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시작된 신혼부부의 위기

김동근 2023. 9. 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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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잠>

[김동근 기자]

 
 영화 <잠> 포스터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믿음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어떤 것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달라진다. 물론 어떤 믿음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완성된 믿음은 타인이 깨기 힘들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믿음의 범주 안으로 타인을 끌어들인다. 그 믿음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하길 원한다. 대상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누군과와는 충돌하고 누군가와는 가까워진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일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해당 종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정보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믿음을 의심하면 혼란은 더욱 커지고 갈등을 초래한다.  

몽유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 현수와 수진 

영화 <잠>에 등장하는 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신혼부부다. 그들의 집 거실 벽에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글귀가 붙여져 있다. 그 글귀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부의 평범한 일상은 어느 날부터 현수가 몽유병 증상을 보이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수는 밤에 일어나 앉아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돌아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한다.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의식이 쉽게 깨어나지 못하고 그걸 보는 임산부 수진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자면서 피가 흥건히 나올 때까지 얼굴을 긁고 생고기를 먹거나 키우는 강아지를 괴롭히는 현수의 모습은 이 부부사이에 작은 틈을 만든다. 
 
 영화 <잠>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수진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남편 현수에게 수면클리닉을 권한다. 몽유병, 그러니까 질병으로서 바라보고 그것의 치료법을 찾는다. 현수는 최대한 아내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집밖으로 나와 차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지만 수진은 '둘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면서 다시 현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영화 초반 아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가까워 보인다.  수진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의 증거로 생각된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카메라에 아주 평범하게 담긴다. 

수진의 출산 이후, 조금씩 깨지는 두 사람의 믿음

하지만 영화 중반, 만삭이었던 수진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뀐다. 아이를 무사히 키워내야 하는 이들에게 현수의 몽유병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 공포를 더 크게 느낀 건 엄마가 된 수진이다. 현수의 몽유병으로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야 했던 수진에게는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카메라는 수진의 얼굴을 조금 다른 각도로 비추기 시작한다. 그늘이 져 보이는 옆얼굴을 비춘다거나 흔들리는 눈동자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등, 수진의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큰 변수 중 하나는 수진의 엄마(이경진)다. 영화 초반 수진의 엄마는 자신이 잘 아는 무당으로부터 가져온 부적을 수진에게 전달하며 액운을 없애는 것이니 침대 밑에 붙이라고 한다. 그때 수진은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수진은 무당이나 미신을 믿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건 현수도 마찬가지고.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진과 현수의 믿음은 동등했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으로 받은 약도 바로 효과가 없었고, 현수의 몽유병 증상은 오히려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수진의 믿음은 다른 쪽으로 번져간다. 미신의 영역으로까지 퍼져간 수진의 믿음은 현수를 질병을 앓는 환자가 아니라 귀신에 씐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수진과 현수의 믿음은 순식간에 흔들리면서 큰 폭으로 벌어진다.
 
 영화 <잠>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그때부터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수진과 현수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더 더 믿을 것인가? 현수는 꾸준히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좀 더 센 약을 처방받은 이후 몽유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반면 수진은 몽유병이 발현되지 않은 그 짧은 기간 동안 미신적인 이유가 작동했을 거라 믿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 <잠>은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누구 말이 맞는지 끝까지 고민하며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은 다른 의문도 품게 된다. 과연 이 두 사람 간의 믿음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관객에게 어떤 것을 믿을 건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

수진은 영화에서 가장 큰 폭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피해자고, 다른 쪽으로 보면 빌런이다. 수진의 믿음은 현수의 몽유병과 엄마가 소개한 무당의 영향을 받아 뜻하지 않는 믿음으로 변화한다. 특히나 완전히 믿음이 변한 후반부, 화면에 비치는 수진의 모습은 무섭다. 수많은 부적들에 가려진 빛이 붉게 보이고, 그 붉은 빛이 수진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며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배우로서 맑고 밝은 눈빛을 가진 정유미의 얼굴에서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광기를 느낄 수 있다. 그 광기는 영화 후반부를 완전히 붉게 덮어버린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건 수진이지만 현수 역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기괴한 몽유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이성적인 에너지를 꾸준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수진의 광기 어린 에너지에 완전히 잡아먹히고 만다. 

영화를 다 보고 나도 관객은 선뜻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말이다.

영화를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과거 봉준호 감독의 연출 팀에서 같이 일했던 경험이 있는 신인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인 <잠>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가까운 두 사람의 믿음이 깨지고 멀어졌을 때 벌어지는 일을 무척 공포스럽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 중 가장 흥미롭고 무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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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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