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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