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 세포와 디지털헬스케어 법안

이영수 2023. 9. 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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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상범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 1920-1951)는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았던 흑인 여성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31세이던 1951년에 다섯 아이를 남기고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불치병으로 그녀는 사망했지만, 그녀의 세포는 ‘헬라 세포(HeLa cell)’라는 이름으로, 본인과 가족이 알지 못하고 동의도 하지 않은 채 채취되어 급성장하는 의학 연구 분야에서 가장 유용한 도구 중 하나로 살아남았다. 

헬라 세포는 질병에 걸린 사람의 몸에서 추출하여 적절한 조건을 만들어주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세포들의 군락, 즉 ‘세포주(Cell line)’였다. 보통의 세포들은 시간이 지나면 죽게 되지만, 이런 세포주는 돌연변이로 인해 사람의 몸 바깥에서도 무한정 분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아 복제를 통해 몇 곱절로 증식시킬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자들은 헬라 세포를 이용해 불치병을 가진 세포와 유전체의 속성에 관한 연구를 할 수도 있고, 불치병을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약제를 시험해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 헬라 세포는 60년 동안 세계 각지의 연구실로 복제되어 이동하여 총 무게가 20톤에 달했고, 수십억 달러의 수익과 6만건 이상의 과학 논문을 양산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헨리에타의 가족은 계속 가난했고 심지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여유조차 없던 상태였는데, 누군가는 헬라 세포를 이용한 연구로 부자가 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자신의 실험실과 수많은 과학 논문에서 헬라 세포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느낀 과학저술가 리베카 스클루트가 2010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밝혀지게 되었고, 과학계에 인간의 생체를 이용한 실험 윤리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헬라 세포에 대한 관심과 반향이 생긴 이후에도 불멸의 세포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 연장을 할 수 있게 된다. 2013년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라르스 슈타인메츠 연구팀이 헬라 세포의 유전체 서열을 해독해낸 것이다. 이제 헬라 세포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연구 가치 뿐만 아니라, 유전 정보로서의 가치도 동시에 가지게 되었고, 이는 비슷한 유전 정보를 공유하는 헨리에타와 혈연 관계인 사람들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신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헬라 유전체 서열이 담긴 논문이 의학 학술지에 실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들은 분노한다. 이에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 프랜시스 콜린스는 미래의 연구자들이 헬라 유전체의 서열에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하되, 랙스 가족이 참여한 심사 이후에만 그렇게 할 수 있게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네이처Nature>에 논평을 기고하면서 이 문제는 마무리 되었다.

헨리에타의 사례는 과학기술이 새롭게 돈이 되는 생산의 영역으로 진입할 때 나타나는 소유권과 통제의 문제들을 상기시킨다. 지적 재산과 개인성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국가 또는 사회가 수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발견이나 발명은 무엇인가? 만약 발명가와 여기에 관여한 사람들이 수익을 공유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철학적, 윤리적 난제들은 헬라 세포 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하는 데이터 수집 처리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가장 민감한 정보인 개인 생체 정보와 의료 정보에 접근하여 처리한다면, 보건의료를 향상 시켜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국가 경제에도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리에도 같은 맥락의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정책이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수년, 어쩌면 수십년은 지체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대한민국의 입법부를 조급하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배경 때문에 급하게 발표한 탓인지, 이번에 발표한 신현영 의원의 <디지털헬스케어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관한 법> 법안을 보면 그 내용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본 법안은 “의료계와 산업계 등 다양한 주체 의견을 담아 디지털헬스케어의 다양한 기술들이 안전하게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게끔 하고자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실상은 산업계의 의료관련 AI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개인보건의료데이터를 현 상황에서 최대한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에 불과하다. 이 법안이 발표되자마자, 산업계가 주도하는 대한의료정보학회, 대한디지털헬스학회, 한국원격의료학회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서가 발표된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개인보건의료데이터 주체가 본인 및 개인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기관에 대한 전송요구권을 명시했다는 점이 그러한 의도를 잘 드러낸다. 정말로 이 법안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이런 전송요구권이 “개인보건의료데이터 주체가 본인의 개인보건의료데이터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하기 위함인지는 의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서식에 서명하는 것만으로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인은 자신을 진료한 의료기관에 자신의 민간한 의료정보를 간단한 동의 절차를 통해 자신의 의료정보가 어떻게 쓰이게 되고, 얼마 만큼의 부가 가치를 창출해줄지도 모른 채 다른 기관에 전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7년 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으로 설립되었고, 법에 따라 국민의 건강진료정보를 축적하는 심사평가원 조차도 개인의료정보를 KB생명보험 등 8개 민간보험사에 돈을 받고 판매했던 전력이 있음을 생각하면, 실상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활용하게 한다는 미명 하에 산업계가 개인보건의료데이터를 어떤 논의나 제약도 없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헨리에타의 사례를 돌아보자.

과학은 국민의 건강 증진이나 국가 경제의 발전과 같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위해서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낼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 역시 같은 가치를 위해서 이런 과학 기술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이번 법안도 발의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더라도 본 법안이 정보통신의 발달로 ‘확장된 자아’와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된 디지털화된 개인 정보,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개인보건의료데이터를 오용하거나 남용할 문제점이 있다면 이는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헬스케어 산업의 성급하고 무분별한 확대 보다는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다. 개인보건의료정보는 누가 소유하는가? 자신을 진료할 수 있게 해준 개인인가? 그런 개인을 진료한 의사인가? 아니면 진료 정보를 모으고 처리하는 심평원인가? 그리고 그 데이터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가 결정하는가? 그리고 만약 성공적인 부가가치가 만들어졌을 때 누가 수익을 어떤 방식으로 나눠 가질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의견으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의사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심지어 의사 출신인 국회의원이 의료인의 직업 윤리와 생명 윤리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 본 법안이 즉시 폐기되고,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모아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숙의의 시간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1.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리베카 스클루트
2. <테크놀로지의 정치> 실라 재서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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