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X파일]“낙선이 뭐예요”…선거의 달인이 된 ‘충주의 전설’
한나라당 민주당 넘나들며 선거 전승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까지 ‘출마=당선’
편집자주 - ‘정치X파일’은 한국 정치의 선거 결과와 사건·사고에 기록된 ‘역대급 사연’을 전하는 연재 기획물입니다.
정치인에게 선거에서의 당선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군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도 당선이 확정된 그 날만큼은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선거에서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다. 중앙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정당의 대표급 정치인 가운데 단 한 번도 당선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이도 있다.
상당수 정치인은 선거의 기쁨 못지않게 패배의 쓴맛을 경험한다. 한두 번 선거에 출마하다 포기하는 그런 정치인 말고 직업 정치인으로서 10년, 20년 이상 선거를 경험한 인물이라면 누구나 패배의 늪에 빠져 인생의 절망을 느끼게 마련이다.
정치인으로서 시련을 겪은 인물이 극복의 경험을 바탕 삼아 권력의 정점에까지 오르는 게 정치라는 생태계의 순리다. 그런데 정치의 일반 문법을 거스르며 살아오다 결국 신화와 전설을 남기며 화려하게 정치를 퇴장한 이도 있다.
“낙선이 뭐예요”라고 외치는 인물. 선거에 출마하면 당선이 당연시되는 인물. 정치의 거센 풍파에도 언제나 자기의 항로를 벗어나지 않은 채 순항을 이어온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충주의 전설’인 정치인 이시종, 그는 선거의 달인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다.
‘공직 선거 출마=당선’의 공식을 만든 정치인은 이시종 한 명만이 아니지만, 그의 이력은 다른 이와 비교할 때 더 특별하다.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이고 시장 선거, 광역단체장(도지사) 선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선거를 넘나들면서 당선 신화를 써간 인물이다.
정치인 이시종은 1995년 충북 충주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2018년 충청북도 도지사 선거에 이르기까지 23년간 여덟 차례 공직 선거에 출마해 모두 당선됐다. 2004년과 2008년에는 각각 총선에 출마해 충주시 국회의원이 됐다.
충주시장 선거도, 충주 국회의원 선거도, 충북도지사 선거도 정치인 이시종이 출마하면 당선이었고, 그와 경쟁한 모든 이는 낙선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인 이시종은 사실 여의도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정객(政客)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을 탄탄히 쌓아온 인물이 아니라 공직사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정치인 이시종은 제10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충청북도청, 강원도청, 충남도청과 내무부 등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1995년 직선제 지방선거가 도입되기 전에 영월군수와 충주시장 등을 경험했다.
공무원 출신 이시종의 첫 선거 무대 데뷔는 1995년 충주시장 선거였다. 당시 그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나서서 42.1% 득표율로 당선됐다. 1998년 충주시장 선거 때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62.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02년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56.7%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치인 이시종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민자당 등의 공천을 받고 출마해 충주시장이 됐던 인물이다. 정치의 색깔로 분류한다면 보수 성향의 인물에 가깝다. 하지만 2004년 제17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충주시 국회의원이 됐다. 2008년 제18대 총선 역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충주시 국회의원이 됐다.
2004년 총선은 열린우리당 바람이 불었던 선거였지만, 2008년 총선은 통합민주당이 고전했던 선거였다. 하지만 정치인 이시종은 그해 선거에서도 48.0%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소속 정당의 인기가 없었지만, 정치인의 개인기로 돌파했다는 얘기다.
2010년과 2014년, 2018년 지방선거 때는 각각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로 출마해 충북도지사에 당선됐다.
정치인 이시종이 전승 신화를 기록한 배경은 무엇일까. 충주는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특정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형성될 정도는 아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현재의 민주당 계열 정당 쪽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인 정치인 이시종의 특성은 선거 승리에 유리한 요소로 반영됐다.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는 물론이고 국민의힘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에게도 투표의 명분을 안겨주는 계기가 됐다.
특정 정당의 정치색이 너무 강할 경우 해당 정당의 강성 지지층에게는 호평받겠지만, 상대 정당 지지층에게는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반면 정치인 이시종은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 공략에 유리한 정치적 스타일이 선거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충북도지사 선거 때는 청주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충주 출신 정치인이라는 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충주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많은 표를 가져가는 게 일반적인데 정치인 이시종이 후보로 나섰을 때는 이런 정치 문법이 통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2014년 충북도지사 선거 때 충주 국회의원 출신인 윤진식 후보를 내세우며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윤진식 후보는 47.7% 득표에 머물면서 49.8%를 득표한 이시종 후보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1947년생인 이시종 전 충북지사는 현실 정치 무대에서 떠난 상태다. 은퇴란 아쉬움의 단어일 수밖에 없지만, 정치인 이시종에게 은퇴는 전승 신화의 완성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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