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긍정적 효과' 눈길...한국미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은주 2023. 9. 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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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서울 · 키아프 서울 폐막
'오픈런' 없지만 고가 작품 러시
키아프 전시 작년보다 개선돼
"참여 화랑 더 엄격 심사해야"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을 입구에 설치한 로빌란트 보에나(R+V) 갤러리. 사진 연합뉴스

위기냐, 기회냐.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가 나란히 열렸을 때 한국 미술계가 마주했던 질문이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지난 6일 다시 두 아트페어가 나란히 개막해 각각 4일,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성과는 “프리즈 공동 개최는 한국 미술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3층에서 열리는 프리즈와 1층에서 열리는 키아프 사이엔 여전히 온도 차가 있었지만, "지난해보다는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앞으로 더욱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올해 프리즈·키아프 현장을 요약해 전한다. ·


①중국 컬렉터 활기 더했다


올해 행사에 참여한 갤러리 관계자들은 "올해 중국 본토 컬렉터는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컬렉터들이 많이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프리즈에서 만난 독일 수푸루스 마거스 갤러리의 오시네 시니어 디렉터는 "이번엔 미국에서 온 손님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온 손님을 많이 만났다. 판매 성과도 매우 좋았다"고 전했다.

②쿠사마 야요이 파워 강력했다


6일 프리즈에서 77억원에 판매된 쿠사마 야요이의 회회가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부스 벽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캐서린 번하트의 ‘핑크 팬더’가 등장하는그림은 약 30억원에 판매됐다. 사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앤디 워홀의 '꽃'을 오마주한 사이먼 후지와라의 작품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페이스갤러리에서 한화 약 2억3000만원에 판매된 조엘 사피로의 조각. 사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왼쪽이 약 13억원에 판매된 라시드 존슨의 회화다. 사진 하우저앤워스
프리즈에선 지난해 개막 당시 보인 '오픈런' 현상은 재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은 첫날부터 높은 판매 기록을 올렸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선 쿠사마 야요이의 회화 ‘붉은 신의 호박’이 580만 달러(약 77억3000만원)에 판매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또 즈워너에선 캐서린 번하트의 회화도 220만 달러(약 29억 3000만원)에 판매됐다.

하우저앤워스에서도 첫날에만 13점 이상 판매됐다. 시카고 태생의 화가 라시드 존슨(46) 회화가 97만 5000달러(약 13억원)에, 조지 콘도 회화도 80만 달러(약 10억 6000만원)에 판매됐다.

화이트 큐브는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 작품 2점을 6만 5000 파운드(약 1억원)에 판매했으며, 박서보의 작품을 49만 9천 파운드(약 8억원)에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 작가 이수경의 작품을 눈에 띄게 배치했던 마시모데칼로는 이 작가의 작품을 14만 달러(1억8000만원)에 판매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참가한 갤러리아 컨티누아는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을 60만 파운드 ~ 80만 파운드 사이(약 10억원)에 판매하는 등 큰 매출을 기록했다.


③한국 작가들 날개 달기 시작했다


학고재갤러리에서 약 1억7000만원에 판매된 1세대 추상화가 이준의 회화. 사진 학고재갤러리
작고한 이성자 화백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꾸려 작가를 소개한 갤러리현대의 부스. 사진 뉴시스
국제갤러리 부스에서 약 11만 달러~13 만 2000달러에 판매된 함경아의 작품. 사진 국제갤러리
금산갤러리 부스 벽에 설치된 화가 김25의 작품들. 사진 연합뉴스.
박서보·이건용·하종현 등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첫날 국제갤러리에선 박서보(92) 화백의 2008년 작품이 약 7억원에 판매됐고, 하종현(87) 화백의 2022년 작품이 약 3억원에 판매됐다. 한편 리안갤러리에선 이건용(80) 화백의 대형 신작이 약 6억원에 판매됐고, 페이스갤러리에서 1~3억원 대에 판매됐다. 이밖에 이배, 남춘모, 이불, 양혜규, 강서경 등 중견 작가들 작품도 고루 판매됐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참여한 갤러리 현대는 작고한 이성자(1918~2009) 화백의 작품으로 솔로 부스를 차려 작가를 소개했고, 학고재갤러리는 1세대 추상화가 이준(1919~2021)을 비롯해 이상욱(1923~1988), 변월룡(1916~1990) 등 작고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현대는 이성자 작가의 작품 2점을 각각 40만 달러 (5억 3000만원)~ 45만 달러(6억원 대)에 판매했고, 학고재 갤러리는 이준, 변월룡, 하인두 작가의 작품을 각각 1억 원대에 판매했다.


④"희귀 작품 보자" 관객들 줄 섰다


참여 갤러리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참여한 로빌란트 보에나(R+V) 갤러리와 스티븐 옹핀 파인 아트 갤러리였다. R+V 갤러리는 제프 쿤스의 가로 3m 크기 조각 '게이징 볼'과 수 백개의 나비 날개로 만든 데이미언 허스트의 '생명의 나무' 등을 선보였다. '게이징 볼'의 가격은 약 50억 원으로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R+V 갤러리 관계자는 "칸딘스키 등 올드 마스터 작품이 여러 점 판매됐으며, 허스트, 샤갈 르누아르 작품에 대해선 아직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⑤키아프, 앞으로 더 개선돼야 한다


키아프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으나 전반적으로는 "지난해보다 나아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순심 갤러리 나우 대표는 "고상우, 안소희 작가 작품은 완판됐고, 한상윤· 김소형· 김우영 작가도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최재우 조현화랑 대표는 "이배 등 중견 작가는 프리즈에 배치하고, 키아프에선 특히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며 "산수화가 조종성을 비롯해 강강훈, 이소연 작가 등 키아프에서 소개한 젊은 작가들이 국내외 컬렉터로부터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설원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키아프 전시 내용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키아프가 프리즈로부터 많은 자극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 전 미술원장은 "프리즈·키아프 개막을 전후로 서울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를 알리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현상도 '프리즈 효과'"라며 "국제 시장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한국 작가들이 적잖다. 프리즈가 세계 미술인들을 끌어들이며 전체적으로는 한국 미술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프리즈와 키아프 성과는 눈앞의 판매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세계 미술기관 관계자가 한국 작가들의 작업실을 직접 찾고, 다양한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장 안팎에서 작품 구입 문의와 한국 작가 해외 전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프리즈와 키아프 공동개최가 한국미술에 큰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 중견 작가는 키아프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작가는 "키아프는 겉모습은 백화점 같지만, 실제 작품 구성을 보면 절반 정도가 마치 아울렛 같아 질적으로 매우 부족해 보였다"면서 "한국화랑협회가 앞으로 더욱 엄격한 심사로 참여 갤러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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