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쓰러진 아내 놔두고 테니스…'가정폭력 내력서' 사라진 이유
지난 5월 9일 오후 6시 12분쯤 인천시 강화군의 한 주택에서 50대 여성 A씨가 피를 흘린 채 발견됐다. 60대 남편 B씨는 아내가 쓰러진 걸 보고도 테니스를 치러 간다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어 의붓딸에게 보냈다. 아내 A씨는 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B씨는 사건 불과 3주 전에는 물론, 2016년과 2019년에도 이미 가정폭력으로 신고 당한 이력이 있었다. B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수사중인 경찰은 중상해 혐의 추가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가정폭력이 의심돼서다.
마지막 신고는 사건 발생 약 3주 전인 4월 17일이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오후 8시 10분쯤 “남편이 폭행한다. 맞았다. 목을 비틀어서 아파요”라는 내용으로 경찰에 구조요청을 했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불원했다”는 등의 이유로 별다른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재범 위험성 등을 판단할 근거가 되는 과거 작성한 ‘가정폭력 재범 위험성 조사표’도 확인하지 못했다. “지역경찰포털에 보관 기한이 3년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짧은 보관기간 탓에 A씨는 결과적으로 체크리스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A씨가 뇌사 상태에 빠진지 두 달 반이 지난 7월 25일에야 A씨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 기록이 사라진 것이 수사 지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가정폭력의 상습성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무화’했지만…작성 않는 경우도 40%
위험성 조사표 보관 기한을 3년으로 설정해둔 건 향후 수사에도 방해가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정폭력·스토킹 사건 등을 주로 담당하는 한 검사는 “가정폭력에서 상습성은 양형의 중요한 고려 요소”라며 “가정 보호 사건으로 송치하는 경우는 물론, 공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위험성 조사 등 과거 가정폭력의 정도와 처벌 전력을 양형 자료로 제출한다”고 말했다. 한 가정폭력 전문 변호사 역시 “위험성 조사표는 가정폭력 신고 출동 당시 경찰이 현장에서 판단하는 유일한 수사 경력 자료”라며 “가해자 처벌에 의미 있는 자료인데 왜 삭제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작성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조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 간(2021~2023년 6월)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한 건수는 33만8902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55만7659건) 대비 61%에 그쳤다. 가정폭력 신고 현장 10곳 중 4곳에선 위험성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반면에 연 2회 이상 가정폭력이 접수된 ‘재발 우려 가정’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만7680곳으로 집계됐다. 2021년(1만6365곳)과 2022년(1만6708곳) 연간 총집계보다 많은 재발 우려 가정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하는 단계부터 ‘이런 집안의 사람들이구나’ 하는 내력을 알아야 적절한 초동 조치도 가능하다”며 “과거 현장 출동 시 조사한 가정폭력의 위험 정도를 숫자로 표시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보관 기한도 연장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조은희 의원은 “가정폭력의 재범 위험이 시간이 경과한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발 우려 가정을 관리하는 매뉴얼 등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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