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장군에게 열광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

뭉치 2023. 9. 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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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군사주의에 비거니즘 바치는 꼴

[뭉치]

동물을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생긴 삶의 변화는 정말 큰 것이었다. 주로 만나는 친구 그룹이 변하고, 나가는 시위의 종류가 달라지고,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는 짝꿍이 바뀌는 일이었다.

육식 중심 사회에서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란,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던 나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는데 사기업에서, 학교에서, 감옥에서 동물 안 먹는 사람으로 살기는 얼마나 어려울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서 새로 사귄 채식인 친구들 중에는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에 다녀온 사람,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사람, 대체복무를 앞둔 사람, 군복무를 앞둔 사람들이 있었다. 극도로 폐쇄적인 군대와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채식 급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채식을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게 뻔했다.

몇몇 단체들과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군대와 학교를 포함한 공공 급식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활동가들은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해 국방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출했다.[1]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양심의 자유와 건강권 침해 등을 내세워 국가인권위에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9.11.12
ⓒ 정대희
 
국방부를 상대로 한 채식인들과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은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입대 예정 채식인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정말 따가웠다. "까라면 까"야 하는 군대인데, 주는 대로 먹지 않겠다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풀만 먹으면 전투력이 떨어진다', '상명하복 군대에서 감히 요구를 하느냐', '전쟁이 나도 채식을 찾을 거냐' 등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급진적인 의제의 캠페인도 아니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캠페인인데도 군대를 상대로 하는 움직임에는 역시나 거센 공격이 일었다. 고도로 군사화 된 사회에서는 군인이 '인간 대접'을 받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채식이 군인 정신'이라는 당황스러운 말

그런데 나를 정말 당황하게 한 것은 그런 여론의 반응이 아니었다. 채식이 '군인 정신'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름 아닌 캠페인을 함께하는 동료들로부터.
군인의 목적은 살생이 아니라 생명 보호였다. 채식의 정신과 같았다.[2]

동물을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이 생명을 보호하는 군인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말이 공론장을 통해 퍼져나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몇몇 고위급 장군들 역시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말을 뒷받침했다. 채식 식단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이스라엘 군대가 '비건 친화적'이라며 소개되었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핀란드의 군대가 정기적으로 식물성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육식이 상징하는 남성성을 해체하고 채식과 남자다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나왔다. 근육질 몸매와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남성 운동 선수들의 채식 식단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 같은 콘텐츠들이 그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비건 장군", "비건 알파메일(alpha male)'"의 등장을 호출하는 이들의 서사는 한국 사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설득력을 얻었다. 채식을 하긴 하지만, 그래서 더 힘센 군인이 되자는 거니까, 그래서 더 많은 생명을 보호하자는 거니까.

동물을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이 어떻게 "군인의 목적"과 이어지는 것일까. 군대가 사람들을, 주권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군사주의의 신화를 그대로 옮겨 온다면 충분히 가능한 연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신념은,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자(비국민, 적대국 국민, 비인간 동물)를 규정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군사 행위와 충돌한다. 군사주의는 '지키는' 행위를 통해 인간 동물뿐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을 겨누고, 이들의 서식처를 불태운다. 무기화 되어 전쟁에 동원되는 비인간 동물들[3], 군사 기지와 군사 훈련으로 서식지가 전쟁터가 되어 버린 돌고래들[4], 전쟁으로 초토화된 대지에서 학살을 겪는 수많은 비인간+인간 동물들의 삶 앞에서, 군대가 이 세상을 지켜준다는 굳은 신념은 어떤 책임을 가질까.

미국의 연구자 찰스 패터슨은 <동물 홀로코스트>[5]에서 인간 사회의 동물 지배 역사를 살핀다. 그는 동물의 가축화와 축산 시스템이 홀로코스트의 근간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통찰로부터 우리는 동물 지배의 폭력과 전쟁의 폭력이 놀랍도록 닮았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먹어도 되는 동물과 먹지 않는 동물을 가리는 이분법은 우생학의 바탕이 되었고, 우생학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듯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주요한 동기를 제공했다. 동물을 효과적으로 죽여서 빠르게 식품으로 만들기 위한 공장식 도축 시스템 역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설계에 깊은 영감을 주며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죽여도 되는 동물과 보호해야 하는 동물을 가리는 종 차별은 죽여야 하는 적과 지켜야 하는 국민을 구분하는 전쟁의 이분법과 끔찍이도 닮아있다. (인)종 차별이 없다면, 무기를 든 사람들은 눈앞에 선 생명을 죽여서 정복하고, 이용하고, 먹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나와 마찬가지로 몸을 가졌고, 고통을 느끼며, 영혼을 지닌 존재를 말이다.

