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러 전투기 잡는 우크라 '골판지 드론'…무서워진 종이비행기
'연날리기'서 기원한 종이비행기의 역사
생산 단가 내려간 자폭드론…전세계 확산 우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골판지로 만든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러시아 공군기지를 잇달아 공습해 전투기와 방공망 시설에 큰 피해를 줬다는 소식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돈 400만원 정도 가격인 골판지 드론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러시아 전투기를 파괴하면서 종이비행기의 위력이 새삼 주목을 받은 셈인데요.
특히 골판지로 만든 드론은 크기도 작고 레이더에 관측이 되지 않는 데다 기존 탄도미사일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 앞으로 여러 전쟁터에서 쓰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드론에 소형 폭약을 설치해 자폭용 드론으로 활용해도 적군의 민감한 전자 시설 파괴에 매우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러 나라에서 도입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종이비행기는 현대의 산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역사가 꽤 길다고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이비행기의 기원을 '연날리기'에서 찾고 있는데, 중국의 제지술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번 시간에는 이처럼 현대 전쟁터를 뒤흔드는 종이비행기의 역사와 함께 앞으로 상용화될 종이 드론이 전쟁터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러 수호이 전투기 잡은 우크라이나 '골판지 드론'먼저 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서부의 쿠르스크 비행장에 골판지로 만든 드론으로 공습을 가해 미그(Mig) 전투기 1대와 수호이(Su) 전투기 4대 등 5대를 공격했으며, 판시르 방공시스템 미사일 2기와 S-300 방공시스템 일부를 손상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 비행장 공격에 사용된 건 호주산 골판지 드론이다"고 게시하면서 더욱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지난 3월 호주 방산업체 SYPAQ는 호주 정부와 70만달러(약 9억2500만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를 위한 배송 시스템 드론인 '코르보(Corvo)'를 생산한다고 발표한 바 있어 해당 골판지 드론이 더욱 주목받게 됐습니다.
이 골판지 드론은 평평하게 포장돼 최대 120㎞까지 비행할 수 있고, 애초에는 공격용이 아닌 정찰 및 운반용으로 개발됐다고 알려져 있죠. 우크라이나군이 이 드론에 소형 폭약을 실어 자폭용 드론으로 활용한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물론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죠.
무엇보다 이 골판지 드론 공격의 전과가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놀라운 가성비 때문이었는데요. 해당 골판지 드론은 왁스 처리한 제품으로 대당 가격이 3500달러(약 460만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주력 전투기인 Su-27 전투기의 경우 대당 가격이 3000만달러(약 400억원)로 알려져 있으니 골판지 드론으로 전투기를 요격했다면 정말 엄청난 가성비를 보여준 셈입니다.
특히 골판지 드론은 크기도 작고 금속성 재질이 아니라 레이더에 쉽게 걸리지도 않는 데다 요격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손쉽게 러시아군의 방공망을 뚫은 것으로 알려졌죠.
◆역사(History)1 : 제지술 발명한 中에서 첫 등장…전 세계로 확산한 종이비행기이 골판지 드론 때문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종이비행기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고 하는데요. 정확한 제작연도가 전해지진 않지만 맨 처음 종이를 만든 나라인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흔히 중국 후한시대 환관인 채륜(蔡倫)이 서기 105년에 제작한 '채후지(蔡侯紙)'가 종이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문서기록이 가능한 종이의 시초라고 하죠. 실제 포장지로 쓰거나 도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초기 형태의 종이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개발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종이비행기의 선조격으로 알려진 연(鳶·Kite)의 경우에는 춘추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3세기경에 등장했고, 주로 야간 작전 때 공격 신호 등을 보내기 위해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죠.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연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서기 647년, 신라 선덕여왕 재위 시기 상대등 비담(毗曇)이 일으킨 반란 때 등장합니다. 당시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자 비담이 이를 활용해 여왕의 기세가 다했다고 소문을 내며 여왕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유신 장군이 기지를 발휘해 거대한 연에 허수아비를 매달고 여기에 불을 붙여 다시 여왕의 별이 하늘로 치솟았다고 소문을 내 군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고 하죠.
임진왜란 때는 사람이 탈 수 있는 크기의 거대한 연 형태의 비행체를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란 추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탈출용, 연락책 역할을 했던 '비거(飛車)'라는 글라이더 형태의 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의 저서 '여암전서'에 따르면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정평구라는 인물이 이 비거를 발명했으며, 진주성 전투 당시 포위된 성내로 이 비거를 타고 들어갔다는 내용과 일부 사람들이 비거를 이용해 성을 탈출했다는 내용 등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기록만 남아있고 설계도나 실제 유물이 전해지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History)2 : 전투기 모델링에 필수가 된 '페이퍼플래인(Paper plane)'이러한 연의 형태에서 벗어나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끝이 뾰족한 형태의 일반적인 종이비행기는 19세기 이후에 등장했다고 하는데요. 산업혁명 이후 종이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민간 보급률이 크게 올라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1860년대부터 종이비행기를 접는 교본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서양에서는 이를 '종이 다트(Paper Dart)'라고 불렀다고 하죠.
이후 1903년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개발 이후 종이비행기는 실제 비행기 기체의 유체역학 연구를 위한 중요한 실험도구가 됐다고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종이비행기가 등장하면서 실제 비행기 제작 시 아이디어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됐다고 하네요. 라이트 형제도 비행기 제작 시에 작은 풍동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킨 뒤, 종이로 만든 모형 비행기를 계속 날려보는 실험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차대전 전후로 전투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종이비행기도 항공기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오늘날 미국의 항공방위산업체인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의 창업자인 잭 노스롭(Jack Northrop)이 개발한 전익기인 B-2 폭격기의 경우, 1930년에 그가 종이비행기로 만들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전익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59년 뒤인 1989년, B-2 폭격기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하죠.
오늘날에는 각종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도 많아졌는데요. 2006년부터 시작된 국제대회인 '레드불 페이퍼 윙스(Red Bull Paper Wings)'의 경우에는 멀리 날리기(Longest Distance)와 오래 날리기(Longest Airtime), 곡예비행(Aerobatics) 등으로 대회가 분류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80여개국에서 6만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여했는데, 우리나라 선수가 곡예비행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가장 종이비행기를 오래 날린 사람은 일본의 토다 타쿠오(?田拓夫)란 인물로 그는 일본 종이비행기 협회장이자 일본 1위 금형회사인 케스템(Castem)의 대표이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난 2009년 후쿠야마시에서 열린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27.9초 동안 종이비행기를 날려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고 하죠.
◆시사점(Implication) : 크게 내려간 미사일 단가, 더 잔혹한 전쟁 우려이러한 역사를 통해 발전을 거듭해온 종이비행기는 이제 골판지 드론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항공기술 발전의 측면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전쟁의 잔혹함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는데요.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대당 최소 10억원이 넘는 탄도미사일보다 가격도 훨씬 저렴한 종이 드론이 전 세계로 상용화되면 전쟁의 양상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지난 2019년,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석유 시설인 아브카이크 원전을 이란제 소형 자폭 드론으로 폭격하면서 시작된 자폭 드론 공습이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죠.
이런 소형 드론을 대량 생산해 한꺼번에 특정 지역에 투입해 광범위한 지역을 공습할 경우, 민간인 및 인명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전망입니다. 제작에 특별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동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여러 분쟁지역에서 손쉽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늘로 비행을 꿈꾸던 순수한 아이들의 종이비행기가 오히려 동심을 짓밟는 무기로 전용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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