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148번 외쳤다…'팥소' 빠진 국회 결산심사

나주석 2023. 9.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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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결위 이틀간 종합정책 질의 분석
작년 예산집행 지적한 의원 손 꼽혀
"과학과 역사 이야기 고품격 국회" 비꼬기도

"오늘 결산이라고 해서 딱딱한 숫자 이야기 나올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주로 과학과 역사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고품격 국회라고 생각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2년 결산안 종합질의 첫날인 지난달 30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내놓은 관전평이다. 이날부터 이틀간 진행된 종합질의에선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정율성 기념공원 논란 등 쟁점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세입 총 573조9000억원, 세출 559조7000억원의 결산은 뒷전이었다. 김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을 '과학', 홍범도 논란 등을 '역사'라고 비꼬은 것이다.

10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회의록 등을 통해 예결위의 결산안 종합질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라는 단어는 148차례 언급된 반면, '결산'은 84차례 언급됐다. 이는 정율성(88회), 홍범도(85회) 보다도 못 미친 것이다. 결산 심사에서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 집행(76회), 세수(41회), 시정(29회)등의 단어 역시 등장 횟수가 저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광주 출신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의 기념공원 설치 논란과 잼버리 대회 책임론을 제기하는데 집중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답변하도록 시간을 할애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후쿠시마 오염수와 홍범도 흉상, 해병대 수사단장 외압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회의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질의에 나선 의원 가운데 결산과 관련한 언급을 한 의원은 49명의 예결위원 가운데 여럿이 있지만, 결산심사와 관련해 정부의 답변을 요구한 의원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비례) 등에 불과했다.

장 의원은 감사원을 상대로 특수활동비 집행실태 점검 결과가 감사원 결산보고서에 빠져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장 의원은 "올해 2월 업무보고에서 정부 특활비 집행실태 점검 결과를 결산보고서에 공개하고 2021년 점검 때 위반기관 내역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는데 결산보고서에 점검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정부가 매년 5월31일 지난해 결산 결과를 제출할 때 ‘결산검사결과 보고’를 함께 제출한다. 그는 "지난해 기획재정위 결산에서 관세청의 특활비 지불수단 비중을 물었더니 전액 현금이라 답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은 적이 없다"며 감사원 검사의 문제점도 거론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위·공판장 방사능 장비 지원 사업’ 실태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10대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도입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면서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던 올해에 더욱 적극적으로 장비를 도입해야 했는데 이게 제대로 집행이 안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해 넘어온 이월 예산으로 올해 5대만 도입했고 올해 예산으로 1대만 도입했다"며 "2년간 총 구입 계획이 20대였었는데 이 중에 6대밖에 구입을 못했다. 이래서야 국민들이 안심하고 수산물 섭취하실 수 있겠냐"고 질타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결산 문제를 다루 의원도 있었지만, 지난해 예산 집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의 경우 지난해 초과세수 문제를 지적하며 "(기획재정부가)문재인 정부 내내 감춰 뒀다가 윤석열 정부 시작 일주일도 안 돼서 도깨비방망이 치듯이 초과 세수로 53조가 더 걷힐 거라고 들이밀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양 의원은 정부의 답변보다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촉구하는데 힘을 더 실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도 법무부의 관용차 임대 당시 수의 계약 문제를 거론했지만,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일제 감사의 문제점을 언급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맞춰졌다. 결산 문제를 형식적으로 언급한 한 뒤, 현안 질의만 이어간 의원도 있었다.

종합정책질의가 반드시 결산 문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의 대부분이 정치적 공방으로 흘러가면서 결산 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지는 점이 문제다. 국회의 결산 심사는 정부의 예산 집행의 결과를 정확하게 파악해 예산이 적법하게 집행됐는지 검증하고, 사업 성과를 따져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데, 정치적 공방에 치우치면서 제대로 된 결산심사가 이뤄지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야가 정치 현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날선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된 한덕수 국무총리는 "말씀하신 것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 등 감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결산 종합정책질의가 이처럼 현안 관련 공방전으로 변질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정리된다. 우선 제대로 된 정책질의보다 현안 관련 질문이 여론의 주목도가 높다는 점이다. 의원들은 전문적인 결산관련 질문보다는 국민들, 특히 지지층에 친숙한 주제를 다루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결산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이미 집행된 예산을 되짚어보는 결산심사는 내년에 당장 쓸 예산 심사와 달라, 적극적으로 결산심사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한 해 나라 살림이 어떻게 집행됐는지는 의회가 꼼꼼하게 봐야 하는데 결산과 동떨어진 정파적인 주제들로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한 것은 결산 심의의 본질을 어긋났나"고 지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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