"비건 장군"의 호출은, 학살과 착취를 목적으로 작동하는 견고한 군사주의에 비거니즘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다.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고위급 장군의 생명 보호 철학을 일반화하고 정당화한다면,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웃픈 상상을 해본다.

비건 식단을 제공하지만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기지를 지어 공동체를 파괴하고 생태 학살을 자행하는 미국 군대에 '비건 군대'라는 이상한 별명을 붙이게 되는 그런 이상한 상상.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더라도 '비건 실천=생명 보호=군인 정신'이라는 단순한 수식은 성립하지 못할 것이다.[6]
 
 지난 7월 동두천 미군기지촌 근방에서 목격한 한 바베큐 업체의 차량. “BBQ X ARMY We go together (바베큐 X 군대 우리는 함께다)”라고 쓰여있다.
ⓒ 전쟁없는세상
 
또 다른 남성 특권 추가하는 것일 뿐

군대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예비, 현역, 전역) 군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양심과 신념에 따라 삶의 규칙을 꾸려갈 권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물을 죽이거나 착취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군대를 조명하고자 한다면, 성 차별과 종 차별의 렌즈를 함께 겹쳐보아야 한다. 전쟁의 뿌리가 되는 타자성은 성차별주의[7]와 마찬가지로 종차별에서 역시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평화학 연구자 베티 리어든은 구조적 폭력(성차별주의) 아래에서 억압자들의 승인을 목표로 하는 피억압자 (여성)들의 전략을 꼬집으며 말한다.
 
여성이 이 불평등의 갈등을 버티기 위해 택했던 주된 대항 장치가 '이길 수 없다면 한 편이 되라'라는 전략이다. 여성이 남성 우월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남성이 위협과 강제를 행사하는 것만큼이나 성차별주의에 기여한 요인이었다.
-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베티 리어든, 나무연필, 2020년, 113쪽

그의 통찰을 적용해 보면, 비거니즘이 군대의 용인만을 목표로 할 때, 군사주의의 기저에 깔린 종차별에 더욱 힘을 싣게 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일테지만 말이다.
"군인이 풀만 먹어서 힘을 쓰겠냐"는 비건 남성을 향한 조롱은 군사 집단이 가진 여성 혐오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조롱에 "동물을 먹지 않고도 힘센 군인이 될 수 있다"는 서사로 맞서기보다는, 왜 모두가 꼭 힘센 군인이 되어야 하냐는 질문으로 함께 응답할 수 있길 바란다.
 
 '세계 보건의 날'인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한국채식연합 활동가가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건강 채식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4.7
ⓒ 연합뉴스
 

여자의 몸을 가진, 채식주의자인, 나는 아무리 식물성 단백질을 열심히 섭취하고, 운동을 '빡세게' 하더라도, "힘센 알파메일"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거니즘으로 새로운 남성성을 상징하고 규정하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또 다른 남성 특권을 추가하는 것일 뿐이다. 육체에 위계를 매겨 착취하는 차별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비거니즘은 페미니즘 실천과도 촘촘하게 맞닿아야 한다.

식이 소수자로 사는 일은 녹록지 않다. 삼시 세끼 반복되는 투쟁은 언제나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다. 동물을 먹지 않는 '적은 수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다양성을 넓혀가는 일이 군사 권력의 승인을 구하는 일에 그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착취와 학살의 구조 속에 비거니즘을 위치시키게 될 것이다. 군사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실천하더라도, 나와 다른 비인간+인간 동물의 생명의 무게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비건 장군, 비건 알파메일의 등장을 반길 수 없는 이유다.

각주
[1] 2019년 11월 13일 전쟁없는세상을 포함한 국내 30여개 시민단체가 국방부를 상대로 군대 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출했다. 이후 2020년 국방부는 군대 내 채식 급식 관련 규정을 새로 도입했다. 필자 주.
[2] 〈장군님은채식주의자〉, 전범선, 2019년 11월 2일, 한겨레
[3] 〈전쟁터에 끌려간 동물들 – 무기가 된, 병사가 된 동물들〉, 뭉치, 전쟁없는세상, 2023년
[4] 〈평화운동과 돌고래해방운동의 교차점 – 위계에 따른 차별〉, 돌고래, 전쟁없는세상, 2023년
[5] <동물 홀로코스트>, 찰스 패터슨, 휴, 2014년
[6] 실제로 서울 시내의 한 비건 식당에는 비건채식을 실천한 세계의 유명인들을 소개하는 홍보물이 붙어있는데, 그 중 히틀러도 포함되어 있다. 필자 주.
[7]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베티 리어든, 나무연필,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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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뭉치는 '피스모모' 액션리서치팀장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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