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격침... '모리야스 재팬'의 상승세가 무섭다
[이준목 기자]
'모리야스 재팬'의 상승세가 매섭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유럽의 강호 독일을 원정에서 다시 한번 격침시키며 돌풍을 이어갔다.
9월 10일(한국 시각)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친선전에서 일본은 독일에 4대1로 대승을 거뒀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2대1, 역전승을 거뒀던 일본은 10개월 만에 '리턴 매치'에서 또다시 독일에 굴욕을 선사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해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나란히 16강에 진출하며 아시아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은 외국인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일본은 자국 출신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각각 지휘봉을 잡아 4년간 자신만의 색깔로 팀을 다져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특히 일본 축구는 전통의 강호 독일-스페인과 함께 대회 최대 '죽음의 조'에 선정되는 불운을 극복하고 올린 성과이기에 더욱 빛났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일본의 조별리그 탈락을 유력하게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은 코스타리카에 석패했으나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과 스페인에 연이어 역전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하며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이 거둔 2승과 승점 6점은, 벤투호(1승1무1패, 승점 4점)를 뛰어넘어 해당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가 조별리그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다. 16강에서는 지난 대회 준우승팀인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는 접전 끝에 석패하며 8강진출에는 실패했다. 대회 최종성적은 9위로 16강팀 중에서는 최고의 순위였다.
그런데 월드컵 이후, 양국의 행보는 엇갈렸다. 한국축구는 벤투 감독과 결별하고 다시 한번 외국인 감독 카드를 선택하며 독일 출신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영입했다. 반면 일본은 월드컵의 성과를 인정하여 자국 출신 모리야스 감독과 재계약을 맺었다. 일본축구가 월드컵 무대를 밟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월드컵 대회를 마치고 연임에 성공한 지도자는 모리야스 감독이 최초였다.
일본도 그동안 한국 못지않게 여러 외국인 감독을 기용한 바 있다. 지난 카타르월드컵 이후 다시 외국인 감독 영입을 검토했으며, 실제로 마르셀로 비엘사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전 벨기에 감독이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6강 진출의 공로를 무시할수 없었고 모리야스 감독 본인은 재계약을 원한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일본축구협회는 다시 한번 모리야스의 손을 들어줬다.
모리야스 감독은 '일본판 허정무'라고 할만한 인물이다.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포지션이지만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는 점, 자국축구협회가 우선순위인 외국인 감독 영입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차선책'으로 운좋게 대표팀 감독에 올랐다는 점, 자국 출신 대표팀 감독으로서 온갖 저평가와 비난 여론을 당했음에도 끝내 극복하고 성과를 냈다는 행보 면에서 여러모로 흡사하다.
모리야스 감독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16강을 이끈 니시노 아키라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허정무 감독도 그러했듯이, 모리야스 감독도 부임 초기에는 여론이 좋지 못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필립 트루시에 전 감독 이후 16년 만이자 일본인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A팀과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했다.
첫 2년여간 모리야스 재팬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23세 이하)과 2019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9 코파아메리카(초청팀) 조별리그 탈락, 2020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4위) 등을 기록했다. 성적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가장 큰 고비는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이었다. 톱시드를 받고도 첫 경기에서 약체 오만에게 홈에서 일격을 당했고, 3차전에서는 사우디 원정에서 또다시 덜미를 잡히며 벼랑 끝에 몰랐다. 당시 일본 내에서 여론조사 결과 모리야스 감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이 90%에 육박했고 일본축구협회 역시 경질을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모리야스 재팬은 4차전 호주전 승리를 기점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고 7승 1무 2패, 조 2위의 최종성적으로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카타르월드컵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아시아 국가중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한 결과물을 이뤄냈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모리야스 재팬의 연속성을 4년 더 이어가기로 결정한 일본축구의 최근 상승세는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은 카타르월드컵 이후 3승1무1패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같은 기간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한국축구가 3무 2패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2023년 들어 한국과 일본이 첫 4번의 A매치까지 모두 홈에서 같은 상대(콜롬비아, 우루과이, 엘살바도르, 페루)를 만났다는 점이다. 양팀의 전력과 현 주소가 직접적으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월 A매치에서 모리야스 재팬은 우루과이(1-1 무), 콜롬비아(1-2패)를 상대로 클린스만호와 똑같이 1무 1패를 기록했다. 양팀의 격차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은 6월 A매치부터다. 한국이 1-1로 비긴 엘살바도르를 일본은 6-0으로 완파했다. 또한 한국이 0-1로 패한 페루에게도 일본은 4-1로 완승했다.
9월 A매치는 한일 양국이 나란히 유럽 원정에 나서서 처음으로 다른 상대를 만났다. 하지만 한국이 최근 A매치 12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한 웨일스를 상대로 졸전 끝에 0-0에 무승부에 그친 반면, 일본은 전통의 강호 독일을 압도하며 현재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본은 최근 A매치 3경기 연속 4골 이상을 득점하는 절정의 화력을 뽐내며 카타르월드컵 이후 5경기에서 16득점 5실점을 기록중이다. 공격축구를 표방했던 클린스만호는 4득점 6실점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엔트리 전원을 유럽파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만큼 역대 최고의 선수층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이번 9월 A매치에서도 27인 명단 중 유럽파만 19명에 이르렀다. 대표팀에 뽑힐만한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다보니 소속팀에서 출중한 활약을 보이고도 발탁되지 못하는 선수들이 발생할 정도다.
또한 일본은 모리야스 감독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유럽무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아온 해외파 선수들의 기량과 조직력이 원숙해졌다. 또한, 일본축구의 최대 약점이던 피지컬과 체력 문제가 크게 개선됐다. 여기에 모리야스 감독의 실리적인 전술까지 더해지며 이제 세계적인 강호들과도 대등하게 맞설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다가오는 2024 아시안컵에서도 일본은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며 한국의 최대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축구도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이재성 등 베스트멤버들이나 유럽파의 재능만 놓고보면 일본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최근 A팀과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을 아울러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번번이 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A팀은 성적부진과 클린스만 감독의 불성실 논란 등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리야스 감독은 독일전 승리 이후 "선수와 스태프들이 모두 함께 높은 목표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도전해가며 꾸준히 팀을 쌓아 올린 것이 성과로 드러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본축구는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의 호성적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나아가 아시안컵과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라이벌의 눈부신 성장은 우리에게도 자극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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