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사진 고가 강매…‘254억 횡령’ 유혁기, 세월호 약 10년만에 재판
“루브르 전시회도 성황리에 끝났고 베르사유 전시회를 추진하고 있다. 180억에서 200억원 가량이 필요한데 각 계열사로부터 지원 받아야겠다.”
세월호 실소유주였던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50)씨의 공소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회삿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유씨가 2012년 12월 미국 뉴욕 사무실에서 자신이 지분 19.44%를 보유한 A회사 대표 B씨에게 한 말을 검찰이 재현한 것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발생 9년 4개월여 만인 지난달 22일 유씨를 총 254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B씨는 곧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유씨의 지시를 전달했다. 2013년 3월부터 계열사 사장들은 출자금 명목으로 A회사 명의의 은행계좌로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약 1년에 걸쳐 50억6400만원(계열사1), 19억5000만원(계열사2), 25억1000만원(계열사3) 15억원(계열사4) 등 거금이 이동했다. B씨는 이렇게 모인 약 160억원을 총 25회에 걸쳐 유씨가 대표로 있는 미국법인 명의 계좌로 전달했다. 당시 B씨는 A회사에서 사진 촬영이 취미였던 유병언 회장의 사진 작품들을 고가에 구입하기로 계약하고 선급금을 미리 건넨 것처럼 가장했다고 한다.
검찰은 사진 구매대금을 횡령액으로 본 이유로 ▶국내외 미술품 시장 중 사진 시장 규모가 한정된 점 ▶사진이 환가성이 매우 낮은 자산인 점 ▶유병언의 작품이 교회 신도들 및 계열사 외엔 거래된 적 없어 시장 가격 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없는 수준인 점 등을 들었다.
컨설팅 업체 통해 상표권 사용료 등 94억원
한국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 뉴욕 남부연방검찰청(SKNY)은 2020년 7월 유씨를 현지에서 체포했고 이듬해 7월 22일 뉴욕 남부연방원법원은 유씨의 범죄인 인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유씨가 인신보호 청원을 제기하면서 지난 8월 3일에서야 국내송환이 이뤄졌다. 검찰 관계자는 “306억원에 달하는 유씨의 추가범행, 125억원 조세포탈 범행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면서 추가 기소를 위한 미국의 동의 요청 절차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범죄인인도조약 15조에 따르면 인도의 근거가 된 범죄 외 범죄사실로 구금·재판·처벌하기 위해선 미국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2014년 법무부가 유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당시 기재된 유씨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기소했다”며 “조만간 추가로 입증한 유씨의 범죄사실을 기재해 미국 정부에 전달한 뒤 동의를 거쳐 추가 기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씨 측은 “돈이 오간 것은 맞지만, 용도가 정해져 있는 거래였다”며 “계열사로부터 받은 사진값은 모두 전시회에 사용됐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달 8일엔 인천지법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상표권 사용료도 가치에 따라 받았으며 컨설팅 비용도 계열사에 충분히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유씨에 대한 첫 재판은 이번 달 22일 열린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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