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았던 40초, 날 '스우파'에 입덕시킨 그녀
TV·OTT, 유튜브 등 영상 매체 속 심상치 않은 여자들을 사심 가득 담아 탐구합니다. <편집자말>
[홍현진 기자]
댄스 예능을 좋아한다. Mnet <댄싱9>(2013)을 시작으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2021),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2021), <스트릿 맨 파이터>(스맨파)(2022)까지 모두 챙겨 봤다. 댄서들이 몸 하나로 상상치 못했던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압도하는 순간을 볼 때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 <스우파2>가 나왔을 때는 봐야 할지 고민됐다. <스우파1>에서 <스걸파>, <스맨파>로 갈수록 신선함이 떨어지기도 했고 Mnet의 전매특허인 신경전 연출도 피로했다.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도 <스우파>를 뛰어넘는 후속작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
<스우파>는 시즌2에서도 여자 댄서들 사이의 기싸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시즌1에서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의 리헤이의 갈등으로 재미를 봤기 때문일까. <스우파2> 1,2화 '노 리스펙 약자 지목 배틀'에서는 각각 사제와 동료 관계였던 하리무와 레드릭, 리아킴과 미나명의 대결이 방송을 탔다.
특히 '원밀리언'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다 사이가 틀어진 리아킴과 미나명의 싸움이 극적으로 그려졌다. 두 사람의 배틀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신체 접촉이 발생해 긴장감을 형성하기도 했다.
Mnet이 놓친 것이 있다. 시청자들이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서사에 열광한 것은 싸움 구경이 주는 원초적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허니제이와 리헤이가 춤을 통해 명승부를 펼치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푸는 과정이 감동을 줬다면, 리아킴과 미나명의 대결에는 해묵은 감정만 있었다. 심사위원 모니카가 "너무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무빙을 하는데 솔직히 별로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멀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찝찝한 논란만 남겼다.
▲ 댄스 크루 '잼 리퍼블릭'의 리더 커스틴. |
ⓒ Mnet |
구원 투수는 의외의 곳에서 등장했다. 국내 댄스팀만 참여한 시즌1과 달리 시즌2의 슬로건은 '글로벌 춤 서열 1위를 가려라!'이다. 시즌2에 참가한 8개 크루 가운데 '잼 리퍼블릭'은 영미권, '츠바킬'은 일본 댄서들로 구성된 팀이다. 글로벌 크루 2팀을 참여시켜 놓고 '글로벌 춤 서열 1위'를 운운하는 것이 겸연쩍기는 하지만 3회까지 봤을 때 글로벌 팀 참가는 신의 한 수가 됐다.
가장 눈에 띄는 댄서는 잼 리퍼블릭의 리더 커스틴이다. 커스틴은 세계적인 댄스팀 '로열패밀리' 출신으로 저스틴 비버, 리애나 등과 협업한 적 있는 그야말로 '월드 클래스' 댄서다. 피지컬과 에너지, 표현력도 대단하지만 정말 감탄스러운 것은 커스틴의 태도다.
서로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는 약자 지목 배틀에서 커스틴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왁씨(마네퀸)를 대결 상대로 고른다. 커스틴은 왁씨에게 승리를 거두지만 곧이어 마네퀸의 또 다른 멤버 윤지가 신청한 설욕전에서 패한다. 심사위원이 윤지의 손을 들어줬을 때 커스틴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커스틴은 윤지에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면서 춤이 독창적이었다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준다.
약자 지목 배틀 마지막, 두 배의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에이스 배틀'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왁씨는 커스틴에게 다시 대결을 청한다.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재도전하는 왁씨의 용기도 멋졌지만, 커스틴과 왁씨가 재대결에서 동시에 40초 동안 춤추는 장면은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최선의 기량을 발휘하며 춤을 추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대결이 아니라 한 팀처럼 호흡을 맞춰 함께 춤을 춘다. 승부에 집착하며 본인의 춤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합을 맞추며 무대를 즐긴 것이다. 경쟁이 축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댄서들과 심사위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고 '베베'의 리더 바다는 "살면서 이걸 또 볼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왁씨는 커스틴에게 완승을 거두고 커스틴은 이번에도 박수를 쳐주면서 포옹을 한다.
2,3화에 걸친 '계급 미션'에서도 커스틴은 품격 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 치열한 접전 끝에 바다가 메인 댄서로 선발되자 커스틴은 "바다의 아이디어와 창작 방식을 보고 함께 안무를 하고 싶다고 느꼈다"라면서 "바다가 메인 댄서가 돼서 진심으로 기쁘다"라고 말한다.
자신감과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경쟁자에게 배울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모습. 커스틴을 보면서 '어른의 싸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커스틴은 보여준다.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 가비의 유튜브 채널 '가비 걸'에 출연해 <스우파1> 비하인드를 이야기하는 허니제이. |
ⓒ 가비 걸 |
남의 싸움은 재밌다. 시즌1 참가자 가비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시즌1 참가자 허니제이, 효진초이와 함께 출연해 "나는 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들려면 막말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서 "별의별 말을 다 했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싸워야 재밌다고, 여기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장소이지 않냐고.
하지만 계속되는 비난과 갈등은 피곤함을 준다. 여기에 Mnet의 '매운 맛' 편집이 더해진다면 더욱더. 다른 시청자들도 비슷한 마음인 걸까. 지난 8월 22일 유튜브에 공개된 크루곡 퍼포먼스 대중 투표 영상을 보면 잼 리퍼블릭 조회수는 231만 회(9월 7일 기준)로 1위를 기록했다. 2위인 베베(123만 회)의 2배 가까운 수치다.
댓글에는 잼 리퍼블릭의 '실력과 매너'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이다. 다른 팀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고 배틀을 할 때 상대 팀을 존중하면서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베베의 바다 역시 탁월한 디렉팅 능력에 겸손하고 예의 있는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스맨파>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이 승부욕을 드러내며 싸우는 모습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스우파1>이 더욱 특별했다는 것을. 그동안 여성들은 '나대지 말라'는 주문에 갇혀 살아왔다. 그런데 <스우파1>에는 눈을 크게 뜨고 '내가 최고'라며 '다 발라버리겠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센 언니'들이 가득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큼 실력도 출중했다.
<스우파> 시즌1이 사랑받았던 것은 여성들이 대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결을 가진 여성들이 갈등하고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서사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시즌1이 의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춤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에 남는 것은 논란이 아니라 결국 춤이다.
나는 지금도 시즌1 우승팀인 홀리뱅의 메가 크루 미션 영상을 종종 찾아본다. 제자들과 함께 참여한 허니제이는 프로그램 초반에 혼자 모든 권한을 독점하다가 미션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서서히 고민하기 시작한다. 팀원들을 믿고 기회를 주고 스포트라이트를 나눠가진다. 그 결과물이 메가 크루 미션이다. 허니제이는 가비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스우파>에 출연하면서 다른 리더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극적인 편집점이 아니라 더 멋진 춤이다. 시즌2에서 소름 돋는 무대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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