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살린 복덩이" 뱃속 아이와 수술대…간암 이긴 기적의 산모

채혜선 2023. 9.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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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태어난 아진 군. 사진 이하나씨

“아진이가 아니었으면 아마 말기쯤 암이 발견됐을 테니 아진이가 저를 살린 거죠. 엄마를 살렸으니 다들 ‘복덩이’라고 불러요.”

이하나(28)씨는 출산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아들을 두고 연신 고마운 아들, 날 살린 아들이라고 했다. 이씨는 임신 중기(23주차)에 간 종양을 확인했다. 기형아 검사를 하던 중 수치가 안 좋아 추가로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암 덩어리가 보였다. 조직검사를 했더니 간세포암이었다.

암 크기는 6.7㎝와 2.7㎝로 꽤 컸다. 수술 외에는 적절한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이씨의 간암 종양표지자(AFP)는 6330이었는데, 표지자가 높을수록 공격적인 암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씨의 수술을 맡은 삼성서울병원은 “AFP 400ng/ml 이상일 때 간암일 가능성이 95%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임신 때 간암 알아…산모 “매일 눈물 쏟아”

의료진의 고민이 시작됐다. 일단 수술 시기가 문제였다. 암 치료를 위해 아이를 24주(6개월)에 빨리 낳을 경우 아이가 위험할 가능성이 컸다. 병원 측은 “24주 출산 시 100% 가까이 태아는 합병증을 갖게 되고 사망률이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지키자니 산모의 건강이 우려됐다. 산모에서 간암이 있으면 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후가 좋지 않아서다. ‘엄마냐 아이냐’라는 선택 갈림길에 서게 된 이씨는 “매일 울었다. 2주를 고민해도 선뜻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떠올렸다.

산모 이하나씨와 아들 아진 군. 사진 이하나씨


이씨는 가족 의견을 들어 ‘아이는 다음에 갖고 치료부터 하자’라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료진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아이를 데리고 수술하겠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소화기내과·이식외과·영상의학과·방사선종양학과 등 여러 과 의료진이 머리를 맞댔고 “일단 수술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학제 진료를 통해 유일하게 완치를 노려볼 방법은 수술적 절제이고 아이를 포기하지 말자는 일치된 의견이 나왔다.

결국 이씨는 임신 7개월(25주차) 때 뱃속 아이와 함께 수술대에 올랐다. 수십 년 경력의 의료진에게조차 “도전적인 수술”이었다고 한다. 이씨의 자궁이 커져 있어 복강경이 들어갈 자리가 좁았다. 유진수 이식외과 교수는 “암 크기나 산모 주 수를 봤을 때 어려웠던 수술이었다”고 떠올렸다.

복강경으로 간의 70%를 잘라냈고 그 결과는 기적적이었다. 수술 석 달 후 이씨는 8시간에 이르는 진통 끝에 3.37㎏의 건강한 아들을 자연분만으로 품에 안았다.

사진 위에서부터 산부인과 성지희, 이식외과 유진수, 소화기내과 송병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이씨는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며 “지난주 검사에서 남은 종양이나 최종 재발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진이를 잘 키워보겠다”라며 웃었다.

송병근 소화기내과 교수는 “임신부라 조영제를 쓰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등을 할 수 없어 암이 얼마나 퍼져있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고민이 컸다”라며 “산모와 태아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의료진들이 함께 모여 우선 수술하자는 의견을 내니 산모와 태아를 모두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진수 교수는 “긴밀한 협조로 엄마가 건강한 아이를 낳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아진 군. 사진 이하나씨 제공

의료진도 이씨도 아진이를 두고 “엄마를 살린 아이”라고 말한다. “임신하지 않았다면 초음파를 받지 않았을 테고, 암이 매우 진행된 상태에서야 발견했을 건데 그랬다면 완치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암 환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수술에 출산까지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포기하라고 하지 않은 교수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신 중 암을 진단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최석주 교수 연구팀이 1995~2013년 18년간 임산부 5만412명을 분석했더니 1% 안 되는 87명(0.17%)이 악성종양(침윤성) 암 진단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산모가 임신 중 간암 절제술을 받은 뒤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사례는 국내 최초일 것”이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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