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평균 자살자는 1만3000여 명. 누군가의 자살은 충격적인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자살 사별자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자살 사별자들은 일상 속 평범한 순간에 부고 소식을 듣는다. 가족만이 아니라 좋아했던 아이돌, 유튜버, 직장 동료, 친구 등의 관계에서 자살 사별을 경험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은 뒤흔들어진다.
세상은 자살률 통계나 ‘극단적 선택’ 뉴스만 기억한다. 하지만 자살 사망자 뒤엔 묵묵히 그 이후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자살 사별자들이 있다. 2021년 나온 ‘여섯 밤의 애도’는 자살 사별자의 이야기에 주목한 책이다.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경험하지만, 잃는 것엔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책은 잘 슬퍼하는 법, 떠나보내는 법을 가르쳐 준다.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여섯 밤의 애도’를 쓴 고선규 작가를 만났다. 임상심리학박사로 자살 사별자 심리지원 단체 메리골드를 이끄는 고 작가는 ‘여섯 밤의 애도’를 펴내면서 유가족들이 서로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고통의 전시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입을 연 고 작가는 “(책을 통해) ‘나만의 경험이 아니구나’ ‘애도 과정은 당연히 힘들구나’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살 사별자에게 애도는 고인을 온전히 기억하는 일이다. 고인이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 작가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며 “건강한 애도는 그들의 삶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좋은 추억도 있을 테고, 건강했던 때도 있을 것”이라며 “이 세상에 존재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살 사별자들은 그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도 빨리 괜찮아져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 고 작가는 “자살 사별자들에겐 죽음을 인정하고 그 죽음이 불러일으킨 모든 변화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상실한 뒤 자신의 감정을 충분하게 꺼내 놓아야 한다”며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살 사별자들을 돕는 제도와 인력에 대해서도 짚었다. 고 작가는 “지역별로 많은 레벨의 전문가들이 있어야 한다”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선 개인의 애도 상담을 길게 할 수 없다. 인력 부족은 항상 언급되는 문제”라고 했다. 자살 사별자 또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상실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도울 전문가들의 훈련과 교육 역시 필요하다. 그는 “마음의 문제는 몸이 아픈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한 번 센터에 가서 상처받고 오는 사람들은 다른 센터를 방문하거나 더블 체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고 작가는 자살 사별자들을 향해 “일단 살아내 보자”고 말을 건넸다. 그는 “상실의 구멍을 메꾸거나 작게 하려는 노력보다 나를 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커지면 상실의 구멍이 비교적 작아지기 때문이다. 또 “온전한 애도는 마침표가 잘 안 찍히는 평생의 과업”이라며 “살아라. 필요하다면 낯선 사람에게 이야기를 꺼내라”고 말했다.
“애도의 첫 단계는 자살이라는 죽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죠.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중해야 그 사람의 삶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