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 ‘멤피스’로 얻은 것들 [D:히든캐스트(142)]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마냥 흥겹게 뛰어 놀고, 마냥 웃기기만 한 것 같은 뮤지컬 작품들도 모두 저마다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 메시지를 찾아내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전달자인 배우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직접 무대에 오르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힘이 달라진다.
뮤지컬 ‘멤피스’에서 백인 앙상블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명주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단순히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만들어나간다. “‘멤피스’로 너무 많은 것들을 얻었다”는 그의 진심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전달된다.
-‘멤피스’에 참여하게 된 소감 먼저 들려주세요.
‘멤피스’ 한국 초연에 함께 참여하게 되어 너무 설렙니다. 항상 초연이라는 타이틀은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관객분들에게 선보였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재미있게 보실지 등등 여러 의문점과 기대감을 가지고 작품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녹여내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멤피스’ 오디션 준비를 위해 참고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처음에 접한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해외 영상을 보고 ‘와, 이거 쉽지 않겠는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춤의 난이도가 굉장했고 흑인들의 삶 자체에서 묻어나는 소울 가득한 음악을 과연 내가 표현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 더 컸어요. 하지만 작품 내용 자체가 위트있고 재치있어서 생각보다 더 쉽게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어요.
-오디션 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오디션 때 지정곡이 ‘스틸 유어 록 앤드 롤’(Steal your rock and roll)이었어요, 오디션을 잘 보고 싶은 마음에 온 감정을 다해 불렀는데 중간에 감독님들께서 ‘이거 발라드 아니에요. 신나게 불러주세요’라고 요청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웃음). 현재 공연에서는 굉장히 신나고 흥이 넘치는 넘버인데 솔로곡처럼 준비해가서 민망하기도 했고 가끔 혼자 생각하다 피식 웃게 만드는 일이 되었네요. 하하.
-본격적으로 작품 연습에 들어가기 전, 어떤 연습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아무래도 멤피스가 흑인과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여서 미국의 인종차별과 관련한 기사나 글들을 많이 읽어봤던 것 같아요. 작품 내에서 백인 무대 감독으로도 등장을 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흑인들에 대한 백인의 차별에 대한 의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했어요. 또한 안무에 있어서도 작품에 임하기 전에 어떠한 동작들과 테크닉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하고 준비했었어요. 제가 작품에서 주로 테크닉을 많이 구사하는 배우이다보니 미리 준비를 하게되더라구요.
-백인 무대 감독 외에 또 어떤 역할들로 등장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작품 안에서 저는 5개의 캐릭터로 등장을 해요. 백화점씬에서 등장하는 MJ역할은 제 본명의 이니셜을 따서 캐릭터명을 정했고, 백인들의 우월주의를 표현하는 캐릭터이지만 휴이가 트는 흑인 음악에 동화되는 캐릭터에요. 처음엔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으로 있지만 휴이가 트는 흑인 음악에 심취해 아크로바틱도 하고 춤까지 추게 되었어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춤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하하.
방송국 관계자는 잠깐이지만 휴이가 흑인 음악 레코드를 들고 시몬스 국장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지나치는 캐릭터에요. 이 장면에서는 휴이를 대차게 거절하면서도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라디오씬이나 스탠드업씬에서 나오는 10대 백인 청소년 캐릭터는 휴이의 음악에 순수하게 반응하고 흑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모습과 제일 닮아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제일 저답게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추는 것 같아요. 1막 마지막 전에 나오는 백인 남성 캐릭터는 술술 잘풀려가는 휴이와 펠리샤와의 관계, 그리고 백인과 흑인의 사랑에 반기를 드는 인물로 이해관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종차별에 대해 긴장감을 더하는 캐릭터고요.
마지막으로 2막에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백인 무대감독입니다. 흑인들과 편견없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이자 휴이를 도와 응원하는 캐릭터입니다. TV쇼로 전환되어 방송을 진행하는데 있어 진행과 관련한 일들을 처리하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휴이의 행동에는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모두가 잘 되는 길이 있는데 무모한 행동에 무대에서도 실제로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작품에 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혹은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멤피스’의 주된 내용이 흑인들에게 집중되어 있어 백인 앙상블들이 흑인 앙상블들에 비해 출연 비중이 적은데 한번 등장했을 때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좋은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것이 어려웠어요.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공연이 개막하고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습니다(웃음).
-‘멤피스’는 앙상블의 호흡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관객들에게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기까지 연습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모든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특히 흑인 앙상블 동료들은 안무량도 많아서 그것들을 소화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특히 라디오씬의 줄넘기 장면은 난이도가 높아서 줄넘기 연습을 할 때는 주변 모든 동료들이 집중해주고 응원하며 연습했어요. 처음 성공했을 때 연습실에서 모두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것처럼 환호하고 박수쳤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제 스스로도 장면에 등장했을때 더 디테일한 연기와 안무 동작들을 연습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아크로바틱을 하는 장면에서는 더 집중하고 관객분들이 보실때도 안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매번 체크하고 지금도 하고 있답니다.
-‘멤피스’에서 앙상블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멤피스’ 그 자체가 앙상블이라고 생각합니다. 앙상블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살아있고, 작품 내에서 각 캐릭터들이 작품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말하고자하는 바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앙상블=멤피스’라고 생각합니다.
