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MZ세대 놀라게 한 선배의 한마디
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세계의 직장생활에 질리고 지쳤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주말, OTT가 부지불식간에 눈과 마음에 들어와 앉아 버렸다. 직장생활 전문가로서, OTT 속 직장생활 노하우를 현실에 담아본다. <편집자말>
[장한이 기자]
▲ 드라마 <행복배틀> 속 직장인 주인공 장미호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
ⓒ ENA |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평범한 직장인이 톱 셀럽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을 맡은 박규영(서아리 역)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아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일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배역에 딱 맞게 사이다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최근 본 ENA 드라마 <행복배틀> 주인공 장미호(이엘)는 직장 상사로부터 업무 독촉을 받고 동료의 일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느라 야근을 일삼는 은행원이다. 우연히 SNS에서 행복을 배틀하는 이들과 엮이며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회사를 수시로 빠지면서도 미안한 기색은 별로 없다. 팀장에게 조목조목 할 말을 다하며 늘 당당하다.
일단 이 MZ세대 캐릭터들이 마음에 든다.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하지만, 딱히 밉상은 아니다. 일도 잘한다는 바탕이 깔려 있기에 요즘 세대 직장인들의 롤모델이지 않을까 싶다. 낡고 소심한 직장인인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시원한 모습이다.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 주인공과 비슷한 선배가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같은 팀 선배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심지어는 팀장과 한 시간 넘게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일을 잘해 미움받지는 않았다. 그 당당함에 부러움을 느낀 적이 많다.
"회사에서 할 말 다하는 선배가 부러워요."
"뭐? 내가? 나 할 말 1/10도 못 하고 사는데?"
선배 말에는 중요한 핵심이 담겨있다. 남들 보기에 거침없어 보여도 '나는 스스로를 다스리며 살고 있어'라는 자기만의 기준이다. 이는 요즘 세대 직장인들 마음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할 말 다하는 MZ세대'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가 차고 넘친다. 대부분 '요즘 애들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다 내뱉는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할 말을 다한다'는 의미
요즘 직장에서 할 말을 다한다는 것은 상사의 의견에 무조건 토를 달거나, 귀찮다고, 하기 싫다고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면에는 '불공정하다 싶으면 확인을 위해 할 말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공정성과 투명성을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등에 근무하는 젊은 세대는 성과급 산정 기준을 개선하라는 공개 의견을 냈고, 카카오에서는 인사평가 불공정에 대한 논란을 제기한 바 있다.
X세대 입장에서 위아래를 모두 경험하면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와의 잦은 충돌과 잡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여겼던 기성세대와 다르게 젊은 세대는 좀 더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 당연한 호기심이 왜곡과 불신을 양산하는 꼴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세대의 당당한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자신들이 누리지 못했거나 힘들게 쟁취해 소중하게 여기는 것 혹은 포기했던 것을 젊은 직장인들은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 모임에서 1970년대생 선배가 말했다.
"우리 회사는 칼퇴할 수 있고, 주말 다 쉬고,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월급도 꼬박꼬박 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직장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했다.
"선배님,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한 권리와 혜택을 습관적으로 배려나 고마움으로 느끼는 세대 그리고 당연한 일이니까 그저 누리는 세대와의 경험 차이다. 세대에 대한 이해와 배움을 동반하지 못하면 갈등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지금의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수시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요즘 세대를 'MZ'라는 한 뭉텅이로 비난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성격 차이, 분위기 차이
MZ세대보다 강렬했다고 평가받는 X세대 출신이다. 파릇하던 시절에는 할 말을 다 했을까. 전혀 아니다. 성격에 따라 다르고 시대마다 분위기가 있다. 반올림하면 사회생활 20년. 마음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못 하던 햇병아리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머릿속에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임원이 자리를 지키면 팀장이 퇴근하지 않았다. 팀원들도 자리에 머무르는 악습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불합리를 입으로는 외치지 못했지만, X세대끼리 모여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대리 4명과 메신저로 작당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퇴근하며 임원과 팀장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단지 시대에 따른 표현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과거는 불통의 시대였고, 요즘은 소통의 시대다. 때문에 젊은 직장인은 말로 표현하는 게 익숙하다. X세대 입장에서 표현에 익숙한 MZ세대, 잘파세대(Zalpha, Z+알파세대, 1990년대 중반~2024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까지 겪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Z세대를 넘어 잘파세대가 직장인이 된 이후를 예측하는 기사가 벌써 쏟아진다. 중학생 아들은 잘파세대다. 현재 회장인데 선생님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 억지스러운 지시라고 여기는 일 등에 대해 선생님께 조목조목 할 말을 다 하기 때문인 듯했다.
"담임 선생님은 무조건 '네네' 하는 애들만 좋아해요."
"무조건 '네네' 할 필요는 없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최대한 예의 바르게 하면 좋겠어."
회사의 기성세대 마음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단도직입적인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나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다들 불만 없나요?"라는 선동은 불편하다. 같은 말이라도 "저와 팀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한번 더 검토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표현은 상대의 감정을 두드리지 않는다.
▲ 드라마 <셀러브리티> 한 장면 평범한 직장인 출신인 주인공 서아리의 모습 |
ⓒ 넷플릭스 |
선배들은 시대를 배우고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후배들은 조금만 완곡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MZ세대를 이해하려면 공부를 해야 돼. 공부를!"이라고 외치던 상사가 있었다. 삐딱한 뉘앙스를 머금은 표현이었지만, 현실을 깨달은 듯한 고무적인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다. 한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거늘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고 재단하는 것은 섣부른 실수다. 이로 인해 불신과 오해의 싹이 자라난다.
기성세대는 '라떼'를 기반으로 한 감정 분출에 열 올리기보다는 현실적인 배움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연습해야 한다. 요즘 세대는 불합리함을 필터링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역지사지를 한 번 정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더불어 드라마 속 서아리와 장미호처럼 자신의 업무에 확신이 있다면 상사도 당신의 당당함을 조금은 더 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세대 간 작은 노력이 더해진다면, (정작 할 말을 다하고 살지도 않겠지만) '할 말 다 하는 직장인'이라는 꼬리표가 유발하는 오해와 불편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연습과 이해를 통해 개개인의 다양성이 미움이나 혐오로까지 번지지 않는 세대 간 평화를 기대해 본다.
오늘도 OTT 속 직장인에게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며 직장생활 노하우를 하나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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