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의 이주화 멈춰야" 한 달 늦게 치러진 이주노동자 장례

윤성효 2023. 9. 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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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산재 사망 미얀마 피예이 타엔 이주노동자, 10일 장례·추모식

[윤성효 기자]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 윤성효
 
"생명 안전 차별을 넘어 연대로. 살아서도 차별, 죽어서도 차별. 인간의 존엄이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에 답해야 한다. 차별은 정당한가?"

이주 노동자와 시민들은 산업재해 사망한 미얀마 출신 피예이 타엔(Pyay Thein)씨를 보내면서 이같이 외쳤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예이 타엔 장례투쟁위원회가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27세인 고인은 한국에 들어온 지 6년째로 지난 8월 7일 경남 합천군 대병면 소재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덤프트럭에 머리가 깔려 사망했다. 고인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고속도로 공사의 시행사인 계룡건설의 하청업체인 영인산업에서 신호수로 일하고 있었다.

미얀마에 있는 유족들은 경남이주민센터(대표 이철승), 경남미얀마교민회(대표 네옴)에 장례와 배·보상 협상을 위임했다. 사측과 협상이 완전히 타결되지 않은 가운데 사망 한 달이 훨씬 지나 장례가 치러진 것이다.

피예이 타엔씨가 산재 사망하자 경남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장례투쟁위'를 조직했다. 한국에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가운데 산재사망으로 인한 '산업재해 노동자장(葬)'이 치러지기는 처음이다.

장례투쟁위는 합천 한 장례식장에 있던 고인의 시신을 창원으로 옮겨 왔고, 입관·조문을 거쳐 이날 오후 상복공원장례식장에서 화장했다.

추모식장에는 "국적이 다르다고 인간의 존엄까지 다를 수 없다"거나 "산재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 이제 멈춰야 한다"라고 쓴 만장이 놓였다. 추모식에는 미얀마 출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이주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장례식은 미얀마 찟따수카 사원 지도법사 위쑤따 스님(대구)이 중심이 되어 미얀마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추모식이 열렸다.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 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9월 11일은 고인이 한국에 온 지 6년이 되는 날이다. 고인은 스물일곱해를 사는 동안 6년을 한국에서 보냈다"라며 "코로나19에다 살인적인 군사쿠데타 때문에 맏아들을 여러 해 동안 볼 수 없었던 고국의 어머니는 이제 영영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는 "임시 체류자격을 가진 고인이 찾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한국인이 떠나버린 사업장, 한국인을 구하기 힘든 위험한 일터라도 고인이 거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사회 전체에서 산재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넘어 산재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로 치닫고 있다. 국내 산재 사망자가 줄었다고 해도, 산재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는 더 늘어났다. 한국인 노동자가 덜 다치고 사망하는 동안 이주노동자는 더 다치고 더 병이 들고 더 목숨을 잃고 있다"라고 했다.

이철승 대표는 "산재와 죽음의 이주화라는 이 악마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피예이 타엔, 살아서 지극히 평범했을 당신의 삶은 죽어서 더 이상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의 목숨도 그 가치가 다르게 매겨질 수 없다는 것을, 국적 앞에 죽음마저 차별받는 이 참혹한 가치 전도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는 깨우침을, 다문화사회 대한민국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실과 허상을, 당신은 일깨워 주셨다"라고 했다.

유족을 대리해 사측과 협상을 벌였던 김형일 변호사는 경과 보고를 하면서 "생명의 가치는 국적에 의해 나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도 국적에 의해 나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노동자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무도 모르게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국적에 관계 없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는 추모 발언을 통해 "고인이 사망하기 하루 전날 대구에서 열린 미얀마 피란민 돕기 축구대회에서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까지 자신만의 축구 실력으로 미얀마를 위해 나섰다. 당신은 당신의 의무를 다했다"라며 "친구, 다음 생에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고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기를 빈다"고 말했다.

차민다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부지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를 말 잘 듣는 노예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는 지난 코로나19 때 경험했다"라며 "우리에게는 노동자의 생명을 값으로 매기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때 정부도, 사회도, 우리가 사람이고 노동자라고 인정해 줄 것"이라고 했다.

조형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안타깝게도 많은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다치거나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존엄하게 예우하고 희생에 감사하지 못한 것 같다"라며 "깊이 반성하고 가장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 이전의 모든 산재 사고 이주민 희생자들에게 사죄한다"라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운동과 투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한다"라며 "이 투쟁에 이주민이라는 국적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노동자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이 될 때까지, 이주민 노동자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피예이 타엔의 영전에 바친다"고 다짐했다.

안혜린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직국장이 추모시를 낭송했고, 김정렬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부대표가 '잘린 손가락', 우창수 가수가 '아들에게'라는 추모곡을 불렀다. 추모식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나는 내가 지킨다'를 불렀다.

참가자들은 만장을 들고 추모식장에서 창원대로 방향으로 1km 정도 거리를 행진했다.

부산고용노동청은 이번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조사하고 있다.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거리행진.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거리행진.
ⓒ 윤성효
 
 10일 오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미얀마 이주노동자 피와이 타옌 산업재해 노동자장." 거리행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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