-‘멤피스’에서 김명주 배우가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와 그 이유는요?
저는 개인적으로 ‘티어 다운 더 하우스’(tear down the house) 넘버를 좋아합니다. 마틴이라는 백인 방송국 관계자에게 자신과 함께 해온 흑인 댄서들을 지키기 위해 휴이의 신념을 보여주는 넘버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거기서 무대감독으로 등장하는데 휴이의 대담한 행동에 감동받고 흑인 백인 상관없이 우리, 즉 하나의 팀 같은 마음으로 장면에 녹아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너무 신나잖아요!!
-이 작품을 통해, 김명주 배우가 얻게 된 것들이 있다면?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나이와 경력이랑은 상관없이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찾아내고 노력하는 멋진 동료들도 얻었고, 주연으로 등장하는 선배님들을 통해 무대에서 책임감도 배웠으며, 멤피스가 말하는 것과 같이 각자의 길을 존중해주고 응원하는 더 성숙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악 감독님, 안무 감독님, 연출님의 디렉팅으로 저의 부족한 모습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아직 보지 못한 대중에게 ‘멤피스’를 어필해보자면?
감동, 재미, 스펙타클 등 다양한 이유로 뮤지컬을 관람하지만 특히 ‘멤피스’는 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휴이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감을 갖는 각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극중 펠리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엄청 소중하고 신중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과 같은 일들이요. 그러니 얼른 ‘멤피스’로 와서 자신을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하카두!
-이제 김명주 배우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스트릿 댄스를 전공했고,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연기와 무용, 노래를 접했어요. 춤만 추던 저에게 새로운 표현양식들이 저의 열정과 호기심을 자극했고, 보다 더 예술성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만들었어요. 그러던 중 입시를 통해 뮤지컬과를 입학하게 되었고 종합예술이라는 뮤지컬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 저는 지금도 헤어나오지 못한 채 뮤지컬을 하고 있네요(웃음).
-데뷔는 2015년 ‘왕의 나라’라고요. 꿈꾸던 뮤지컬 배우의 길에 들어섰던 순간은 어떻게 기억되나요?
당시에는 정말 정신없이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너무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무대에서 뛰어다녔던 것 같아요. 하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부족했던 모습들이 더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모습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데뷔 당시와 지금, 스스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요?
욕심을 많이 버리게 된 것 같아요. 다 그렇지 않을까요? 처음엔 제가 작품 안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작품 안에서 제가 무얼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꼭 보여야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고,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작품을 할수록 더 즐거운 것 같네요. ‘멤피스’는…매일매일 너무 재밌어요. 무대에서도 분장실에서도 말이죠(웃음).
-‘맘마미아’(2019) 이후론 정말 쉴 틈 없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요. 체력적으로 힘듦은 없나요?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여태까지 작품에 참여하면서 정말 좋은 동료들과 감독님들만 만나서 힘들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잖아요. 아 물론! 작품마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차이가 있어요. 전 그때마다 누군가에게는 이 무대가 너무 절실한 자리일텐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익숙해지다보면 가끔 배부른 생각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마다 제가 처음 오디션을 보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반성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 같아요.
- 김명주 배우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나요?
제가 많이 담담한 편이어서 슬럼프가 왔다고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일상을 지켜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이 폐막하고 처음으로 6개월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그때가 심리적으로는 가장 불안했던 것 같아요. 담담하게 제가 할 일들을 꾸준히 하면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배우에게 색다른 경험과 깨달음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후에 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그땐 더 공백기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김명주 배우가 꿈꾸는 ‘좋은 배우’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웃음). 좋은 배우의 모습은 어떤 거라고 단정을 짓기보단 저는 무대에서 스토리를 가져가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비중이 적고 많고를 떠나 캐릭터마다 각각의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가 아닐까요?
-배우로서 김명주 씨만의 신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제 스스로 내적인 부분이나 실력적인 부분에서 가꾸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작품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하잖아요? 그럼 보통은 작품에서 요구하는 안무 난이도나 음악적 난이도에 적합한 배우들이 캐스팅이 되거든요. 그럼 검증된 실력있는 배우들이 그 작품이 가지는 분위기나 주제 등에 녹아드는 작업이 뮤지컬 작품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뮤지컬 공연을 통해서 경험과 노하우를 얻는다 생각하고 제 개인적인 실력향상을 위해선 트레이닝을 게을리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어떻게든 개인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향후 활동 계획들도 들려주세요. 차기작이 정해졌나요?
너무 감사하게도 내년 7월부터 연습에 참여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직 어떤 작품이라고는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매우 재밌고 유쾌한 작품이고 저에게도 아주 새로운 도전이 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한 배우로 활동하고 싶어요. 제가 큰 비중을 갖는 주인공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작품에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명주 배우가 꼭 도전하고 싶은 작품, 혹은 캐릭터도 있나요?
기회가 된다면 ‘멤피스’의 휴이를 도전해보고 싶네요. 다양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되고 개인적으로도 저에게 많은 성장을 안겨줄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제가 ‘멤피스’를 너무 사랑하나봐요. 하하.
-마지막으로, 김명주 배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저는 뮤지컬 배우와 함께 교육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좋은 교육자들이 많으신데 그 중에서도 저는 무대로 많은 사람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 스스로의 발전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무대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둘 다 하려면 너무 어렵겠지만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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