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부모입니다 [이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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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 30도를 넘는 막바지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6일 광주 북구 신용근린공원 바닥분수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백화점이나 복합상가건물에 갈 때는 유아차를 두고 가야 하는지 몰랐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유아차를 보는 순간 그들에게서 불편함 가득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슷한 상황을 몇 차례 더 경험한 뒤, 더 이상 유아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층간소음으로 인해 아랫집에 피해를 줬을 때였다. 관리실을 통해 인터폰이 울리거나 아래층에서 직접 올라와서 벨을 누르기라도 할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 아랫집 입장에서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대역죄인이 되어야만 했다.
▲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 변화 |
ⓒ 통계청 |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고 13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 입사해서 동종업계에 비해 적지 않은 급여로 악착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4인 가족이 그러하듯 빚은 더 쌓여만 간다.
근속연수가 짧아지면서 실무자 중에서 50대를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실적 부진과 번아웃을 경험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깊은 우울을 경험한다. 직장에서 나의 위치와 경제적인 여건, 앞으로의 노후를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자녀들의 존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남들처럼 부동산 투자나 비트코인을 통해 자산을 폭발적으로 증식시키지 못한 내 탓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 '노오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전업주부인 아내 잘못도 아니다. 아내의 육아가 없었다면 두 자녀를 지금까지 양육해 온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이 4~5세가 되기까지 엄마는 제대로 된 숙면이 불가능하다. 3살 터울인 두 아이를 케어하면서 아내의 몸이 많이 망가졌다. 집사람은 돌아서면 쌓여있는 집안일과 삼시 세끼 식사 준비를 쳐내며 24시간 자녀들과 함께했다. 태에 있는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그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기쁨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출산과 육아라는 명목하에 아내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희생되어야 했다.
부부가 각자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자발적인 경우도 있지만, 혼자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에 따라 맞벌이 체제를 잘 유지한다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가계운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라는 강력한 현실은 맞벌이 가정의 평화를 순식간에 뒤집어엎는다.
임신한 여성은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약 8~9개월을 견뎌야만 한다. 만약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사용할 수 있다면 15개월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다면'이라고 표현한 것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모두 근로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산과 동시에 더 이상 재직이 불가능한 회사도 아직 버젓이 존재한다. 예전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여성들에게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직장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위협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복직 이후의 육아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야 한다. 떠나기 싫어하는 어린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긴 뒤 무거운 마음으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자녀와 관련된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아이들은 자주 아프다. 아프면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직장인이라면 연차나 반차를 내야 하고 자영업자라면 영업장 문을 닫아야 한다. 맞벌이 상황에서의 자녀 돌봄 공백은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코로나라는 3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맞벌이 가정들이 돌봄이라는 현실의 민낯을 마주했다.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회사는 개개인의 가정을 배려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노동자들은 수익을 창출해 내기 위한 생산의 도구로써만 존재한다. 자녀를 케어하기 위해 수시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직원을 품어줄 직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출산과 육아는 자산을 축적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다자녀가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철저히 외면한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내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삶은 정말 무가치하고 어리석기만 한 선택일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자녀들이 배우는 것은 부모의 말이 아닌 행동이다. 자녀를 사랑하고 내 자녀가 바르게 자라기를 원하는 부모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더 좋은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순간들이 하나 둘 모여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까지 가정을 든든히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기르면서 나 또한 자라 가는 것을 느낀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빠는 절대 욕을 하지 않아!"라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며 앞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신문과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하루가 머다 하고 싸우는 정치인들이 지긋지긋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거주할 집이 있고 몸이 건강하며 일할 직장이 있는 것으로 족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사회적인 문제, 기후위기와 같은 사안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중심을 잃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딸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
ⓒ 권진현 |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 교수가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말했다. 우리의 실태를 잘 보여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인 1.59명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이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이지 아이 키우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합계출산율이 0.7명이나 되네요. 이들로 인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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