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에 살면 생활비 드려야 하나요

이예솔 2023. 9.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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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취업난과 고물가 등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부모님과 함께 사는 20~30대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뉘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선 생활비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지난 7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모님 생활비 다들 얼마나 드리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부모님이 생활비를 달라고 하시는데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100여 명의 네티즌은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는 건 잘못됐다” “같이 살면 드려야지. 나가 살면 월세가 더 나온다” 등의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룹 스테이씨는 지난달 20일 코미디언 박미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돈 벌면 생활비를 내야 한다 vs 아니다’를 두고 토론하기도 했다.

부모와 자녀, 생활비 동상이몽

쿠키뉴스 취재 결과, 청년들은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이 많았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김모(28)씨는 “취업을 했다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적금이나 재테크를 하는 게 부모님께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족 간에 금전이 오가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생 황서량(24)씨는 “사랑과 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정 내에서 돈이 오가는 게 어색하고, 마치 계약 관계 같다”고 했다.

생활비를 내는 대신 집안일을 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씨는 “생활비가 집안일에 대한 노동 값이라면, 자녀가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박모(27)씨도 “부모님 선물이나 용돈을 드릴 순 있지만, 월세 납부하듯이 드리는 건 힘들다”라며 “사람 구실은 해야 하니까 집안일이라도 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픽사베이

부모들은 대체로 자녀들이 생활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자녀 넷과 거주하는 A(50)씨는 “대학을 무사히 마치게 하는 것까지가 부모의 역할”이라며 “졸업 후에는 취업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내야 한다. 가정 내에서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모(38)씨도 “자녀가 성인이면 공동생활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라며 생활비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받은 생활비를 어떻게 쓸지 각자 생각이 다르기도 했다. “자녀가 직장 생활한다면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김모(52)씨는 “그 돈을 조용히 적금 등으로 모았다가 출가할 때 돌려줄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생활비를 내야 한다”는 자녀 둘을 둔 B(64)씨는 “식비와 대출 이자 등으로 부담이 크다. 부모끼리 모든 생활비를 부담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청년 캥거루, 점점 많아지는 이유

독립을 포기하고 캥거루족을 택한 청년들이 많아지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통계진흥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57.5%) 중 67.7%는 ‘독립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독립할 생각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56.6%)다. 김모(28)씨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도 교통비나 식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서 생활비를 드리기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20대 청년의 상당수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달 20대 청년 13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9명(88.1%)이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연령대에서도 직업에 따라 경제적 의존 비율의 차이가 있었다. 대학생의 경우 97.0%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취업준비생은 이보다 조금 낮은 83.0%,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하는 직장인은 59.9%가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지난달 10일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하는 청년 구직자들 모습. 연합뉴스

생활비 갈등, 어떻게 해결했나요

부모와 생활비로 갈등하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합의를 마친 이들도 있다. 부모님 집에 함께 살면서 월 30만원씩 생활비를 내던 직장인 C씨는 최근 매달 60만원의 생활비를 드리기로 했다. C씨는 “나중에 부모님이 집을 팔거나 이사할 때 집 소유권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개인연금에 투자하는 대신, 부모님과 다른 조건으로 합의를 본 결과다.

직장인 D(26)씨는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따로 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주말과 평일 저녁 모두 개인 돈으로 식사를 해결해, 평소 가족과 식사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집안일과 빨래 등도 각자 하고 공용 생필품은 서로 돌아가면서 구매한다. D씨는 “집에서 소비하는 자원이 매우 적다”며 “지금은 생활 패턴이 이렇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나 자원 소비량이 늘어나면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강모(25)씨는 ‘전업 자녀’의 삶을 택했다. 전업 자녀는 직장이 없는 자녀가 집안일을 도맡아 한 보상으로 부모님께 돈을 받는 것으로, 청년 실업이 극심한 중국에서 나온 신조어다. 과거 지방에서 자취를 하던 강씨는 고심 끝에 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부모님 집에 들어갔다. 그는 “생활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이 받지 않으신다”라며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주거비용을 둘러싸고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는 대화를 비롯한 사전 합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는 노부모도 부양해야 하고, 성인이 된 자식도 챙겨야 하니 난감한 상황일 것”이라며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부모도 자식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직장 진출 연령과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가정 내에서 갈등이 생길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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